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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1 15:55

흑룡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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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룡의 숲








번 호 : 445 / 3334 등록일 : 1999년 06월 10일 22:21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543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1장 一.



                               흑룡의 숲


  제 1장  환(環)


 
                       꿈꾸는 자에게 필요한 것은
                     몸을 눕힐 수 있는 작은 공간과
                      휴식에 필요한 약간의 바람.
                       그리고 아련하게 떠오르는
                          지난날의 기억이다.



 一.


하늘을 달리는 바람은 하늘 위를 떠가는 흰 구름을 서서히 움직여 갔다.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풍성한 나무 그늘아래 검은 파오 차림의  한 남자가 몸
을 눕히고 있었다.
몸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이 무척이나 기분 좋은 듯 남자의 얼굴에는 한 낯
의 나른함을 즐기는 여유로움이 떠올라 있었다.
막 잠이라도 자려는 것인지 남자의 눈은 천천히 감기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남자의 잠을 방해하려는 듯 날카로운 외침과 함께 싸늘한 기
운이 남자를 향해 짓쳐들어왔다.

  [ 개문(開門) 수(水)! - 물의 힘을 근본으로 하는 중급 공격주문 ]

가늘게 눈을 뜨고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두  마리의 수룡(水龍)을 바라보던
남자는 느릿하게 몸을 일으켜 거짓말처럼 자신을 덮쳐오던 수룡의 공격 범위
에서 벗어났다. 그저 느릿한 움직임으로 약간  비켜섰을 뿐인데도 남자는 간
단히 공격을 피한 것이다.

  " 이제는 암수까지 쓰는 구나. 유에린."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여전히 담담한 태도로 말하는  남자를 보며 유에
린이라 불린 날카로운 느낌의 소녀는 눈썹을 찌푸렸다.

  " 이렇게 라도 하지 않으면 당신의 머리카락 한 올조차  건드릴 수 없으니
까요."

대답하는 유에린 역시 언제 공격을 했냐는 듯 처음과  마찬가지로 차갑게 가
라앉은 표정을 떠올리고 있었다. 마치 책을 읽는 것처럼 억양이 들어가 있지
않은 목소리 였지만 유에린의 목소리는  듣는 사람을 불쾌하게 만들지  않았
다.
그렇게 별다른 감정이 깃들지 않은 표정과 목소리로 말하는 유에린 이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눈썹을 찡그리고 있었다.

그에게 공격을 하는 것이 헛된  일이라는 것은 유에린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아닌 그 누구라도 그의 옷자락조차 건드릴 수 없다는 사실은
이곳에 사는 자라면 모두 알고 있었다.

  " 이제 돌아가라."
  " 싫어요."

유에린은 고집스럽게 고개를 흔들었다.
유에린은 길게 뻗은 팔다리와 윤기가 흐르는 검고 긴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
었다. 아직 소녀티가 물씬 풍기긴 했지만  유에린에게는 충분히 여인의 아름
다움이 느껴졌다.
다른 남자들이라면 충분히 반하고도 남았을 그녀의 외모도  남자에게는 아무
런 흥미도 주지 못했다.
한동안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유에린은 그런 그를 바라보며 조용히
대답을 기다렸다.

바람에 흩날리는 그의 파오 자락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을  때 그런 유에린의
정신을 일깨우듯 낮은 울림을 담은 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이렇게 내게 얽매이려는 이유가 뭐지....."

유에린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 말씀 드렸을 텐데요."
  " 전에 말했던 현무를 이길 수 있는 힘 말인가?"

유에린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 지금의 너로선 현무의 힘을 당해낼 수 없다. 알고 있겠지?"

한동안 유에린은 미동도 없이 남자의 얼굴을  응시했다. 그러다가 무엇을 결
심했는지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무릎을 꿇었다.

  " 부탁이에요. 제발 절 도와주세요."

누구보다도 강한 자존심으로 자신을 지탱시켜 온 유에린에게 있어 다른 이의
앞에서 무릎을 꿇는 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인지 그는
알고 있었다.

  " 이렇게까지 하면서 현무를 이기고 싶나."
  " 일족들은 헛된 일이라며 절 나무랐지만 제겐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에요."

남자는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가라앉은 검은  눈동자로 유에린을 바라보았
다. 그 검은 눈에는  오랫동안 세상을 겪어온 자들만이  가지는 연륜이 담겨
있었다.

  " 좋아."

결코 들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대답이  남자의 입에서 흘러나
오자 유에린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 성인식은 치렀겠지?"
  " 네... 몇 년 전에..."
  " 힘든 나날이 될 거다."
 
유에린은 무릎을 꿇은 자세 그대로 고개를 숙인 채  몇번이고 남자에게 감사
의 인사를 했다.

  " 고마워요......."
  " 자.... 일어나라. 용족은 그 누구의 앞에서도 무릎을 꿇어서는 안된다."

유에린의 눈앞에 남자의 새하얀 손이 내밀어져 있었다.

  " 그리고 앞으로 훼이(飛)라고 불러라."

훼이가 내민 손을 잡으며 유에린은 엷게 미소지었다.
미풍이 전해주는 아련한 봄의 향기처럼  그녀의 미소에도 향기가 담겨  있었
다.


                      *             *            *


천계 최북단에 위치한 흑룡의 숲은 흑룡족의 영지중 하나로 울창하게 우거진
빽빽한 전나무 숲과 그곳에 살고 있는 한 사람의 이름으로 유명했다.
천년이라는 용족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조차 뛰어넘은  존재. 자연을 이루는
다섯가지의 원소 목(木), 금(金), 토(土), 수(水), 화(火)의 힘 중 수(水). 즉, 대
기의 흐름을 지배하는 흑룡 훼이가 바로 그의 이름이었다.


  " 청룡족이 가진 것은 모든 물을  다스리는 힘이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그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물을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
다."

유에린은 훼이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단 한마디도 놓치지  않기 위해 주의를
기울였다.

  " 모든 용족들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힘을 개방했을 때가  아니면 자신이
속한 원소의 힘을 마음대로 다룬다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그래서 용
족들이 만들어 낸 것이 바로 자신이 가진 마력과 5대  원소의 힘을 결합시키
는 주문이다."

말을 마친 후 훼이는 짧게 주문을 외쳤다.

  [ 개문(開門) 수(水) ]

그것은 유에린도 익히 알고있는 청룡족이 사용하는 공격 주문이었다.
훼이의 말소리가 울리자 마자 유에린의  눈에 하늘로 솟아오르는 다섯  마리
수룡의 형상이 들어왔다.

다섯 이라니........
아무리 그가 천계에서 가장 강한 힘을 지닌 자라고  해도 솔직히 마음속으로
는 반신반의하고 있던 유에린에게는 충격이었다.
기본적인 공격 주문을 쓰더라도 그것을  고급의 주문과 같은 힘으로  바꾸어
버리는 능력.
그 때문에 그의 이름이 그토록 이나 유명한지도 몰랐다.




============================================================================
안녕하세요....포키입니다...
드디어 연재할 소설을 골랐습니다...^^ 예전부터 쓰고 있던 다른 소설의 세계관과
또 배경과 일치하는 것인데요. 그래서 좀 쓰기가 수월합니다.
이것저것 들쑤시고 다녔지만 이건 제대로 해야겠네요... 장르는 동양 환타지겠죠..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0^ (이제 진짜 잘 해야쥐...)


번 호 : 446 / 3334 등록일 : 1999년 06월 10일 22:21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388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1장 二.



                               흑룡의 숲


  제 1장  환(環)


  二.


하늘에 떠오른 다섯 마리의 수룡은 하늘을 헤엄치듯이 유영하며 움직였다.
유에린이 감탄하며 지켜보는 사이 훼이는 가볍게 오른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다섯 마리의 용은 일직선으로 하늘 위로 솟아오르며 서로의 몸을 감쌌다.
어느새 한 마리의 거대한 수룡이 된 그것은  푸른 하늘 위를 그 장대한 몸체
를 움직이며 헤엄치다가 훼이가 작게 내뱉은  해제라는 말이 울리자 엷게 퍼
지며 하늘에 흩어져갔다.

  " 보통 청룡족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이 개문(開門)의  주문은 여러 마리
의 수룡으로 한 순간에 적을 제압하는 공격주문이지. 하지만 적의  힘이 강할
때 이런 분산공격은 쓸모가 없다.  지금 본 것처럼 수룡을 하나로  합치면 한
마리의 수룡이 가진 힘은 그 배가된다."

유에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방금 그가 해 보인 것처럼 하늘위로 두 마리의 수
룡을 불러냈다. 그녀의 힘으로서는 두 마리를 불러내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그
녀는 진중하게 훼이가 보여준 일련의 과정을 반복했다.

  " 좋아. 소질은 있군."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훼이는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그의 앞에 공간이
열렸다. 용왕 정도의 힘을 가진 자들만이 쓸 수 있는 공간을  여는 주문을 그
는 주문을 외치치도 않고 본연의 마력만으로 연 것이었다. 유에린은 놀라움을
속으로 감추며 또 다시 연습을 시작했다.

그에게 힘의 사용에 관해 배우기 시작한  이래로 그는 언제나 하루에 한가지
이상의 주문은 가르쳐 주지 않았다. 어제까지는 마력을 어떻게 끌어내는 것이
가장 체력의 소모를 줄여주는 가에 대해 가르쳐 주었었다. 그리고  훼이는 그
렇게 하나씩을 가르쳐주고 나면 반드시 공간을 열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궁금했지만 유에린은 묻지 않았다.

  [ 개문(開門) 수(水)! ]

유에린은 힘있게 주문을 외치며 또 다시 수룡을 불러냈다.


                        *             *             *


  " 형님. 언제 오셨습니까."

막 집무실 안으로 들어선 젊은 남자가 놀란 음성으로 말했다.
집무실 안에 놓인 휴식용 의자 위에  앉아있던 훼이는 지금까지 한번도 보인
적이 없었던 미소를 희미하게나마 떠올리며  자신과 마찬가지로 검은색의 파
오를 걸친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가 걸친 질 좋은 비단으로 만들어진  파오는 발목까지 길게 내려오는 길이
였고 별다른 무늬 없이 깔끔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 후계자를 정했다는 소식을 듣고 얼굴이나 보려고 왔다."
  " 형님께서 인정해 주신다면 저야 더 바랄게 없죠."

그렇게 말하며 젊은 남자는 싱긋 웃었다.

  " 요즘은 뭘 하면서 지내세요? 통 소식이 없으니 알 수가 있어야지요. 이렇
게 가끔씩만 궁에 들르지 마시고 며칠에 한번은 와주세요."
 
그 말에 훼이는 피식거리며 웃었다.

  " 잊혀진 자가 오는 것도 그 자체로 폐가 되는 일이다."
  " 무슨 말씀이세요.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 500년 이라는 시간은 용족에게 있어서도 긴 시간이지....."

잠시였지만 훼이의 얼굴에 쓸쓸함이 스치고 지나갔다고 느낀 것은 그의 착각
이었을까.

  " 형님...."

훼이는 일어서서 한숨을 내쉬고 있는 남자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 그건 그렇고 라이엔. 네 후계자는 안 보여줄거야?"
  " 네. 형님. 별궁에 있어요."

훼이는 먼저 집무실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런 그의 등을 바라보며 라이엔은 추억에 젖어 들었다. 이제  훼이에게 있어
서 피를 나눈 형제는 자신 밖에 남지 않았다. 훼이와 나이차가 얼마 나지않는
형제들은 벌써 오래전에 그 명을 다해  세상을 떠났고 막내인 자신만이 이렇
게 남아있는 것이다.
혼자 남는다는 건 분명 외로운 일이겠지.....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에 형을 궁으로 되돌아오게 하겠노라
고 결심하며 라이엔은 거침없이 발걸음을 옮기는 형의 뒤를 따랐다.



  " 인사드려라. 네 백부님이시다."

라이엔을 닮은 갸름한 얼굴의 소년은 파랗게 빛나는 눈으로 훼이를 바라보며
고개를 숙였다.

  " 안녕하세요. 백부님.  유안입니다."

아직 성인식도 지나지 않은 어린  소년이었지만 유안의 목소리에는 나이답지
않은 차분함이 배어 있었다.

  " 이 아이의 눈은......."

훼이가 묻자 라이엔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 잊으셨어요. 형님. 제 비(妃)가 기린족이라는 것을요?"
  " 아.....그랬었지..."

기억을 떠올린 듯 훼이는 다시 유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 충분히 강해지겠구나."
  " 백부님. 제 스승이 되어 주세요."

유안은 미리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거침없이 말했다.

  " 내가 아니라도 흑룡족에는 인재가 많다."
  " 형님. 이번에는 거절하시 말아 주세요. 저때도 그랬었잖아요."

라이엔 역시 부탁했다. 하지만 훼이는 고개를 저었다.

  " 내겐 그곳이 어울려. 더 이상 흑룡궁은 내가 설 곳이 아니다."

훼이의 말을 들으며 라이엔은 씁쓸하게 웃었다.

  " 정 그러시다면 할 수 없죠."
  " 백부님...."

자신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눈을 보며 훼이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 네 스승은 되어 줄 수 없지만 네가 내 도움을 필요로 할 때는 언제고 도
와주마. 하지만 그건 단 한번 뿐이다."

그가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유안은 활짝 미소지었다.

  " 고맙습니다. 백부님."

활짝 피어오른 유안의 미소를 보면서 훼이는 속으로 후회했다. 더  이상 일족
들과 관계하지 않으려 했건만 핏줄이라는 것은  그렇게 간단히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막내동생인 라이엔과 라이엔을 꼭 닮은 유안. 두 부자(父子)의 모습을
눈 앞에 대하자 결심이 흐트러졌다.

  " 나는 이만 돌아가겠다. 성인식때 다시 오마."

훼이는 그렇게 말해놓고 바로 공간을 열었다. 허공이 길다랗게 휘어지며 훼이
가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의 입구가 열렸다. 훼이는  공간안에 한쪽발을
들여 놓으며 라이엔과 유안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훼이의 몸이 공간 안으로 들어섬과 동시에 공간이 닫혔다.  공간의 입
구가 사라진 자리에는 공간이 열렸다는 그 어떤 흔적도 남지 않은 채 훼이의
모습만이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져 있었다.




============================================================================
우.....이름짓느라 머리아파 죽겠다....
아..그리고 파오라는 옷은요 게임중에 템페스트 있잖아요. 그 게임에서 에밀리오가
입고 있는 옷의 명칭입니다. 일본식 발음이죠.


번 호 : 461 / 3334 등록일 : 1999년 06월 12일 00:02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369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1장 三.



                               흑룡의 숲


  제 1장  환(環)



  三.


은빛의 실과 같은 가느다란  머리카락을 어깨까지 늘어뜨린  채 책상에 앉아
문서 꾸러미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26대 백룡왕인 파이론이었다.
용족들은 일신에 지닌 마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몸  역시 마력의 속성에 맞추
어 변화한다. 그 때문에 파이론은 백미에 백발을 하고 있었다.
일견하기에는 이십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단정한 생김새 였지만 그의 나이는
652세로 용족으로서는 중년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었다.

천지자연의 질서중 바람을 다스리는 백룡족의  왕으로서 그는 변함없이 각지
에 퍼져나가 있는 백룡족들로부터 보고된 사항들을 검토하고  있었다. 하계에
내려가 있는 백룡족들은 하계의 자연의 질서를 감시하며 또 그것들이 계절에
맞게 찾아오고 가는 가를 살핀다. 또한 백룡족은 천계의 서쪽을  지키는 맹장
중 하나로서 바람과 뇌전의 힘을 사용하는 전투적인 성향이 강한 종족이었다.
대부분의 용왕들이 하는 일은 자신들의 관할 영지에서  보고된 여러 가지 일
들을 확인하고 지시를 내리는 일과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계절의 전환
에 관한일. 그리고 천계의 방비에 관한 일이었다. 대부분의 일들은 문서의 형
태로 정리되어 왕들에게 전해지는데 그것을  읽고 확인하는데만 대부분의 시
간을 소비할 정도로 그 양이 많았다.

파이론역시 용족들의 복장인 파오를 입고  있었는데 그는 발목까지 내려오는
길다란 파오보다는 활동적인 중간길이의 파오를 즐겨입었다. 그것은  그가 천
계 밖으로 나가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의 천성이 자유분방하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더 옳았다.
벌써 세시진 이상을 문서 더미에 파묻혀 있던  파이론은 손에들고 있던 인장
을 내려놓고 딱딱하게 굳어진 허리를 펴며 몸을 일으켰다. 그가  막 이리저리
로 몸을 돌리고 있을 때  집무실 문이 열리며 간소한  흰 궁장차림의 여인이
들어섰다. 검고 긴 머리카락을 틀어올려  몇 개의 비녀만으로 장식하고  있는
소박한 차림이었지만 그녀의 몸에 서린 기품은 그녀의 신분이 범상치 않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여인의 손에는 술잔 두 개와 도자기로 된 술병이 담긴 소반이 들려 있었다.

  " 제가 제때 오긴 했나봐요."

그녀는 막 자리에서 일어선 파이론에게 시선을 던지며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 막 쉬려던 참이었지."

파이론 역시 그녀의 미소에 답하듯 미소를 떠올렸다.
막 집무실 안으로 들어선 여인은 챠렌이라는 이름의 백룡왕 보좌관이자 백룡
왕비라는 두 개의 신분을 가진 여인이었다. 300여년 전 파이론이 26대 황룡왕
의 위(位)에 올랐을 때 그녀는 원로들의 추천으로 보좌관이 되었다. 명망있는
백룡족의 귀족 자제인 그녀는 학문을 비롯해 언변과 훌륭한 싸움실력까지 모
든 것을 갖춘 여인이었다. 그리고 항상 파이론의 곁에서 일을 돕는 사이에 둘
은 사랑에 빠졌고 20년 후 그녀는 백룡왕비가 되었다. 그녀가  비라는 지위에
오르자 이제 보좌관의 자리에서 물러나는게  어떻겠냐는 주위의 권유에도 불
구하고 그녀는 계속 보좌관의 자리에 있기를 원했다. 난초와도 같은 청초하고
갸냘픈 외모와 달리 전투에 임할때의 그녀는 웬만한 장수들도 당해내지 못할
정도로 강인한 힘을 내곤 했다. 보좌관은 비상시에 왕을 대행해야  하는 자리
인 만큼 모든면에서 뛰어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많은 능력을 요구했는데
그녀는 여인으로서는 드물게도 모두에게 인정받을  만큼의 실력을 갖추고 있
었다. 그 때문에 그녀의 이름은  백룡족뿐만 아니라 천계 전체에서도  유명했
다. 그같은 그녀의 모습을 동경해 다른 용족의 여인들도 그녀처럼  되기를 원
할 정도로 챠렌은 자신의 삶을 가치있게 누리고 있었다.

챠렌은 집무실 중앙에 놓인 갈색의 고풍스러운 나무  탁자 위에 술병과 잔을
내려 놓고 의자에 앉았다.  물끄러미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던 파이론 역시 그
녀의 맞은편에 자리잡고 앉았다.

  " 흑룡왕님이 후계자를 선출했다고 식(式)에 와달라더군요. 들으셨나요?"

두손을 가지런히 모아 탁자위에 올려놓으며 챠렌이 묻자 파이론은 고개를 끄
덕였다.

  " 집무실로 서신이 왔더군."
  " 그러보 보니 흑룡왕비는 기린족의 황녀 였지요. 그녀를 닮아 후계자가 될
아이도 눈이 푸른색이라고 하던데....."
  " 맞아. 유안이라는 이름이었지..."

차렌은 술병을 집어들어 파이론의 술잔에 술을 따랐다.  술병에서 흘러나오는
맑은 액체와 엷게  퍼져나가는 천화주(泉花酒)의 향기.  천계에서만 피어나는
다섯가지의 꽃잎으로 담근 천화주는 그리  독하지도 않을뿐더러 피로를 푸는
데 효험이 있어 많은이들이 즐겨 마시는 술이었다.
파이론은 향기로운 술이 담긴 잔을 들고 한입에 술을 털어넣었다.

  " 기린족이 용족과 혼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  영수족들은 자존심이 강
하니까 말이야."

챠렌역시 술잔을 집어들며 말을 받았다.

  " 하지만 용족중에서도 흑룡족은 영수족들 조차 감히 함부로 대할 수 없는
힘을 지니고 있잖아요. 이렇게 제입으로 말하기는 그렇지만  흑룡족은 강하니
까요."

입안에 화하게 퍼져나가는 천화주의 맛은 독특했다. 달콤한 듯 하면서도 어딘
지 모르게 쏘는 듯한 느낌. 파이론은 다시 한번 천화주의 맛과 향을 음미하며
잔을 비웠다.

  " 흑룡궁에 들린 후 오랜만에 수행이라도 갈까? 하계로 말이야."
  " 업무는 어찌하시려구요. 왕과 보좌관이 동시에 자리를  비우면 일이 밀릴
게 뻔하잖아요."

챠렌이 가볍게 질책하자 파이론은 걱정말라는 듯이 웃어보였다.

  " 당신은 보좌관이기 이전에 내 비야.  일은 장로들에게 맡기면 되겠지. 이
런일도 한두번은 아니었으니까 그들도 충분히 이해할테고 말이야."

그리고 나서 파이론은 챠렌의 가느다란 손을 잡으며 덧붙였다.

  " 이제 우리도 후계자를 가져야 할 때도 됐고 말이야."

페이론의 말을 듣는 순간 챠렌의 얼굴에는 새초롬한 미소가 피어오르고 있었
다.


                       *             *            *


  " 저.........훼이..."

유에린은 굵은 나무 기둥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있는 훼이를 불렀다.  하지만
훼이에게서는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혹시  자고 있는지도 모른다.
해가 떠오른지 한시진 정도 지난 아침. 그다지 이른 시간은  아니었지만 흑룡
의 숲 안으로 들어오는 햇빛은 울창한 나무들에 가리워져 얼마 되지 않았다.

  " 훼이......"

유에린이 다시한번 훼이의 이름을 부르자 그제서야 훼이는 눈을 떴다.
깊은 어둠. 매일같이 보는 그의 눈이었지만 훼이의 검은 눈은  볼때마다 새롭
게 다가왔다. 새하얗고 무표정한 얼굴에서 유일하게 감정의 빛을 지니고 있는
검은 눈. 과연 그는 저 두눈에 무엇을 담고 앞을 바라보는 것일까.
잠시 훼이의 두 눈을 보며 생각을 떠올리던 유에린은 곧 고개를 저었다. 지금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힘을 키우는 것이다. 그 때문에 두달 동안이나 이
흑룡의 숲에 머물지 않았던가. 그를 찾고 나서도 또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야
유에린은 자신이 원하던 것을 얻을 수 있었다.
천계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인 훼이. 그의  도움을 얻고
자 이곳에 오는 이는 많았지만 실제로 그를  만났다거나 도움을 받았다는 자
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기적과도 같이 유에린은 훼이를 찾아냈고 그의  도움을 받고 있는 것
이었다.

  " 주무시고 계셨나요?"

별 생각없이 내뱉은 질문에 훼이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다.

  " 나도 너와 같은 용족이다."

유에린의 얼굴에 어떤 표정이 떠올라 있었는지 훼이는 그렇게 말했다.

  " 아...아니에요. 그냥 조금 신기해보여서...."

유에린은 당황해서 말을 더듬거렸다.

  " 오늘은 방어 주문을 가르쳐주지. 때로는 공격주문  보다 방어주문을 사용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공격이 될 때도 있다."

훼이는 여전히 별다른 표정이 떠오르지  않은 무심한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그런 훼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유에린은  자신의 표정에 다른 무엇이
끼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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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름 좀 지어줘요..... T.T


번 호 : 478 / 3334 등록일 : 1999년 06월 12일 22:29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346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2장 一.



                               흑룡의 숲


  제 2장  침전(沈澱)


                그저 기억해 주는 것만이라도 좋아요.
                제가 바라는 건 이것뿐이에요.
                약속해 주실 수 있죠......?
                그저 당신이 가진 기억의 한 부분에라도
                자리잡을 수 있다면
                죽어서도 행복할 수 있어요.
                미소를 보여주지 않아도 좋아요.
                그러니까 하나만은 약속해 주세요.
                당신이 살아갈 무수한 시간 속에
                제가 존재했었다는 걸
                그저...... 기억해 주세요.


  一.


화연은 오늘따라 이른 아침에 눈이 떠졌다. 아직  해도 떠오르지 않은 아스라
한 어둠에 잠긴 방안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둡지도 그렇다고  확연히
모든 것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밝지도 않았다.
그렇게 희미한 이른 새벽의 방 안에서 화연은 기이할 정도로 설레이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숨을 골랐다.

대체 무슨 일이지?
화연은 의문을 속으로 삼키며 이불을 걷어올리고 일어나 앉았다.
그렇게 앉아있기를 수십여 분. 어느새 먼동이 터오고 있었다. 하얀 문풍지 사
이로 엷은 아침 햇살이 비쳐들어왔다. 아스라하게 잠겨 있던 어둠을 몰아내며
그렇게 햇살은 아침을 부르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화연의  마음을 점령하고
있던 기이한 울림도 사라졌다.

자리에서 일어난 화연은 검은  옻칠이 된 네모진  손거울을 꺼내들고 머리를
정돈했다. 어머니가 남기신 유일한 유품인 그것은 어머니도  할머님께 받았다
고 하는 오래된 물건이었다. 할머니에게서 어머니에게로 그리고  다시 자신에
게로 전해진 그 물건에는 손때가 묻어있어 검은빛이 바래  있었다.
낡긴 했지만 거울에는 꽤  고급스러운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노련한 장인의
솜씨인 듯 거울 뒷면에 새겨진  매화 문양은 무척이나 정교했다.  거울의  면
역시 화연이 매일같이 정성들여 닦았기에  먼지한점 묻지않은 투명함을 보여
주었다.
작은 손거울에 비친 화연의 얼굴은 작고 말라 있었다. 하지만 그 작은 얼굴에
오목조목하게 자리잡은 오관은 그녀의 성품을 말해주듯 곧아  보였다. 빗으로
곱게 머리를 빗어내리며 화연은 손에 익은 거울에서 어머니의 온기가 느껴지
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 화연아. 어서 나가자."

밖에서 오라버니가 화연을 부르고 있었다.

  " 네. 지금 나가요."

밝게 대답하며 화연은 방문을 열었다. 작은 마당에서 나무 넝쿨로  엮은 바구
니를 등에매고 있는 오라버니 비영의 듬직한 얼굴이 보였다.
예전에는 항상 글을 벗삼던 오라버니의 유약했던 얼굴이 언제 이렇게 듬직하
게 변했는지 화연은 잠시 옛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그저 5년의 세월이 지났을 뿐인데도 벌써 10년도 더된 일처럼 느껴졌다. 아버
님이 돌아가신 것도 남매 둘만의 생활이  시작된 것도 그 무렵의 일이었지만
지금은 너무나 아득하게 느껴졌다. 이제 자신이 걸치고 있는 옷은 더 이상 비
단이 아닌 싼 포목이었지만 그것조차 이제는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집안이 몰락하지만 않았더라도 오라버니는 약혼녀와  혼인해서 벌써 한 일가
를 이루었을 나이였지만 비영은 집안이 기울어짐과  동시에 그 모든 것을 잃
고 나서도 아무런 불만없이  동생인 화연을 돌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화연은
그런 비영이 너무나 고마웠다.

  " 오늘은 구절초를 따도록 하자. 마침 오늘은 날도  맑고 하니 찾기가 어렵
지는 않을거다."
  " 네. 오라버니."

막 신발을 신고 마당으로 내려선 화연은  또 다시 밝게 웃어보이며 앞서가는
비영의 뒤를 따랐다.


                         *            *            *


  " 오늘은 운이 좋군요."

벌써 반 이상이나 보라색의 꽃잎을 가진  구절초로 채워진 바구니를 보며 화
연은 흐뭇한 미소를 떠올렸다.
바구니가 다 찰 정도로  구절초를 모으기만 하면 보름  정도 생활할 수 있는
돈을 벌 수가 있다.

  " 잠시 쉴까?"

비영은 바구니를 바닥에 내려놓고 나서 바닥에 주저 앉았다.  이마에 흐른 땀
을 손으로 훔쳐내던 화연은 문득 시원한 물 생각이 간절해 졌다.
여기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계곡이 있었다.

  " 오라버니. 저 잠시 계곡물에 손좀 담그고 올께요."
  " 그래라. 예상보다 시간이 덜 걸렸으니 한참 쉬다와도 괜찮겠다."

투박한 미소를 떠올린 비영을 뒤로하고 화연은 부지런히 계곡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넓게 드리워진 나무 그늘을 지나쳐 한참을 걷자  귓가에 맑은 물소리
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화연의 눈에 시원하게  흘러내리는 꽤 넓직한 계곡이 들어
왔다. 화연은 커다란 돌을 넘어가며 계곡의 가장자리에 발을 딛었다.

작은 소리를 내며 흘러가는 계곡물은 얼음장처럼 시원했다. 물속에 손을 담그
자 땀이 다 날아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동안 물에 손을 담그고 있던 화연
은 치마를 무릎까지 걷어 올리고 매끈한 종아리를 드러낸 채 물 속으로 몇걸
음 걸어들어 갔다. 발바닥에 닿는 돌의 감촉을 느끼며 화연은 물 속을 거닐었
다. 이순간 만큼은 자신이 이제 더 이상 방안에 갇혀 살아야  할 규수가 아니
라는 것에 감사하며 화연은 마음껏 시원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그때였다. 화연은 갑자기 온몸을 엄습하는 위화감 때문에 움직임을 멈추고 주
위를 둘러보았다. 위험스러울 정도의 느낌은 아니었지만 무언가  압도하는 듯
한 중우함 같은 것이 계곡안을 감싸고 있었다. 그때문이었을까. 분명 깊은 산
이라면 당연히 들려왔어야 할 새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것은.

그리고 화연은 볼 수 있었다. 계곡 전체에 그늘을 드리울 정도로 거대한 천년
수의 기둥에 기대어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을.
천인(天人) 이라도 하강한 것일까.  조용히 눈을 감은  하얀 얼굴에 드리워진
엷게 흔들리는 그림자와 숲에 동화된 듯이 보이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모습.
등을타고 흘러내린 윤기있는 검푸른색의 머리카락은  그의 흰 얼굴과 대조되
어 더욱 뚜렷하게 화연의 눈을 잡아 끌었다.
그리고 그의 온몸을 감싸고 있는 검은색의 파오는 귀족들이라도 만져보기 힘
들정도의 고급스러운 비단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화연은 숨을 삼키며 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조금전까지  느껴지던 위화감은
어느샌가 오늘 새벽에 느꼈던 설레임으로 바뀌어 있었다.



  " 화연아. 오늘은 왜 그리 서두르지? 산에 숨겨둔  보물이라도 있는 모양이
구나."

웃음띤 비영의 말에 그저 싱긋 웃는  웃음으로 답하며 화연은 빠른 걸음으로
산을 올랐다.
요 며칠새 화연은 매일같이 계곡을 찾았다. 그녀가 계곡을 찾는 이유는 단 하
나. 언제나 그곳에서 잠을 청하고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였다.
한번도 그가 깨어난 모습을 본 적은  없지만 인적이 드문 산속에서의 생활에
나타난 비영이외의 남자는 화연에게 있어 관심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
때문이 아니더라도 인세에 머물 것 같지  않아보이는 그의 전신에 떠도는 신
비함이. 그리고 자연과 동화된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그의 모습이 그녀의 발길
을 부르고 있었다.
꽤 험한 산길이었지만 화연에게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반시진 정
도를 걸어서 계곡에 도착한 화연은 깊게  숨을 내쉬며 천년수의 기둥으로 고
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곳에 남자의 모습은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나왔다.

언제고 떠날 수 있다는 것을 왜 몰랐지....
화연은 자신을 질책하며 바닥에 주저 않았다. 조금전 까지만  해도 힘든줄 모
르고 올랐던 산길이었지만 지금은 일어설 수 조차 없을 정도로 지쳐 있었다.

여전히 계곡물은 맑은 소리를 내며 흘러내려가고 있다.

  " 구절초에는 약재 이외의 다른 효능도 있습니다. 구절초의 잎은 귀한 약재
로 쓰이지만 꽃잎에는 기억을 떠올리게 해주는 효능이 있습니다."

낮게 울리는 부드러운 목소리.
화연은 흠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깊이 가라앉은 편안한 어둠이 담긴 눈동자가
그곳에 있었다.
늘 감겨있던 그 눈에는 어떤 빛이  담겨있을까 궁금해 했었지만 직접 마주대
한 그의 눈에는 말을 잊게 만드는 중우함이 있었다.

  " 모르는 사람이 더 많지만 갓 따온 구절초의 꽃잎을 뜨거운 물에 띄워 마
시면 그날 밤에는 반드시 그리운 사람이 꿈에 나타난다고 하지요."

그렇게 말하며 그는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를 떠올렸다. 분명  아주 작은 미소
에 불과했지만 그의 미소는 잔잔하게 얼굴전체에 퍼져나갔다.

  " 전.... 과거를 그리워 하지는 않아요."

화연은 겨우 입을 떼어 그렇게 말했다.
남자는 아무말 없이 화연의 옆에 앉았다. 부드럽게 흔들리는 그의 머리카락에
서는 옅은 백화향이 풍겨왔다.

  " 전 1년에 보름정도 이곳에서 머물죠. 이 근처에 살고 있나요?"

화연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 저..........이름을 가르쳐 주실 수 있나요.......?"

한참을 망설인 후에야 화연은 겨우 그의 이름을 물을 수 있었다.

  " 훼이...그게 제 이름이죠."

화연은 귓가에 울려퍼지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살며시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가슴속에는 훼이라는 이름이 작게 물결치듯 울려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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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도새도 모르게 1장이 끝나고 2장이 시작되었네요....^^
흑룡의 숲은 에피소드 형식입니다. 그래서 내용은 시공을 넘나들며(?) 진행되죠.
시간의 순서와 전개도 순차적으로 진행되지 않습니다.
이런 동양물은 맘에 들지 않으시나요? 그치만 전 이런식의 동양물을 상당히 좋아
해서요. ^^ (뒤에가면 전투장면들도 많이 나오지만 지금은 안나와요..)
그치만 읽어주신 분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기분이 좋네요. 단 한분이라도 좋다고
생각해 주신다면 전 행복할 것 같아요.... 그러면 읽어 주셔서 감사...


 


번 호 : 486 / 3334 등록일 : 1999년 06월 13일 22:16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337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2장 二.



                          흑룡의 숲


  제 2장 침전(沈澱)



  二.


  " 이제.... 돌아가시나요?"

화연의 음성에는 옅은 망설임이 배어 있었다.
하지만 그 망설임은 말이 되어 그에게 전해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저
처연한 미소만을 떠올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훼이는 그녀의 손가락에 청옥(靑玉)으로 된 반지를 끼워 주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오른손을 휘둘러 공간을 열었다.
훼이의 머리카락 한 가닥까지  사라지고 나서야 화연은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낼 수 있었다. 눈을 감으면 그의 모습이 금방이라도 사라져 버릴 것 같았
기에 화연은 그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난 후에야 그의 모습을 눈에 새기
듯 눈을 감았다.

말....... 안하는 편이 더 나은 일이겠죠?
당신은...... 내게 다가온 당신은 하늘에 계실 귀한 분이시니까요.
말은 안했지만 느끼고 있어요. 이제 당신이 내게 돌아올 날은 아주 먼 어느날
이라는 것을요.
전 그냥 이곳에서 살아가야 겠지요.
당신이 제게 남겨준 가장 큰 선물과 함께.

아이에겐 당신의 이름을 붙여주고 싶어요. 그 이름을 부를때마다 당신을 떠올
릴 수 있게.
비(飛)...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아요.........?

화연의 왼손에 끼워진 반지에서는 그의 온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            *            *


하계는 많이 변해있었다.
화연이 살고 있던 인적이 드문 산 속에도 마을이  들어서 밥 짓는 연기를 하
늘로 피어 올리고 있었다. 예전의 그곳은 사냥이나  약초를 캐러 다니는 사람
들만이 들어오곤 했었는데 인간이란 참으로 많은 것을  변화 시켰다. 이제 또
세월이 흐르면 훼이가 즐겨 찾던 그 산도  인간의 마을을 품고 있는 작은 뒷
산정도로 여겨질 지 몰랐다.

1년만 이었다. 훼이는 이렇게 오랫동안 화연의 곁으로 돌아오지 못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차기 흑룡왕 후계자를  택할 때
까지는 어느 누구도 영지 밖으로 나가서는 안된다는 엄명을 내렸다.
흑룡일족에게 있어 흑룡왕의 말은 곧  법. 그리고 그것은 훼이에게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천계에서의 1년은 하계에서의 10년. 용족에게 있어서는 극히 일순의  짧은 시
간에 불과했지만 인간들에게 있어 10년이란 길고도 긴 시간이었다.

화연의 집에서도 저녁을 준비하는 긴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훼이는 오늘만큼은 공간을 열고 그녀의 앞에 나타나고 싶지 않았다.  처음 그
녀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때처럼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말을 걸고 싶었다.

작고 아담한 화연의 집은 그동안 몇번의 보수를 한 듯 손이간 흔적이 엿보였
다. 곧게 세워진 나무 울타리 사이에는 이름 모를 작은 풀들이 자라나 있었고
황토로 덮인 작은 안마당에는 말리기 위해 늘어놓은 약초들이 놓여 있었다.
그 세월속에서도 그 정경만은 변함이 없었다.
누런 초가 지붕으로 덮힌 소박한 집은 훼이의 방 보다도 작았다.
훼이는 익숙한 발걸음으로 화연의 방문 앞에 섰다. 별다른 가구하나  없던 그
녀의 방은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 였지만 훼이에게는  그런 것들 조차 그녀의
일부로 그립게 다가왔다.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그는 누렇게 빛이 바랜  문풍지로 덮힌 방문을 열었
다. 분명 화연은 그 작디작은 얼굴을 환한 미소로 채우며 자신을 맞이할 것이
다.
하지만 방안 어디에도 화연은 없었다. 뭔가 이상했다.
방안에 화연의 체취조차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에 당혹해하고 있을 때 훼이는
방 한구석에 비스듬한 자세로 누워서 자고있는 어린 소년을 발견했다.
이유모를 전율이 온몸을 감싸며 피어 올랐다.
검은천을 길게 잘라 대충 동여맨 머리카락에서, 오목조목하고  작은 옆얼굴에
서 화연의 모습이 엿보였다. 그리고.....  투명할 정도로 흰 피부는  바로 훼이.
자신의 것이었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훼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망연하게 소년을 응
시할 뿐.


  " 비야. 밥먹어라."

문을 열고 들어선 비영은 방안에 앉아있는 낯선  남자를 보고 흠칫하며 놀랐
다. 아니, 그것보다 그의 전신에서 피어오르는  이름모를 위압감에 자신도 모
르게 몸을 떨었다.
훼이의 눈이 천천히 비영에게로 향했다. 그는 비영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화연. 그녀의 하나뿐인 오라비가 아니던가. 화연은  언제나 자신 때문에 깊은
산속에서 촌부로 파묻혀 지내야하는 오라버니에게 미안함을 품고  있었다. 자
신이라는 짐이 없었다면 집안은 몰락했어도 분명 학자로 대성했을 거라며.
화연에게 이야기를 듣고 훼이는 먼 곳에서 그를 지켜보았다. 그때의 그에게는
확실히 기품이라고 부를만한 것이 풍겨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세
월이라는 무게에 짓눌린 투박한 촌부의 모습에 지나지 않았다.
한동안 훼이에게서 느껴지는 위압감에  몸을 떨던 비영은  천천히 몸을 굽혀
훼이의 앞에 앉았다. 그리고 나서 예의바르게 깊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비
영은 그순간만큼은 예전의 귀공자의 모습으로  돌아간 듯이 느껴질만큼 기품
이 있었다.

  " 비의...... 아버지시군요. 범상치 않은 분일거라 생각했지만 이토록 고귀하
신 분인줄은 몰랐습니다."

훼이는 씁쓸하게 미소지었다.

  " 화연은 이제 없는 것이군요."
  " 네. 비를 낳고 바로 눈을 감았습니다.  편지 한 장과 손가락에 끼고 있던
청옥 반지를 남기고 말입니다."

훼이는 비영이 건네주는 화연의 유품을 받아들었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끼워
주었던 반지는 다시 훼이의 손으로 돌아왔다.
곱게 접힌 빛바랜 화선지에는 깨알같이 작은 글씨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흐
트러진 글자 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곧고 바르게...

한동안 편지를 읽는 훼이를 조용히 바라보던  비영이 결심한 듯이 말을 꺼냈
다.

  " 비를 데려가 주십시오. 비는 이곳에 남아 있어야 할 아이가 아닙니다."

훼이는 화연이 남긴 말들을 가슴속에 새기며 다시 편지를 접었다.  정성을 담
아 곱게 편지를 써 내려가고 접었을 그녀의 모습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 그렇게 하겠습니다. 비는 흑룡의 피를 이어받은 제 아이니까요."

훼이의 말이 떨어지자 비영은 크게 놀란 듯 숨을 삼켰다.


그리고 다음날. 훼이는 비와 함께 천계의 흑룡궁으로 돌아왔다.


                     *            *            *


  " 저... 훼이......."

귓가에 울리는 유에린의 딱딱하지만 맑은  목소리. 훼이는 일부러 눈을  뜨지
않았다.
아직 그녀를 떠올리는 시간 속에 머물고 싶었기에.

비를 데리고 흑룡궁에 들어서자 일족들 사이에서 대 소란이 일어났다.
다음 흑룡왕이 될 자가 아직 정비(正妃)도 정해지지 않았는데  인간의 여인에
게서 아이를 낳다니.
노성을 터트리는 흑룡왕 앞에서 훼이는 스스로 후계자의 위(位)를 버렸다.
그리고 맑은 검은 눈으로 훼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비는 어렸지만 그 소란
의 원인이 자신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인간의 피가 섞인 흑룡의 아이를 일족들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용족 중
에서도 최강의 힘을 가졌다는 흑룡으로서의 자부심이 그것을 부추겼다.
훼이는 비에게 살벌한 일족들의 시선을 받게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훼이가
지금까지 일족들에게 가장 큰  신뢰를 얻고 있던  장남이었기에 더욱 여파가
큰 것이기도 했다.
그 때문에 흑룡궁의 본궁에서 멀리 떨어진  별궁에 기거하며 훼이는 비와 둘
만의 생활을 시작했다.

  " 훼이..........."

또 다시 유에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더 이상은 자는 척 할 수도 없다. 훼이는 머릿속에서 흘러넘치는 과거의
잔상들을 지우며 눈을 떴다.

숲은 여전히 눈부시도록 푸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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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와.... 추천 받았어요.... 기쁘다...
좋아해주시는 분이 계시니 더욱 힘을 내서 열심히 쓰겠습니다.



번 호 : 492 / 3334 등록일 : 1999년 06월 14일 23:45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330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3장 一.



                         흑룡의 숲


  제 3장 화살(矢)


      꿈에서 깨어나면 꿈꾸던 모든 것은 거품처럼 사라진다.
      하지만 가슴 깊은 곳에 남은 그때의 기억은
      때로 자신도 모를 눈물을 자아내게 한다.



  一.


흑룡왕비 미하의 앞에 선  유안은 투명하게 반짝이는  푸른 눈으로 어머니를
응시했다.

  " 걱정 마세요. 어머니. 전 최강의 흑룡이라구요."
  " 자만은 금물이다. 유안. 넌 아직 성인식도 치르지 않았어."

처음으로 수행을 위해 하계로  떠나는 아들을 앞에둔 미하는  걱정이 앞섰다.
아무리 별다른 위험 없는  하계로 가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성인식도 치르지
않은 어린아이에 불과한 유안이 잘 해낼지 걱정이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후계자의 위(位)를 받은 후에는 반드시 수행을 떠나야 했다. 라이엔과 미하는
나이에 비해 아이를 늦게 가졌기 때문에 유안은 성인식도 하기전에 후계자의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이다. 라이엔이 후계자가 되었을 때만  하더라도 그의 나
이는 200세를 넘긴 후였다. 하지만 유안은 100살이 되는  생일날 치르게 되는
성인식도 몇십년 후인 소년에 불과했다.

  " 그리고. 어머니 혼자 가는것도 아니잖아요. 청룡왕 후계자인 리린과 함께
라는 것. 잊으셨어요?"
  " 그녀의 나이는 확실히 250세 였지..."

유안의 말을 들으며 미하는 리린이라는 이름의  서늘한 눈을 가진 청룡족 후
계자를 떠올렸다.

  " 그렇다면 조금 안심이 되는구나."

미하는 여려 보이는 얼굴 가득 떠올랐던  걱정을 걷어 내며 자리에서 일어섰
다.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 몸에 걸친 황금색의 궁장이 사락 거리는 소리를 내
며 흔들렸다. 틀어올린 머리에서 몇가닥 흘러내린 금색의  머리카락이 미하의
어깨에 닿아있었다. 어머니의 뒷모습을 응시하던 유안은 문득  검은색인 자신
의 머리카락을 만지작 거렸다.
미하는 금박이 입혀진 보석 상자를 꺼내들고 뚜껑을 열었다.

  " 자, 유안. 이걸 가져가거라."

그렇게 말하며 미하가 내민  것은 보기드문 빙옥(氷玉)으로 만들어진  팔찌였
다.

  " 이건 왜..."
  " 기린족의 황녀에게 전해지는 물건이다. 그걸 지니고 있으면 네가 가진 힘
을 이끌어내는 것이 수월할 것이다."

유안은 기쁜 듯이 미소지었다.

  " 고마워요. 어머니. 소중히 간직할께요."
  " 아직 네가 성인식을 치루지 않았기에 주는 것이다. 네가 성인식을 치루고
보다 강한 힘을 얻게 되면 필요 없어질 테니 그때 다시 돌려주렴."
  " 네."

한동안 어머니 미하의 거처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사이에 어느덧 점심 시간이
가까워졌다.

  " 비전하. 왕자전하. 식사시간 이옵니다."

문 밖에서 시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이제 나갈까. 유안?"

미하는 아직은 자신보다 작은 유안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자신의 방을 나섰
다. 푸른눈을 가진 두 모자가 복도를 지나치자 주위의  시비와 병사들이 일제
히 인사를 했다.

  " 수고들 하게."

그들 한명 한명을 만날때마다 미하는 미소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정숙하고 아름다운 흑룡왕비 미하는 그 친절한 태도에서 모두에게 사랑을 받
는 존재였다. 아무리 큰 일이 일어나도 소리치거나 노하는 법이 없고, 모든이
에게 친절하게 전해지는 그녀의 미소는  가장 이상적인 여성이라는 백룡왕비
챠렌과 더불어 현숙한 여성의 대표로 꼽혔다.

  " 그저 보름이에요. 보름은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 시간이라구요."

되새기듯 말하는 유안을 보며 미하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그래. 유안. 잘 해낼 것이라 믿는다."

모자는 비밀을 획책하는 자들이 은밀한 미소를 지어보이듯 마주보며 살짝 웃
었다.

 
                      *            *            *


  [ 패사령진(覇邪靈陣) 개(開)! - 최상급 방어주문 - ]

날카롭게 외쳐진 유에린의 목소리가 울리자마자  유에린은 엷은 푸른색의 막
에 감싸였다.

  [ 개문(開門) 수(水) - 물을 근본으로 하는 중급 공격주문 -]

훼이의 목소리가 낮은 소리로 공격주문을 외쳤다.
그리고 곧 하늘에 떠오른 다섯 마리의 수룡은 빠른 속도로 유에린을 향해 날
아갔다. 긴장한 얼굴로 자신을 향해오는 수룡들을 바라보며  유에린은 다가올
충격에 대비했다.
엷은 막을 내려치는 수룡의 힘은 거대한 것이었다.  최상급 방어주문이었음에
도 불구하고 유에린은 엷은  막을 통해 전해지는 충격에  중심을 잃을뻔했다.
힘이 빠져나갈 듯이 휘청거리는 두 다리에 힘을 주며 유에린은 몸을 지탱했다.

  " 다음 공격에 대비해라."

훼이의 말을 들은 유에린은  긴장하며 훼이의 손을 주시했다.  하지만 훼이의
손은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 정신을 집중해."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강한 힘이 유에
린에게 짓쳐들었다.
유에린은 숨을 삼키며 거대한 수룡을 마주보았다. 수룡은 엷은  막에 닿자 파
앗하는 소리와 함께 두 개로 갈라졌다.

  [ 해제(解制) 수(水) - 공격을 비롯한 모든 주문을 해제한다 - ]

  " 손동작은 그저 눈속임에 불과한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력을
어떻게 이끌어 내느냐다. 잊었나?"

유에린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몸에는 후끈한 열기가 배어 조금씩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땀이 흐
른다는 것은 체력이 약하다는  증거. 자신이 능란하게 주문을  구사하는 날은
그저 먼 미래의 일로만 느껴졌다.

  " 넌 집중력은 강하지만 체력이 부족하다. 느끼고 있겠지?"
  " 네."

훼이는 가볍게 손을 휘둘러 공간을 열더니 그 속에 손을 집어 넣고 무언가를
꺼냈다.
그의 손에 들려 나온 것은 가느다란 검신을 자랑하는 두 개의 장검이었다.

  " 오늘부터는 체력을 키우기 위해 검술을 가르쳐주겠다."
  " 검술을.....말인가요?"
  " 용족에게 검술이 필요한 일 따위는 없지만 배워서 나쁠건 없다."

훼이는 낮게 내뱉으며 유에린에게 검을 내밀었다.

  " 검술의 기본은 호흡이다. 그리고 이 호흡은  주문을 사용하는데 있어서도
많은 도움을 주지.."

햇살에 비친 가느다란 검의 손잡이에는 날개를  펼친 학의 모습이 새겨져 있
었다. 그리고 손잡이 끝 부분에는 이름이 쓰여 있었다. 성휘(星煇).
누군가의 이름임이 분명했다. 성휘라면 남자의 이름이겠지. 잠시 검의 손잡이
에 새겨진 그림과 글자를 보며 생각에  빠져든 유에린은 귓가에 들려오는 훼
이의 낮게 울리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곧 훼이가 취한 자세를 그
대로 따라하며 손잡이에 두었던 시선을 떼었다.
 
  " 검은 검이 가진 본연의 속성인 날카로움으로 상대방을 제압한다. 힘이 센
사람들은 주로 검신이 두텁고 무거운 검을 사용하지만 힘보다 기술적인 검술
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검신이 얇은 검을 주로 사용하지.  그리고 여자들 역시
이 검과 같은 세검(細檢)을 쓴다."

여전히 냉담한 얼굴로 설명을 이어나가는 훼이의 가슴 속에서는 자신에게 이
검을 맡겼던 친구의 얼굴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 얼굴을  떠올리고 싶지 않아
서 공간 속에 이 한쌍의 검을 넣어두었던 것인데 이런식으로 빛을 보게 될줄
은 몰랐다. 유에린이라는 이름의 까마득하게 어린 저 청룡족의 소녀는 훼이에
게 가슴 깊은 곳에 가라앉은 추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전혀 연관성이 없는
둘 이었지만 무슨 이유인지 유에린의 얼굴에  그리운 친구의 얼굴이 겹쳐 보
이고 있었다.
항상 부드러운 미소를 떠올리고 있었지만  보는 이에게 처연함을 안겨주었던
친구의 얼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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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이름 짓느라 머리가 터져 버릴 것 같아요. 이제 대충 이 소설의 구성
방식이 어떤 것인지 눈치를 채셨겠죠? ^^ 네. 바로 시간이 뒤섞여서 전개가
되고 있는데요. 머리 복잡하지는 않으시죠?
시험인데도 꿋꿋하게 소설 쓰는 나...^^


번 호 : 494 / 3334 등록일 : 1999년 06월 15일 22:44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311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3장 二.



                          흑룡의 숲


  제 3장 화살(矢)


  二.



  " 어서 오십시오. 5대 용왕의 후계자들이여..."

막 천제의 거처인 상천궁(上天宮)에  들어선 다섯 명의 남녀는 자신들을 향해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는 천군(千軍)들의 사이를 지나 대전으로 들어섰다.
길게 이어진 대전의 양쪽에도 화선들을 비롯한 귀족들이 길게 늘어서 그들을
맞이했다. 천제가 앉아있는 상석에 자리한 태사의 양옆에는 천상계(天上界)
최고의 두뇌라 일컬어지는 천선들 중 두명이 화려한  궁장 차림으로 서 있었
고, 그 아래로는 한사람한사람의 힘이 영수족과 맞먹을 정도로 강하다는 검선
(劍仙) 몇 명이 소박한 흰 궁장 차림으로 늘어서 있었다.
막 중년에 접어든 듯한 외모의 천제는 목례로  자신에게 인사를 건네는 다섯
명의 용족들을 바라보며 중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그대들이 4계절의 용인 5대 용왕의 새 후계자가 된 것을 진심으로 경하하
오."
  " 감사합니다. 상제전하."

다섯 용족은 일제히 그렇게 답했다.

  " 저는 25대 백룡왕 후계자 론입니다."
  " 저는 27대 청룡왕 후계자 세류입니다."
  " 저는 28대 홍룡왕 후계자 화란입니다."
  " 저는 24대 황룡왕 후계자 서린입니다."
  " 저는 22대 흑룡왕 후계자 훼이입니다."

용족들의 전통 복식인 파오를 갖춰 입은 5명의  용왕 후계자들은 천제에게 각
자 자신을 소개했다.
5명중 유일한 여성인 홍룡왕 후계자 화란은  아직 후계자 신분임에도 불구하
고 머리카락의 색이 진한 붉은 빛을 띄고 있어 보는 이들에게 그녀의 힘이 얼
마나 강한가를 말해주고 있었다. 붉은 머리카락과 더불어 그녀는 화사하게 피
어난 꽃과도 같은 외모를 가지고 있어 더욱 눈길을 끌었다.

  " 내 그대들에게 다음 천제가 될 태자 오현을 소개하지."

천제의 말이 떨어지자 대전의 입구에서 지적이고 싸늘한 용모의 남자가 들어
섰다. 크고 마른 듯이 보이는 체격에 상대방을 꿰뚫을 듯한 날카로운 눈이 인
상적인 미남이었다. 전신에서 풍겨 나오는 냉기 때문에 호감을  주지는 못했지
만 성격이 무척이나 꼼꼼할 듯이 보였다.

  " 태자 오현입니다. 제현..."

무척이나 깍듯한 태도 였지만  멀직이 서서 그를  바라보던 훼이는 그에게서
뜻모를 거부감을 느꼈다. 자신들에게 향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마음속에서
는 분명 천인으로서 가져야 할 감정이 아닌 것이 꿈틀대는 것 같았다.

5대 용왕의 후계자들과 다음 천제가 될 태자 오현은 상견례를 나누었다.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그들이니 만큼 서로가 서로를 알아둘 필요가 있었다.


소위 인간들이 하늘이라고 부르는 세상은 모두  4개의 계(界)로 나뉜다. 먼저
용족들이 살고 있는 천계(天界)와  영수족들이 살고 있는 환계(幻界),  사후의
선한 영들이 환생을 기다리는 영계(靈界), 그리고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수명
을 관리하고 죽은 자들의  영혼을 심판하는 천상계.  즉, 옥황상제가 다스리는
영지의 4계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인간들이 사는 세상을 하계(下界)라 부르며 사후에 윤회를 명받지  못
한 영혼들이 떨어지는 곳이 바로 명계(冥界). 지옥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그 중에서도 세계를 지탱하는 5대 원소의 힘을  가진 용족들은 하계를 비롯하
여 4계 전체의 5대 원소의 균형을 유지하는 일을 하고 있다.

봄의 용이라 불리는 청룡은 목(木)의 힘을 근본으로 하며 동쪽을 수호한다.
여름의 용이라 불리는 홍룡은 화(火)의 힘을 근본으로 하며 남쪽을 수호한다.
조화의 용이라 불리는 황룡은 토(土)의 힘을 근본으로 하며 중앙을 수호한다.
가을의 용이라 불리는 백룡은 금(金)의 힘을 근본으로 하며 서쪽을 수호한다.
겨울의 용이라 불리는 흑룡은 수(水)의 힘을 근본으로 하며 북쪽을 수호한다.

이처럼 세상의 균형이라는 가장 중요한 일을 맡고  있는 만큼 천제로서도 용
족들을 무시하지 못할 만큼 용족들은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가장 우
위에 서서 모든 것을 관리하는 상제였지만 자신의  지위가 높다고 해서 용족
을 비롯한 영수족들을 마음대로 부릴 수는 없다. 지위는 천제가  가장 높지만
그들은 주군관계가 아니었다. 그저 그가  가진 천제라는 지위를 다른  이들이
존중해 주는 것뿐이었다.
천제로서도 그들을 소홀히 대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천제는 5대 용왕의 후계자들을 천상계로 초대한 것이었다.


천제가 5대 용왕의 후계자들을 위해 베푼 연회는 밤늦도록 계속 이어졌다.
잠시 연회장에 있던 훼이는 소란스러움에  환멸을 느끼며 연회석에서 빠져나
왔다. 훼이는 소란스러운 것이 싫었다. 연회를 즐기는 다른 용왕 후계자들 사
이에서 빠져나오자 가슴속이 후련해지는 것 같았다.

상천궁의 정원은 천계 못지 않게 잘 가꾸어져 있었다.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
움을 가진 수풀과 나무, 꽃들은 누가 일부러 심어 놓기라도 한 것처럼 어울리
는 장소에서 자라나고 있었고 곳곳에 자리잡은 누각과  정자 역시 풍광을 더
욱 운치 있게 만들어 주었다.
훼이는 상천궁의 정원을 거닐면서 이제 멀게 느껴지는 상천궁의 거대한 건물
을 응시했다. 한눈에 다 들어오지도 않을 정도로 거대한 크기의  궁에는 곳곳
에 연등이 걸려있어 밤임에도 불구하고 환하게 빛나며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
다.

검게 펼쳐진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과  커다랗게 떠오른 보름달은 상천궁에서
울려 퍼지는 비파소리와 어울려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광으로 훼이의 눈에 비
쳐왔다.

정원을 거닐며 미풍에 흔들리는 초목들을 바라보던 훼이는 문득 그리운 얼굴
을 떠올렸다. 벌써 1년이 다 되어가건만 그녀를 만나기 위해 하계로 내려가지
못하고 있다.

그녀는 얼마나 변해있을까.
천계에서 볼 수 있는 수많은 미녀들에 비하면  빛을 발하지도 못할 그녀였지
만 훼이에게 있어 그녀는 아침이슬을 머금은 풀잎처럼 신선하게 다가왔다.
흑룡왕의 후계자가 된 지금. 머지않아  그에겐 비를 맞아들이라는 말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어떤 여인도 화연을 대신할 수는 없다.
그에게 다가오는 여인은 많았지만 그가 먼저 다가선  여인은 오직 화연 뿐이
었다. 화연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계속  걸음을 옮기던 훼이는 어느새  널찍한
연못가에 도착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밤임에도 불구하고 속이  비칠 정
도로 투명한 연못 위에는 커다란 연꽃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멀리 상천궁에서
비쳐오는 빛을 받아 어렴풋이 자태를 드러내고 있는 연꽃들.

연못 중앙에는 돌로 만들어진  다리가 걸려 있었는데  어떤 명공의 솜씨인지
난간에 새겨진 십장생의 무늬들은 실로 감탄을 자아내게 할만큼 정교하고 아
름다웠다. 그리고 다리의 끝이 닿는 곳에는 정자(亭子)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정자 역시 칠 하나하나에 정성을 기울인 듯  밤임에도 불구하고 아스라한 달
빛 속에서 훼이의 시선을 잡아끌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훼이는 부드러운 미풍에 몸을 맡긴 채 다리 위를 걸었다. 끝부분에 닿자 정자
의 굵은 기둥에 기댄 채 밤 풍경 속에  녹아있는 누군가의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흰색의 장포를 걸치고 머리카락을 하나로 묶은 유약한 분위기를 풍기는
한 남자.
훼이는 말벗이나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남자에게 다가섰다. 훼이가  바로 곁에
다가설 때까지도 남자는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자세도 바꾸지 않은 채 하염없
이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 연회를 싫어하시나 보군요."

훼이가 말을 걸자 남자는 그때서야 조금 놀란 듯한 기색으로 고개를 돌렸다.

  " 아..... 별로......"

남자의 얼굴을 본 훼이는 속으로 감탄했다. 장포를 걸치고 있는 것을 보고 남
자라고 짐작은 했지만 그가 가진 용모는 훼이 조차  한번도 본 적이 없을 정
도로 실로 절세적인 것이었다. 갸름하고 섬세한 얼굴 선에 부드럽게 가라앉은
한 쌍의 눈과 한번 마주친 사람의 시선을 다시  돌리게 할만큼 깍은 듯이 단
정한 오관. 그리고 온몸을 감싼 기품.
그의 입가에는 엷은 미소가 떠올라 있었는데 그  미소에는 왠지 모를 처연함
이 담겨 있었다.


  " 그 파오...... 용족이시군요."

남자는 얼굴만큼이나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 네. 22대 흑룡왕 후계자인 훼이입니다."
  " 그러셨군요. 23대 흑룡왕이 되실 분..... 오늘은 연회에 참석하시러 오셨군
요."

훼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 그런데 왜 이곳에 계십니까. 보통 신분은 아닌 것 같은데...."

훼이의 물음에 남자는 살짝 고개를 저었다.
자세히 보니 훼이보다도 훨씬 어려보였다. 하지만 어려보이는 외모에 비해 그
가 가진 분위기는 무거웠다.

  " 전...... 옥황상제님의 아들인 성휘(星煇)입니다..."

성휘라고 이름을 밝히며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덧붙였다.

  " .....화선 소생의...."
  " 아....."

이제 왜 성휘가 홀로 떨어져 있었는지 이해가 갔다.
다른 모든 면에 있어서는 실로 뛰어나게 일을 처리하는 천제 였지만 여성 편
력에 있어서는 모든 이가 혀를 내두를 정도의 후문을 가진 그였다. 그의 여성
편력 때문이 아니더라도 전통적으로 상천궁에는 천군과 왕족,  귀족들을 제외
한 모든 이들이 여인이었다.
천제의 업무를 보좌하는 12명의 천선(天仙)들과,  그 수가 알려지지 않았다는
전투 선녀인 검선(劍仙). 그리고 상천궁을 돌보는 화선(花仙)들이 상천궁의 대
부분을 차지하는 선녀들이었다.
귀족이나 왕족 출신인 천선이나  검선과 달리 화선들은  평민 중에서 선발된
선녀들이었기에 피를 무엇보다 중하게 생각하는 그들로서는 화선출생의 아이
를 왕족으로 인정하려들지 않았다.
하지만 성휘는 화선 소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왕자라는 지위를 받은 것을 보
니 그에게 왕자의 지위를 내릴 때 얼마나 말이 많았을지 짐작이 갈 정도였다.

영수족이나 용족역시 피의 이어짐을 중하게 여겼지만 신분의 차별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기에 훼이는 더욱 천계인들의 사고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 한가하시다면 말벗을 해드리고 싶은데요."

미소를 지어 보이며 건넨 훼이의 말은 어둡게 가라앉아 있던 성휘의 눈에 생
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그날의 인연으로 천제의 유일한 왕자 성휘와 훼이는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천상계의 천인들은 용족이나 영수족에 비해  수명이 짧았기에 성휘역시 훼이
보다 한참 어렸지만 나이는 그 둘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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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오늘건 내용이 좀 길죠? 설정으로 가득 차 가지고...^^
매일매일 한편씩을 쓰려니 힘들지만 그래도 쓰고 나면 보람을 느낍니다.
오늘도 흑룡의 숲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를 드리며....


번 호 : 503 / 3334 등록일 : 1999년 06월 16일 22:41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308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3장 三.



                           흑룡의 숲


  제 3장 화살(矢)


  三.



  " 잊지마라. 유안. 비록 겉모습은 인간들과  별다를 것이 없지만 우리는 용
족이다.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용족  특유의 기운을 인
간들은 은연중에 느끼기 마련이다."

유안은 아버지의 얼굴을 마주 대하며 그의 말을 경청했다.

  " 그리고 인간들과 마주치지 않도록 조심하거라. 만약  부득이한 사정이 생
겨 인간들과 마주하게 되더라도 그들의 삶에 관여해서는 안된다. 꼭 명심하거
라."
  " 네. 아버지."
  " 자, 이제 가거라. 유안을 부탁하네. 리린."

라이엔은 차분한 표정을 떠올린 채 유안의 옆에 서있던 리린에게 당부했다.

  " 염려 마세요. 흑룡왕님."

짧게 대답하고 나서 리린은 공간을 여는 주문을 외쳤다.

  [ 역궁(繹窮) 개문(開門) ]

주문의 여파로 인해 미미하게 공기가 흔들렸다. 그리고 흑룡궁의 정원에 공간
이 열렸다.

  " 다녀오겠습니다."

기대감에 가득 찬 유안은 힘차게 인사를 하고 공간 안으로 들어섰다.
용족에게 있어서는 그저 편안한 휴식의 장소로 여겨질 정도로 위험성이 없는
하계로 가는 것뿐인데도 걱정이 앞서는 걸 보니 자신 역시 부모라는 것을 새
삼 깨달으며 라이엔은 몸을 돌렸다. 미하는 공간을 열고  유안이 떠나가는 모
습을 보기가 싫다며 먼저 궁안에서 인사를 나누었다.
라이엔은 치밀어 오른 걱정을 털어 버리려는 듯 걸음을 빨리 했다.
수행은 후계자가 되기 위한 하나의 수업(修業).  수행을 많이 하는 편이 유안
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었다. 어리다고 해서 언제까지 약하게  키울 수는 없는
법이었으니까.

  " 보좌관에게 집무실로 오라고 좀 전해주겠나?"

지나가던 시비 한 명을 불러 세워 그렇게 말하고 나서 라이엔은 집무실로 향
했다.


                      *            *            *


공간 안은 천계의 풍경과 별다른 것이 없었다. 단지 주위를 감싼 공기만이 조
금 다르게 느껴졌는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수행을 떠나는 유안에게는 모든 것
이 신기하게 다가올 뿐이었다. 차분히 걸음을 옮기는 리린과  달리 유안은 이
곳저곳을 둘러보느라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아직 성인식을 치르지 않았기 때문에 유안은  공간을 여는 주문을 사용할 수
없었다. 공간을 여는 주문은 고급에 속하는 것으로 보통의  용족들이 그 주문
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마력과 주문을 필요로  했는데 주문을 외치지
않고도 공간을 열 수 있는 것은 각 용족의 왕들뿐이었다.


  " 저..... 리린. 하계는 어떤 곳이에요?"

호기심에 가득 찬 푸른 눈이 자신을 향하자 리린은 엷게 웃으며 대답했다.

  " 천계 못지 않게 아름다운 곳이지. 그 때문에  하계에서 살다시피 하는 용
족들도 있을 정도야. 그들이 인간들의 눈에 띄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그런 것
들이 전해져서 전설이 되기도 했지."
  " 아......"

짧게 감탄성을 내뱉으며 유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 자, 이제 나가자."

공간 안에 들어선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그들은  어느새 공간의 반대편.
즉, 하계로의 입구에 도달해 있었다.

  [ 해제(解制) 지문(止門) ]

리린의 목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유안은 주위의 풍경이  확연히 달라진 것을
보고 입을 크게 벌렸다. 눈앞에는 마치 그림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유려한 풍
경이 펼쳐져 있었다.

  " 여긴 어디죠?"
  " 곤륜산(崑崙山)의 입구야. 인간들에게 선계(仙界)라고 불릴 정도로 하늘의
기운을 많이 품고있는 곳이지."

리린의 말대로 곤륜산은 맑은 정기로 가득 찬 곳이었다.  운무에 휩싸인 장엄
하기까지 한 봉우리들은 천계에서도 보기 드문 절경을 이루어내고 있었다.

  " 우리가 머물 곳은 곤륜산 정상이야. 저곳이라면  인간들과 마주칠 염려도
없고 지내기도 아주 편하지. 유안도 마음에 들 거야."
  " 리린은 여기 와봤나 보군요."
  " 응. 이번이 세 번째니까."

청룡왕의 무남독녀인 리린은 붙임성 있는 유안을  보며 동생을 얻은 듯한 기
분이 들었다. 이번에는 다른 용왕들의 후계자 선정이 늦었기  때문에 지금 후
계자의 위(位)를 받은 것은 청룡족인 리린과 흑룡족인 유안 뿐이었다. 청룡왕
과 흑룡왕이 나이가 많은 것에 비해 다른 세 용왕들은 수백살이나 어렸기 때
문에 그들이 후계자 선정에 느긋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 유안. 곤륜산의 경치도 감상할 겸 걸어서 가기로 할까. 아름다운 곳이 무
척이나 많으니까."
  " 좋아요. 리린."

유안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리린을 재촉했다.


                *            *            *            * 


  " 훼이.....?"

자신의 방안에서 서책들을 뒤적이고 있던 성휘는 방안에 들어선 훼이를 보자
반가움에 휩싸였다. 훼이의 얼굴을 보는  것도 꽤 오랜만이었다. 성휘와 달리
후계자의 신분을 가진 훼이였기에 그렇게 한가하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성휘에게 있어서 유일한 친구인 훼이는 지금까지 외로운 나날을 지내온 성휘
에게 있어 마음을 열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반갑게 인사를 건네던 성휘는 훼이의 표정이 굳어진 것을  발견했다. 늘 밝았
던 훼이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을  보자 자신의 일처럼 걱정이 앞섰
다.

  " 무슨일 있어.....?"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훼이의 앞에 다가선  성휘가 묻자 훼이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 화란이........ 그녀가....... 세상을 떠났어..."

그 말을 듣자 성휘는 둔기에 얻어맞은 듯한 굵은 통증을 느꼈다.

  " 아이를 낳다가 목숨을 잃었다고 하더군.......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 천계와
하계는 시간의 흐름이 다르다는 것을...... 그녀는 인간이었는데..... 왜 떠올리지
못했을까........."

훼이의 목소리에는 깊은 슬픔이  배어 있었다. 그리고 그런  훼이를 바라보며
성휘는 자신이 훼이에게 해줄 위로의 말이 없다는 것에 자책하고 있었다.

  " ...............아이는...?"

성휘는 겨우 그렇게 물었다.

  " 데려왔어. 하지만 아버님의 성화가 대단해서 여지껏  인사조차 시키지 못
했지....."

화연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의 훼이는 무척이나 즐거워  보였다. 그녀가 그토
록 좋냐는 성휘의 질문에 훼이는 짓궂은  미소를 떠올리며 사랑을 해보지 않
은 자는 말해도 알 수 없다는 대답을 했었다.


천계를 비롯한 환계나 천상계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가장 금기시 되는
것. 그것은 바로 인간과  사랑에 빠지는 것이었다. 인간의  피는 그들의 피를
흐리게 한다. 피가 흐려진다는 것은 힘이 약해진다는 것을 뜻했다.
그리고 극히 짧은 생을 살아가는 인간과는  사랑을 하면 괴로움이 남을 뿐이
었다. 죽은 자는 사라지면  그만이지만 남아있는 자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했기에.

  " 나... 후계자의 자리에서 물러날 거야."

성휘는 깜짝 놀랐다.

  " 대체...... 무슨 생각으로....."
  " 아버님이 그토록 노여워하시는 것도 내가 후계자이기  때문이지. 내가 아
니더라도 내겐 다른 형제들이  있어. 후계자의 자리보다......  그녀가 소중하니
까......"

훼이의 얼굴에는 굳은 결의가 떠올라 있었다.

  " 네가 바라는 일이라면..... 난 뭐라고 하지 않겠어."
  " 고맙다. 성휘."
  " 아이의 이름은 뭐지?"

막 돌아서려는 훼이에게 성휘가 물었다.

  " 비(飛)...."
  " 멋진 이름이구나...... 다음에 꼭 한번 데려와. 알았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린 훼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성휘는 자신에게 다가
와 준 유일한 친구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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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시온지요. ^^
이제 내일이면 시험이 끝이 나옵니다. 무척이나 기다려지는 방학이옵니다.
흑룡의 숲에서 가장 길어질 지도 모르는 3장 이옵니다. 너무 길어지면 다음 장으로
넘겨버리려고도 생각하고 있사옵니다.
그러면 읽어주신 모든 분들... 제 절을 받으시옵소서.....^^



번 호 : 517 / 3334 등록일 : 1999년 06월 17일 22:54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309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3장 四.



                           흑룡의 숲


  제 3장 화살(矢)


  四.


곤륜산의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구름의 바다는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할 만
큼 멋진 것이었다.
깎아질 듯이 위태롭게 솟아오른 봉우리들을 허리에서 감싸 안으며 구름은 낮
게 떠 있었다. 구름이 낮은 곳에 머물 만큼 곤륜산은 높게 솟아올라 자신의 자
태를 뽐내고 있는 것이었다.

  " 이야. 이런 곳이라면 정말 살고싶을 정도네요."

힘든 기색 하나 없이 싱글거리는 얼굴로 유안이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리린
역시 조금도 힘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 이제 이곳에서 네 힘을 키우는 연습을 하는 거야. 유안."

올라오면서 수도 없이 본 곤륜산의 풍경임에도 유안은 눈앞에 펼쳐진 운해(雲
海) 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 유안. 지금까지 몇 가지의 주문을 배웠지?"

재차 리린이 말하자 유안은 아쉬움을 담은 채 리린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 음.... 중급주문까지는 거의 다 배웠어요. 상급 주문도 배우긴 했지만 아직
쓰진 못해요."
  " 역시 흑룡족이네. 성인식도  치루기전에 고급 주문까지  깨우치고 있다니
말이야."
  " 과찬이에요."

유안은 어색한 듯이 웃어 보였다.

  " 용족들이 수행장소로 하계를 택하는  것은 하계의 환경이 천계와 흡사하
기 때문이지. 그리고 오행에 속하는 원소들의 힘이 충만해  있기도 하고 말이
야. 물론 천계만은 못하지만."
  " 리린은 성인식 치른 지도 오래됐으니까 고급 주문도 잘 쓰겠네요."

리린의 설명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던 유안이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후계자의 위를 받긴 했지만 유안은 아직 어렸다. 다른 이의 실력이 궁금한 것
은 당연한 것이었다. 더욱이  유안은 최강의 힘을 가진  흑룡족이었기 때문에
다른 용족 후계자들이 힘을 얼마만큼 잘 사용하는지 궁금했다.

  " 쓸 수 있긴 하지만 위력은 미약하지. 좀더 수련을 하지 않으면 안돼."
  " 음... 우리 그러면 아까  올라오다가 본 폭포 근처에서  수련을 하기로 해
요. 우리 둘다 물을 근본으로 하는 주문을 많이 쓰니까 그게 더 편할 것 같은
데 리린은 어때요?"
  " 좋아."


세차게 쏟아져 내리는 폭포 줄기에서 수룡이 고개를 쳐들었다.  마치 폭포 자
체가 살아있는 생명체인 것처럼 움직이는 듯이 보였다.  그리고 투명하게 속
이 비쳐 보이는 은은한 물빛의 몸체가 머리를 따라 폭포에서 튀어나왔다. 수십
장은 되어 보이는 폭포의 길이 만큼이나  거대한 몸체를 자랑하는 수룡은 유
연한 움직임으로 상공에 떠올라 있었다.
리린이 불러낸 수룡의 움직임을 말없이 지켜보던  유안 역시 작게 주문을 외
쳤다. 세차게 떨어져 내리는 폭포 소리 때문에 유안이  주문을 외치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주문의 여파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타났다.
폭포 위의 하늘이 어느 순간 검게 물들기 시작하더니 먹구름 사이에서 가느다
란 빗줄기가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그 빗줄기 사이로 묵빛의 용의 형상이 모
습을 드러냈다. 묵룡(墨龍) 역시 수룡처럼  투명하게 비치는 몸체에 은은하게
묵빛이 떠올라 있었다.

  " 굉장한데?"

리린은 감탄하며 자신이 불러낸 수룡을 묵룡의 근처로 움직이게 했다.

  " 좋아요. 리린. 한번 붙어볼까요?"

그렇게 말하는 유안의 눈에는 기대감과 흥분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            *            *            *


  " 무슨 소리냐. 훼이."

흑룡왕은 노기를 품은 얼굴로 훼이에게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참는 기운이
역력하게 배어 있었다.

  " 다시 말씀드려야 합니까? 전  분명 후계자에서 물러나겠다고 말씀드렸습
니다."
  "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냐."

두손을 부르르 하고 떠는 흑룡왕을 대신해  흑룡왕비인 훼이의 어머니가 말했
다. 그녀의 음성에는 노기가 깃들어 있지 않았지만 당황이 묻어나 있었다.

  " 두분께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제 아이를 흑룡족으로 인정하지 않으신 다
고 하셨습니다. 원로들도 마찬가지  이구요. 제겐 후계자의 위(位)  보다는 제
아이가 더 중요합니다. 그렇게  어린아이를 혼자 내버려  둘 수는 없습니다.
두분께서는 인정하지 않으실 지 모르지만 그 아이는 엄연히 제 아들입니다."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그리고 곧 폭발할 듯이  손을 떨며 화를 삭이고  있던 흑룡왕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 좋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해라. 그 대신 다시는 이 궁안에 발을 들여놓을
생각은 하지 말아라."
  " 무슨소리에요. 당신."

흑룡왕비는 남편의 말에 당황한  듯이 그를 바라보며  물었지만 그의 얼굴엔
고집스러운 표정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 그럼 물러가겠습니다. 부디 평안하시길."

훼이 역시 고집스럽게 인사를 하고 대전에서 빠져나갔다.
둘은 너무나도 닮은 부자지간 이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뜻을 꺾지 않는 고
집스러운 아버지와 아들.
흑룡왕비 만이 갑작스럽게 달라진 상황에 망연해  하며 아들이 서 있던 자리
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 아버지....."

훼이의 허리정도 까지밖에 오지 않는 작은 비(飛)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훼이
를 올려다보았다.

  " 왜그러지?"

조금 전까지와는 확연하게 다른 부드러운 얼굴로 훼이는 비를 바라보았다.

  " ......할아버님과는 만날 수 없는 건가요...?"
  " ............그래."

비는 실망한 듯 작은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훼이는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며 아들을 안아 올렸다.

  " 너무 실망하지 말거라. 네가 분명 훌륭하게 자라면 할아버님께서 먼저 널
보자고 하실 테니까."

어린아이 답지 않게 차분한 눈으로 훼이를 마주보며 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 조금만 기다려라. 어른이 되는 건 금방 이니까."


그리고 그날 훼이는 비와 함께 별궁중 하나로 거처를  옮겼다. 한순간에 후계
자의 자리에서 벗어나 지금까지와는 다른 나날을 누리게 되었지만 훼이는 오
히려 그것이 더 자유롭게 느껴졌다.
지난 10년간을 하계에서 보낸 비는 어린아이답게 천계의 생활에 놀랍도록 쉽
게 적응했다. 혹시 라도 하계로  돌아가겠다고 하는 건 아닐까  내심 걱정하던
훼이였지만 그건 기우에 불과했다.

늘 북적대는 본궁 흑룡궁에서의 생활과 별궁에서의 생활은 확연히 달랐다. 본
궁에서 생활할 때는 식사 및 의복 준비. 청소에  이르기까지 훼이의 주변에서
항시 맴도는 수십 명의  시비들과 후계자로서의 수업을  받기 위해 쉴새없이
수행과 업무처리등을 반복하는 생활로  시간을 보내왔다. 그야말로  정신없는
생활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어떻게 그런 생활들에 적응하고  살아왔는지 신
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별궁에 배치된 인원은 별궁의 관리를 위해  상주하고 있는 세명의 시비와 병
사하나. 그리고 시종 한명 뿐이었다.  본궁에서 일어난 소란을 아는지 모르는
지 별궁에 머물겠다는 훼이와 비를 그들은 따스하게 맞이했다.

  " 전하. 식사는 어제처럼 밖으로 가지고 나갈까요?"

애띤 얼굴의 시비가 물어왔다.

  " 그렇게 해주겠나. 그리고 난 이제 후계자가 아니니 전하라고 부를 필요는
없네."

훼이의 말에 시비는 웃음띤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 전하는 언제까지나 전하이신 걸요. 이름은 상관없습니다."

훼이는 그렇게 대답하며 방을 빠져나가는 시비의 뒷모습을 보며 묘한 감응을
느꼈다. 항상 앞만 보며 살아온 자신이었기에 주위에서 어떻게 자신을 생각하
고 있는지 조차 신경 쓰지 못했었다.  아니, 그보다 시비들의 존재 자체를 염
두해 두지 않고 살아왔던 것이다.

  " 아버지. 오늘은 뭘하지요?"

밖에 나갔다가 막 상기된 얼굴로 들어선 비가 물었다.
비의 몸에 맞게 만들어진 중간 길이의 검은 파오는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비
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훼이는 처음 비와 마주 대했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 비
가 걸치고 있던 낡은 장포는 천계로 돌아오기 전에 화연의 집에 벗어두고 온
차였다. 언제고 비가 떠날 것을 알고있던 비영은 비를 위해 값비싼 비단 옷을
마련해 두었었다.
그랬다. 화연과 비영. 그들 두 남매는 배려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다. 10년이
나 남자 혼자의 손으로  키운 누이의 아이를  무작정 떠나보내면서도 비영은
붙잡는 말 한번 내뱉지 않았다.

  " 오늘은 네게 간단한 주문  몇 가지를 가르쳐주마. 이를테면  구름을 불러
비를 내리게 하는 주문 같은 것을 말이다."
  " 정말이에요? 저도 할 수 있어요?"

비영은 눈을 크게 뜨며 훼이에게 물었다. 어린아이답게 금새  마음이 들뜬 모
양이었다.

  " 물론이다. 흑룡들은 태어날 때부터 비를 부르는 힘을 가지고 있단다."

훼이의 대답에 비는 활짝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훼이는 그 웃음에서 화연의 미소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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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와.....너무 기뻐요. 추천해주신 꾼2님(예전에 해주셨는데 감사도 안드려서 정말
죄송...) 그리고 ELENOA님. 감사합니다. ^0^
흑룡의 숲의 세계관 설정을 위해 쓴 소설에서는 같은 배경이지만 스케일이 좀
작았었는데.... 이번엔 엄청 커지고 있습니다. 글 전개 속도는 느린편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저희 언니는 빨리빨리 뒷 내용 쓰라고 그러더군요. 제가 뒷 내용
말해줬거든요...^^  그러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번 호 : 530 / 3334 등록일 : 1999년 06월 18일 22:20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99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3장 五.



                           흑룡의 숲


  제 3장 화살(矢)


  五.


비와 별궁에서 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한 달이 지나갔다. 그 동안 비는 시비들
과 매우 친해져서 그녀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훼이는 별궁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하루종일 비의 곁에서 시간을 보
냈다. 인간의 피가 섞여있었기 때문에 비가 가진 힘에 조금 의심을 가졌던 훼
이였지만 비는 주문을 통해 자신의 힘을 사용하는 일을  능숙하게 해냈다. 흑
룡왕의 장남으로 태어난 훼이는  어릴 때부터 다른  누구보다 뛰어난 재능을
보였었다. 하지만 그런 자신의  재능도 비에게는 이기지 못할  거라고 생각될
정도로 비는 모든 것들을 빠르게 배워나갔다.
아직 어린아이일 뿐인데도 비는 무척이나 이해가 빨랐다. 단지 체력이 약하다
는 것만 제외하면 이제 비도 한 명의 훌륭한 흑룡족이었다.

  " 비. 오늘은 내 가장 친한 친구를 소개시켜주마."
  " 아.... 천상계의 왕자라는 분말이죠. 아버지?"
  " 그래. 정말 좋은 사람이지. 너도 분명 그렇게 느낄 거다."

별궁에서 살기 시작한 이래로 처음 하는  외출이었기에 비는 즐거운 것 같았
다.

  " 자. 이게 공간을 여는 술(術)이다."

비를 향해 미소지어 보이며 훼이는 아무런  주문도 외치지 않고 공간의 문을
열었다. 그저 약간의 미미한  파동이 느껴지는가 싶더니 비의  눈앞에 공간이
열렸다. 그것을 본 비는 깜짝 놀란 듯이 감탄성을 내뱉었다.

  " 너도 얼마 지나지 않으면 할 수 있게 될 거다."

둘은 공간에 들어선 후 천상계의 성휘에게로 향했다.


  " 오랜만이군. 성휘."

언제나처럼 성휘는 의자에 편안하게 기대어 앉은 채 서책을 뒤적이고 있었다.

  " 아..... 훼이..."

익숙한 목소리에 반가움을 표하며 성휘는 책을 덮었다.

  " 그쪽은....."
  " 소개하지. 내 아들 비야."

성휘는 잠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약간은  의외라는 듯한 표정
을 떠올리며 비에게 인사를 건넸다.

  " 반갑다. 비."
  " 안녕하세요."

성휘에게 인사를 건네며 비는  환하게 웃어 보였다. 언제나  훼이에게 아련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그 미소를 보며 성휘역시 환한 미소로 답했다.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훼이가 사랑했던 인간의 여인의  모습을 성휘역시 비
를 통해 볼 수 있었기에. 왜 훼이가 그녀에게 끌렸는지 그녀와의 사이에서 태
어난 자신의 아들 비를 위해 후계자의 위를 버렸는지도... 알 수 있었다.
분명 자신이 훼이였더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이제까지의  자신에게는 그토
록 소중한 존재는 없었지만 느낄 수 있었다. 훼이의 마음을.

  " 훼이를 많이 닮았구나."

성휘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성휘는 그렇게 말하며 두 부
자에게 자리를 권했다.

  " 차(茶). 마셔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마셔보겠니?"

성휘가 자신에게 묻자 비는 밝게 빛나는 검은 눈으로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
였다.

  " 네. 마셔보고 싶어요."
  " 좋아. 잠시만 기다려라."

성휘는 기분 좋게 대답하며 지난번에 동생에게 받은 용정차( 精借)  잎을 꺼
냈다. 모든 차중에 가장 일품으로 여겨지는 용정차는 천상계에서도 왕족 이상
이 아니면 맛볼 수 없는 귀한 것이었다. 성휘는 술보다는 차를 즐기는 편이었
기에 여러 종류의 차 잎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꺼낸  용정차 잎은
천상계에서 유일하게 그를 이해해주는 여동생 가진으로부터 받은 것이었다.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엷은 녹색의 찻물을  내려다보며 비는 신기한 듯 시선
을 떼지 못했다.

  " 차를 마실 때는 단숨에 마시지 말고 천천히 그 맛과 향을 음미하면서 한
모금씩 마셔야 한단다."

훼이는 조용히 성휘가 비에게 다도에 관해 가르쳐주는 것을 즐거운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포근하게 내려앉는 저녁 공기와 같은 평화로움이 그들을 감싸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의 슬픔은 없을 것이라  생각하며 훼이는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따스한 미소를 떠올리고 있었다.


                   *            *            *


곤륜산에서 수행을 하면서 지낸 지 어느덧 열흘째가 되었다.
인적이 드문 곤륜산의 구석구석에서 유안과  리린은 마음껏 자신들이 배워왔
던 주문들을 쓰며 시간을 보냈다. 유안은 머지않아 흑룡궁으로 돌아가야 한다
는 사실도 잊은 듯 수행의 즐거움에 한껏 빠져 있었다.

  " 받아요. 리린."

유안은 손에 들고 있던 복숭아 하나를 리린에게 던졌다.  리린은 유안이 던진
복숭아를 가볍게 받아들며 싱긋 웃었다.

  " 어때? 보름의 시간이 너무도 짧다는 걸 알겠지?"

유안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 리린과 함께 라서 다행이었어요. 유사한 주문들도 많이 쓸 수 있었고."
  " 난 천계에 돌아가면 당장에 다른 주문들을 배워야겠어. 성인식도 아직 치
르지 않은 너한테 밀릴 정도라니. 내 체면이 말이 아니야."

뾰루퉁한 얼굴로 말하긴 했지만 리린의 어조에는 책망하는 뜻은 조금도 담겨
있지 않았다.

  " 자, 오늘은 충분히 수련했으니까 그만 쉬도록 하자."
 
리린과 유안은 나란히 걸음을 옮기며 복숭아를 베어 물었다.


그리고 곤륜은 두 용족을 품은 채 조용히 밤을 맞이했다.
검게 펼쳐진 밤 공기  속에 녹아든 곤륜의 숲은  낮의 푸르름을 모두 감추고
검은 그림자 속에 자신을 묻었다.
세차게 물이 떨어지는 거대한 폭포 옆의 나무 아래에는 몸을 눕히고 깊게 잠
든 유안의 모습이 보였다. 몸에 걸친 검은색의 파오 때문에 유안의 모습은 눈
에 잘 띄지 않았다. 반면에  파란색의 파오를 걸친 리린은 유안이  몸을 눕힌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앉은 채 눈을 감고 있었는데. 어둠 속에서도 그녀가
몸에 걸친 파란 파오는 어렴풋하게 자신의 색을 드러내고 있었다.

세차게 떨어지는 물소리와 가끔 불어오는 바람에 가지를 흔드는 나무소리. 그
리고 작게 들려오는 유안과 리린의 고른 숨소리만이 밤 공기 속에서 울려 퍼
졌다. 그렇게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잠시 몸을 뒤척이던 유안이 다시
자세를 바로잡고 잠 속에 빠져든  바로 그 순간. 세찬 폭포수  아래로 흐르는
널찍한 못의 맑은 물이 밤의 어둠이 간직한 빛처럼 검게 물들어 가기 시작했
다. 칠흑처럼 어두운 검은빛도  아닌 탁하긴 하지만 속이  비치는 검은빛으로
물의 색이 변해갔다.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의 물은 여전히 흰 포말과 함께 부
서져 내리고 있는데 오직 고인 물의  빛깔만이 검은 색으로 물들어 가고있었
다. 검은빛으로 물든 물은  마치 원래의 빛깔이 검은색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 오랜 숙원을 풀 때가 다가왔다........>

그리고 어디서부터 들려온 소리인지  알 수 없는  음산하면서도 작은 울림이
폭포 소리를 뚫고 들려왔다. 원래대로라면 폭포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어야
할 그 소리는 특별히 큰 소리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뚜렷하게 들려왔다.
그 이상한 현상을 느끼지 못하는지 깊이  잠든 유안과 리린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 이제 저 심연에서 벗어날 수 있다........>

다시 들려온 그 목소리에는 묘한 울림이 담겨 있었다. 기쁨 같기도 하고 분노
같기도 한.

쏴아아. 세찬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며 지나갔다. 마치 깊이 잠든 두 사람에
게 경고를 전하듯이.


날이 밝았다. 유안은 두  팔을 펼치며 기지개를 폈다.  나무 사이로 비쳐드는
햇빛은 따스하게 숲을 밝혀주었다. 잠기운을 몰아내기 위해 못가로 다가간 유
안은 투명하게 흐르는 물 속에 손을 담갔다. 뼈까지  시리도록 차갑고 청명한
물이 기분 좋게 느껴졌다. 그리고 어느새 뇌리를 점령하고  있던 잠의 기운은
달아나 버렸다.

  " 어제 좀 피곤했던 모양이네."

언제 일어났는지 리린은 품안에 과실들을 안고 유안의 곁에 다가서 있었다.

  " 곤륜의 대지가 날 반기는 모양이죠. 놓아주기 싫었는지도."
  " 이제 감상적인데?"

유안은 씩 하고 웃어 보였다.

  " 오늘도 빨리 식사를 마치고 힘을  겨뤄봐요. 리린. 어제는 무승부 였으니
오늘은 꼭 결판을 내야겠어요."
  " 좋아. 아무리 네가 흑룡족이라지만 난 너보다도 엄연히 오랜 시간을 살아
왔다구. 질 수야 없지."

유안은 손을 담갔던 시리도록 맑고 투명한  물에서 손을 꺼내며 몸을 일으켰
다. 요란한 굉음과 함께 폭포수는 변함없이 거대한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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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드디어 뭔가가 시작될 것 같지요? 지금까지의 순탄한 전개와는 조금
다른 전개가 시작됩니다. 3장도 이제 얼마 안 남았군요. 다음편에서 바로 4장이
시작될지도 모르죠.. ^^ 지금 이야기는 엄청난 초반부인데 끝까지 읽어주실 수
있으신가요? (네. 저나 열심히 쓰라구요 ^^ 알겠습니다.)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날리며..... 전 이만 샤샤샥....
  



번 호 : 540 / 3334 등록일 : 1999년 06월 19일 21:50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98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3장 六.



                           흑룡의 숲


  제 3장 화살(矢)


  六.


명진관(命鎭館). 성휘는 금빛의 힘찬 필체로 쓰여진 편액을 바라보며 잠시 숨
을 가다듬었다.

깊게 가라앉은 밤 공기는  조심스러운 성휘의 발소리도  금방 읽어낼 정도로
고요했다. 천상계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잡은 상천궁. 그리고 그보다 더 깊숙
한 곳에 있는 명진관. 명진관을 관리하는 것은 12 천선중 하나인 서빈과 구천
현녀로 그들은 천선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는 만큼 위세또한
대단했다.

아직 해뜨기까지는 한시진도 더 넘게 남은 새벽. 성휘는  굳게 닫힌 명진관의
문에 손을 가져갔다. 감히 그곳에 들어가려고 생각하는 자는 없었기에 명진관
의 거대한 문에는 빗장조차 걸려있지 않았다.
미세하게 끌리는 소리와 함께 명진관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문
에 새겨져 있던 두 마리의 주작의 형상은 문이 열림과 동시에 성휘의 시야에
서 사라졌다.
명진관 안은 끝도 보이지 않을 만큼 넓었다. 원래부터  끝은 존재하지 않을지
도 몰랐다. 명진관은 바로 세상의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수명을 관리하는 곳
이었기 때문에. 이 넓은 곳에서 자신이 목적하는 것을 찾기위해서는 한시진의
시간은 너무나 빠듯했다. 성휘는  두리번 거리며 나무 책장이  일렬로 한없이
늘어서 있는 사이를 걸었다. 책장에 꽃혀있는 두루마기들에는  모든 살아있는
이들의 수명이 적혀 있었다. 그 두루마기들은 수명부(壽命簿) 라고 불렸다.
물론 그곳에는 옥황상제를 비롯한 천상계 사람들의 수명부도  있었다. 하지만
성휘가 찾는 것은 자신의 수명부 따위가 아니었다.
한참을 두리번 거리며 명진관 안을 거닐던  끝에 성휘는 이윽고 목적했던 두
루마기를 발견했다. 아직 새것인 듯 다른 수명부와는 달리  하얗고 깨끗한 그
수명부는 주위의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용족들의 수명부 사이에 있었다.

비(飛). 그 이름이 적힌 수명부를 꺼내들며 성휘는 떨려오는 마음을 진정시켰
다. 그리고 나서 조심스럽게 두루마기를 펼쳤다.


  " 무얼 하시는 겁니까!"

망연한 얼굴의 성휘를 바라보며 상천궁 수비대장 이수는 노성을 내질렀다.
성휘의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았지만 명진관안에 들어선 이상 그가 누
군가의 수명부를 보기 위해 이곳에 들어왔다는 것은 자명했다.

  " 상제께서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그런 건 염두에 두지도 않으십니까?"

이수는 다른 귀족들이나  왕족들처럼 성휘를  경멸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비호하지도 않았다. 어디까지나 상천궁  수비대장으로서 그는 냉정하게  모든
것을 판단했다.
성휘는 여전히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 어서 나가시죠. 아무리 왕자님이라고 하셔도 이번일은 간과하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성휘는 이수가 이끄는 대로 명진관  밖으로 나왔다. 명진관 밖에는  많은 수의
천군들이 도열해 있었다.

  " 거처로 모시고가라."

이수의 명령에 몇 명의 천군이 성휘에게로 다가섰다.

천군들에게 거의 끌려가다시피 하며 명진관  앞에서 떠나는 성휘의 뒷모습은
슬퍼 보였다.


                      *            *            *


  " 유배.......?"

훼이는 자신에게 말을 건네는 아직 앳띤 얼굴의 천군을 보며 되물었다.

  " 예. 왕자님께서 자세한 이야기도 하지 못하고  떠나게 되어 미안하시다며
절 보내셨습니다."

훼이는 갑자기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 무엇 때문에 갑자기 유배를 명받은 것이지?"

훼이가 묻자 천군은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 그건..... 왕자님께서 직접 말씀하시겠다며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하셨습니
다. 유배에서 풀려나기만 하면 그때 말씀드리겠다구요."

유배. 유배라니.... 갑자기 헛웃음이 나왔다.
아무리 성휘가 눈엣가시처럼 여겨지는 화선  소생의 왕자라고는 하지만 천상
계의 왕자라는 신분을 가진 그를 그렇게 쉽게 유배 보내다니.

  " 그 이외에 전한 말은 없었나?"
  " 그저 미안하다는 말씀밖에는....."

대체 무엇이 미안하다는 말인가. 가슴이 답답해져왔다.
대체 천상계의 천인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몸  속에 흐르는 피는
모두 같은 것이거늘. 어째서  그렇게 신분에 얽매이려고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왕자라는 신분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성휘는 언제나 자신의 방에서 거의 나
올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근신하듯이 지금까지의 시간들을  보내왔다. 활동적인
용족의 피를 가진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성휘
는 담담하게 자신에게 던져지는 모멸의 시선을 견뎌내며 자랐다. 성휘의 인내
심은 참으로 깊은 것이었다. 그런 질식할 듯한 공기  속에서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다. 성휘의 얼굴에 떠오른 슬픈 듯한 미소는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몰랐
다. 나쁜 쪽으로 성격이 변하지 않는 대신 성휘는 조용하게, 존재감조차 희미
할 정도로 자신을 감추며 지내온 것이었다.

훼이는 자신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네고 천상계로 돌아서는 천군을 바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 성휘...... 대체 무얼 한 거야........"

훼이는 혼잣말처럼 작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반년이 넘게 지나도록 훼이는 성휘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공간을 열
고 돌아다니며 성휘가 있는 곳을 찾아볼 까도 생각했지만 자신이 나타나는 것
이 성휘에게는 오히려 나쁜 영향을 끼칠지도 모르는 일이었기에 훼이는 성휘
의 유배가 풀리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            *            *            *


하늘에 걸려있는 붉은 노을을  바라보며 유안은 리린과  함께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어느새 익숙해진 하계의 공기. 천계와는 조금 다른 향기가  맴도는 그 공기에
유안은 어느새 취해버린 것 같았다.

  " 빨리 성인식을 치렀으면 좋겠어요."
  " 그래. 얼마나 남았지?"

유안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 21년이요."
  " 지내다 보면 금방 이야."

노을은 어느덧 붉은 빛을  서서히 잃어가고 있었다. 하늘의  동쪽 끝에서부터
아스라한 어둠이 밀려와 세상을 뒤덮듯이 퍼져 나갔다.

  " 밤하늘을 보면 제 백부님이 생각나요."

유안이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말에 리린의 눈동자는 미미한 떨림을 보였다.

  " 그분은...... 어떤 분이시지..?"
  " 무척이나 좋은 분이세요. 누군가와 만나기를 꺼려하시긴 하지만 제겐 단
하나뿐인 백부님이시고....... 누구보다 제가 가장  존경하는 분이기도 하죠. 모
두들 말은 꺼내지 않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거에요."

리린은 그래 하고 작게 대답하며 유안에게로 돌렸던 시선을 거두어 들였다.

  " 이제 폭포로 돌아가요. 리린."

한동안 아무 말없이 각자의  생각에 빠져있던 둘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어느새 주위는 달빛에 감싸여 있었다.


그것은 무척이나 이상한 느낌이었다. 분명 지금은 봄 날씨였건만 유안은 온몸
을 찌를 듯한 냉기 속에 파묻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유도 없이 몸이 떨
려왔다. 하지만 그것은 주위가 차갑게 식었기 때문에 느껴지는 한기는 아니었
다. 겨울을 지배하는 흑룡족인 유안이 까닭 없이 추위에 몸을 떨 일은 없었다.
유안은 눈을 뜨려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눈꺼풀하
나 들어올리는 일인데도 몸이 의지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것이다.

귓가에서는 여전히 폭포의 굉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혹시 이건 꿈이 아닐까. 그렇게도 생각해 보았지만 열흘 넘게  지내온 이곳의
대지는 이제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  있었기에 꿈이라기엔 너무나 생생하게
대지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유안은 계속해서 몸을 움직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여전히 손끝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리린..... 리린도 혹시 나처럼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계속 머리 속으로 생각을 떠올리던 유안은 주위에  있을 리린의 몸에 걱정이
미쳤다. 하지만 그 사실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

  < 애써 몸부림 칠 필요 없다........ >

뼈끝까지 파고들 듯한 한기가 담긴 음성이 유안의 머리 속에 울려 퍼졌다.

누구지....?
유안은 그 목소리의 주인을 보기 위해 다시 한번 눈에 힘을 주었다.

  < 아무리 강한 힘을 가진 흑룡족이라도 아직 제대로 된 힘을  가지지 못한
너는 내 상대가 될 수 없다........>

대체 누구야....!
하지만 유안은 자신을 내리누르는 힘을 가진 존재를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유안의 몸을 감싸오던 냉기가 더욱 강해졌다.


  " 유안!"

리린은 유안의 몸을 감싸고 있는 투명한 검은  안개를 없애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그것은 리린의 힘을 그대로 흡수해 버렸다.
형체도 없이 사그러들지도 않는 그 안개는 점점  짙은 검은색으로 물들어 가
며 유안의 몸에 달라붙었다.

  < 청룡족의 여인이여....... 흑룡들에게 전해라. 이 흑룡족의 아이를 심연으로
데려가겠노라고.........>

온몸에 소름이 돋게 만드는 냉기 서린 음성.

  " 넌 누구냐!"

리린은 날카롭게 외쳤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점점 더 빛을 더해 가는 검은 안개만이 리린의 시야를 가득 채울 뿐. 이제 더
이상 유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힘빠진 얼굴로 주저 앉아있는 리린의 몸에 아침의 햇살이 비쳐  들어왔다. 리
린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한 일족의 후계자인 자신의 힘으로도 유안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도 분했다.

한동안 주저 앉아있던 리린은 입술을 깨물며 일어섰다.

  [ 역궁(繹窮) 개문(開門)! ]

부서질 듯 쏟아지는 폭포 소리보다도 더 크게 리린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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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금어울님, 마계요정님, 다루마님, 미스리드님, 다크스폰님, 천랸화니님과
만났습니다. 평소에 무척 보고싶었던 분들이었는데 만나니까 감회가 새롭습니다.
^^ 모두들 멋진 분들 이었어요.
이야...이제 3장이 끝날때도 얼마남지 않았네요. 힘내서 열심히 써야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당..


번 호 : 564 / 3334 등록일 : 1999년 06월 20일 23:29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94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3장 七.


 
                           흑룡의 숲


  제 3장 화살(矢)


  七.


햇빛에 반사된 검날의 빛은 숲 이곳저곳에서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산
발하는 빛무리가 쏟아져 내리는 듯한 광경이었다.
그 번쩍이는 빛의 수와는 반대로 숲에서 울리는 소리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
언이 아닐 정도로 들려오지 않았다.  검과 검이 마주칠 때 나는  소리는 얇은
천을 가를 때 나는 소리 정도밖에 들리지 않았다.

유에린은 오직 자신의 눈앞에서 움직이고 있는 훼이의 검만을 응시했다. 온몸
의 모든 신경이 그 검으로 쏠려 있었다. 마치 나비가 날갯짓을 하듯이 사뿐한
몸놀림으로 유에린은 훼이의 공격을 막아내며 움직였다.
처음 검을 잡았을 때는 검을 휘두르는  것조차 너무나 어색하게 느껴지던 자
신이었건만 지금은 몸의 일부인 것처럼 유연한 움직임을 보이는 검의 궤적을
보며 유에린은 스스로도 놀라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동안 훼이의 공격을 막아내던  유에린은 갑자기 사라져버린 훼이
의 검날을 느끼고는 몸의 움직임을 멈췄다.
훼이는 검끝을 땅으로 향하게 한 채 진중한 얼굴로 유에린의 등 뒤쪽을 바라
보고 있었다. 훼이의 시선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끼고 유에린 역시 몸을 돌
려 뒤쪽을 바라보았다. 유에린이 시선을 돌리자마자 눈앞의 숲이 이상하게 일
그러지더니 공간이 열렸다. 그리고 그 속에서 딱딱하게 굳어진 안색을 하고있
는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 라이엔."

훼이의 입에서 남자의 이름이 불리워 지자  그는 공간 안에서 빠져나와 훼이
의 앞에 섰다.

  " 형님.......유안이......명계로 끌려갔어요."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이 보였던  훼이의 얼굴이 라이엔과 마찬가지로 굳
어지는 것을 보며 유에린은 조금 놀라고 있었다.

  " 어떻게 된 일이지?"
  " 그게.... 후계자가 된 후에 떠나야  하는 보름간의 수행을 위해 유안을 보
낸 것이 얼마전의 일이었죠. 물론 유안은 아직 성인식도  치르지 않은 아이이
기 때문에 청룡족의 후계자인 리린과 함께 하계로 떠났죠...."

라이엔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유에린은 그곳이 자신이 있을 자리가 아니
라고 판단하고 훼이와 라이엔이 서 있는  곳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나무기둥
에 기대어 앉았다. 멀리서 바라보니 라이엔과 훼이의 분위기는 흡사했다.
라이엔이라는 이름은 분명 현  흑룡왕의 이름이었다. 흑룡족의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눈에 띄게 흰 피부와 차분히 가라앉은 검은색의 머리카락.

핏줄의 이어짐이란 그런 것이었지.....
유에린은 문득 자신이 왜 지금 이곳에 있는지를 떠올려 보았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려 할 때마다 생각나는  것은 오직 허공을 수놓으며 흩
어져가던 붉은색의 혈화뿐이었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그의 얼굴에 어떤 표정이 떠올라 있었는지. 왜 그가 그런 무모한 싸움을
시작했는지. 유에린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과연 자신이 훼이에게 주문을 배운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인가....
하지만 그 답은 유에린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흘러간  시간은 어느 누
구의 힘으로도 되돌릴 수 없으니까. 하지만 지금 이렇게 라도 그 사라져 버릴
것 같은 작은 자락을 붙잡지 않았다면 유에린은 무너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유에린은 왕족도, 귀족도 아닌 그저 평범한 한 명의 청룡족 여인에 불과했다.

  " 한동안 자리를 비울 것 같다."

언제 다가왔는지 훼이는 유에린의  앞에서 말을 걸고 있었다.  유에린이 눈을
돌려서 바라보니 라이엔은 여전히  조금 전에 서있던  곳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 네....."

유에린은 짧게 대답했다.
훼이는 그 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은 채 돌아섰다.

훼이와 라이엔의 모습은 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사라졌다.
그리고 유에린의 눈에는 여전히 그 잔상이 남아 있었다.


          *            *            *            *


  " 오랜만에 다시 하계에 내려온 소감이 어떠하지?"

훼이는 자신의 어깨에 앉아있는 비에게 물었다. 비는 그저  맑은 검은 눈으로
주위의 풍경을 바라볼 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분명 훼이가 1년만에 하계에 내려왔을 때 느꼈던 그 경이로움과 생소함을 비
도 느끼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두 개의 시간대를  살아가는 용족으로서는 하
계의 그 뚜렷한 변화는 언제나 신선한 놀라움으로 다가오곤 했다.
더 이상은 훼이도 아무말을 하지 않은 채 두 부자는 발길이  닿는 그곳. 화연
의 집으로 향했다.
비는 여전히 어린아이의 모습 그대로 였지만 하계는 이미 15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후였다. 화연의 집이 자리잡고 있던 산 중턱의  마을은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있었다. 멀리서도 확연히 느껴질  정도로 집들이 빽빽
이 들어차 있었고 예전에는 야트막한 산지였던 자리들은 어느새 밭으로 바뀌
어 있었다.

  " 숙부님은...........여전히 그곳에 계실까요...."

천계에서 지내는 동안 한번도 입에 담지 않았던 비영의 일을 비는 하계에 내
려온 후에야 비로소 입밖에 내었다.
분명 비는 생각이 깊은 아이였다. 어쩌면 화연의 피는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자신의 죽음을 알고 미리 준비했던 화연도, 하나뿐인 혈육을 자진해서 훼이에
게 보낸 비영도, 훼이를 처음  대한 그 순간부터 훼이의 아들로서  행동한 비
도.... 모두 훼이에게 배려를 해 준 것이었다.

  " 좀더 일찍 내려올 걸 그랬구나."
  " 아니에요...."

비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 제가 있어야 할 곳은 이곳이 아닌 걸요."

나지막하게 들려오는 비의 그 목소리에 훼이는 쓴웃음을 지었다.


화연이 살았던 그리고 비와 비영이 살았던 초가(草家)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
고 서 있었다. 작은 마당에 늘어놓은 약초도 피어오르는  연기도 그날과 같았
다. 슬프도록 그립게.

훼이의 어깨에서 내려선 비는 조심스럽게 낡은  툇마루로 올라서 여러 번 손
질한 듯이 보이는 문풍지가 발린 문을 열었다.
끼익 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 아니, 이게 누구야......."

늙으막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며 이제 반백이 되어버린 비영이 고개를 내밀었
다.

  " 오셨으면 들어오시지 않고...."

여전히 마당에 서 있는 훼이를 발견하고 비영은 말을 걸었다.
훼이는 주름진 비영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방으로 들어섰다.

묻지않아도 알 수 있었다. 비영은 지금까지 홀로 살아왔다는 것을.
집안이 몰락한 이후로 둘의 힘을 합쳐  살아오다가 화연이 세상을 떠나고 그
화연이 남긴 유일한 혈육마저  떠나고 홀로 남은  비영은 언제나 그래왔듯이
산에서 약초를 캐며 근근히 살아온 모양이었다.
비는 비영의 거친 손에 자신의 손을 맡긴 채 부드럽게 미소짓고 있었다. 세월
의 풍상이 새겨진 비영의 얼굴은 훼이에게 묘한 감흥을 전해 주었다.
용족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인간들처럼 늙는 일은 없다. 인간들처럼 주름진
얼굴을 가지게 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세월에 녹아 없어지듯이 그렇게 나이
를 먹어 가는 것이다.
훼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어조로 말을 꺼냈다.

  " 부탁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훼이의 말에 비영과 비. 둘의 시선이 동시에 훼이에게로 향했다.

  " 좀 오랫동안 이곳에 머물 수 있을까요."

비영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묘한 표정
을 지었다.

  " 숙부님. 제게 약초에 대한걸 가르쳐주세요. 천계에는 이곳에서 나는 약초
들이 없더라구요."

그렇게 말하며 비는 웃어 보였다.

  " ......누추하지만 방은 한 칸 더 있으니까 마음껏 쓰세요."

비영의 주름진 눈가에 희미하게 맺힌 눈물을 훼이는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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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길었던 3장이 끝났습니다. 색다른 전개방식 어떻게 느끼셨습니까.
4장에서는 유안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물론 그 얘기만 나오는 건 아니구요.

우....앞에 틀린 부분이 넘 많아요. 제 언니가 지적해 주었는데 이름 틀린 것도
있고 띄어쓰기 틀린 건 기본에 문장이 이상한 것도 굉장히 많습니다. T.T
다음에 모음집이라도 올리게 되면 다시 다 고쳐야겠어요.
그러면 여러분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시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번 호 : 570 / 3334 등록일 : 1999년 06월 22일 00:05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97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4장 一.


  
                           흑룡의 숲


  제 4장 침묵(沈默)


                    태양 앞에서 모습을 감추고
                    달빛 아래서 어렴풋이 피어나는
                    조각난 시간의 파편.
                    별들이 비추는 것은 무엇인가.


  一.


언제나 생기 있게 반짝이던 유안의 푸른 눈동자는  초점을 잃은 채 멍한 빛으
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아직도 유안의 몸은 희미하게 검은 안개로 휘감겨  있었다. 분명 유안
의 눈동자에서 생기를 앗아간 것은 그 안개임이 틀림없었다.
유안은 마치 버려진 목각 인형처럼 갈색의 나무의자에  기대어 앉은 채로 어
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은 채 굳어져 있었다.

  < 이제 더 이상의 지독한 고독은 싫다.......... >

온 몸의 피부가 창백하다 못해 푸른빛을 띄고 있는 슬퍼 보이는 인상의 청년
은 곧 쓰러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이는 마른  몸을 움직여 유안에게로 다가섰
다. 소름끼치도록 서늘하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와 달리 청년의 눈은  맑은 빛
을 담고 있었다. 마치 그의 몸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있는 것이 눈이라고   느
껴질 정도로 그의 눈은 맑게 개어 있었다.
길게 자라나 있는 그의 진한 푸른빛이 도는 머리카락은 차분하게 등뒤로 늘어
져 있었다. 웬만한 여인들보다도 더 길어 보이는 그 머리는 땅에  닿을 정도로
길었다.
그는 거의 소리가 나지 않도록 움직였는데 그렇다고  해서 천천히 걷고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더욱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
는 것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을  만큼 미미하게 흔들리는 길다란
그의 머리카락 뿐이었다.
어느새 유안의 곁에 다가선 그는 천천히 마른  손을 들어올려 유안의 이마에
가져다 댔다. 그가 걸친 넉넉한 품의 장포는 그의 마른 체격을 더욱  잘 드러
나게 만들었다. 손을 들어올린 순간 손 아래로 길게 늘어진  장포자락은 그의
손이 열 개도 더 들어갈 정도로 보였다.
그가 지낸 오랜 세월을 말해주듯 검은색이었을 듯한  그의 장포는 빛이 바래
회색에 가까워져 있었다.

그의 마르고 창백한 손이 이마에 닿자 유안은 몸을 흠칫했다. 초점 없이 풀린
눈은 여전했지만 유안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몸에 닥친  위기를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 두려워할 필요 없다. 그저 날 받아들이면 돼........ >

유안의 몸이 떨려오는 것을 느끼고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나서 유안의 이마에 올려진 그의 손에서  희미한 푸른빛이 뿜어져 나
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유안의 몸을 감싸고 있던 검은 안개의  빛과는 확연
히 다른 청명하게까지 느껴지는 푸른빛.
그 푸른빛이 이마에서부터 시작해 유안의  온몸을 뒤덮자 초점 없이 풀려있던
유안의 눈에 다시 푸른빛이 돌아왔다. 언제나 생기 있게 반짝이던 맑고 투명한
푸른 눈동자가 그곳에 있었다.

  < 푸른색은..... 언제고 그리운 색이지....... >

유안의 푸른 눈을 대하자  그는 의외로 부드러운 목소리를  냈다. 그렇다고는
해도 여전히 그의 목소리에는 냉기가 남아 있었다.
잠시동안 남자는 유안의  눈동자를 응시하며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의 손에서 뿜어져 나오던 푸른빛이 눈부시도록 강해졌
다. 그때까지 죽은 듯이 굳어져 있던 유안의 입에서는  낮은 신음성이 터져나
왔다.

유안은 자신의 눈에 비친 낯선 얼굴을 보며 본능적인  위험을 느꼈다. 하지만
자신에게 여기에서 빠져나갈 능력이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이마에 닿
은 남자의 손에서는 끊임없이 서늘한 푸른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유안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눈을 움직여 주위를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쇠락한
기운이 물씬 풍겨오는 칠이 벗겨진 벽과 먼지가 쌓여있는  가구들. 그리고 그
방처럼이나 위태로워 보이는 창백한  인상의 남자. 문득 유안은  남자의 눈이
놀랍도록 맑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순간. 찢을 듯한 격통이 온몸을
달리기 시작했다.


                        *            *            *


이곳은 언젠가 한번 와본적이 있었다.
흔들림조차 느껴지지 않는 적막이 흐르는 공기. 그 적막은  이유 없는 불안을
느끼게 할만큼 이질적인 것이었다.
커다란 천이 펄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지 않아도 훼이는
그 소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것은 비유(肥遺) 라는 이름의 세
쌍의 다리와 네장의 날개를  가진 뱀이었다. 가늘게 찢어진  세모꼴의 눈으로
위협하듯 훼이의 주위를 날아다니던 이형의 뱀은 훼이가 아무런 반응도 보이
지 않자 요란한 날개 소리를 내며 다시 어딘 가로 날아갔다.

훼이는 길게 자라난 수풀  속을 헤치며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원시림을
방불케하는 울창한 숲.  명계에서 자라나는 모든  식물들은 기형적으로 컸다.
훼이의 키만큼이나 길다란 풀들과 높이를 알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나무들이
빽빽하게 돋아나 있었다. 훼이가 머물고 있는 흑룡의 숲 보다 더 울창하게 들
어찬 나무들은 빛이 들어오는 것을 거부하는  것처럼 길게 가지를 내뻗고 있
었다.

  " 위험하군...."

훼이는 낮게 중얼거리며 평소와는 달리 조심스럽게 공간을 여는  술(術)을 펼
쳤다. 앞에 있던 나무들이  기이하게 휘어지는 듯이 보이더니  눈앞에 공간의
문이 열렸다.


미하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었다. 막 사실(私室) 안으로 들어선 훼이에게 고
개를 숙여 인사를 건네는 동작조차 힘겨워  보일 정도로 그녀는 수심에 잠겨
있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나뿐인 자신의 아들이 누군가에게 끌려갔
다는 데 멀쩡하게 있을 부모는 어디에도 없었다. 더군다나  유안은 앞으로 흑
룡일족을 이끌어 갈 왕이 될 몸이 아닌가.

  " 훼이....... 유안은......무사할까요....."

유안과 마찬가지로 푸르게 빛나는 두 눈으로 훼이를 바라보며 미하가 물었다.

  " 걱정 말아요."

짧은 한마디 였지만 미하는 진심으로  안도했다. 훼이라면, 오랜 세월을 살아
온 그라면 분명 유안을 무사히 자신의 품으로 되돌려 줄 수 있을 것이다.

  " 형님. 어서 서두르죠. 한시가 급합니다."

라이엔이 그렇게 말하며 막 공간을 여는 술을 펼치려고 할 때였다. 훼이는 손
을 내밀어 라이엔을 저지했다.

  " 넌 여기 남아라."
  " 무슨소리에요, 형님."

훼이는 그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가라앉은 눈을 돌려  동생. 라이엔을 응
시했다.

  " 넌 왕이다. 흑룡일족의 왕인  네가 명계로 들어서면 어떤  문제가 생길지
모른다. 그들에게 덜미를 잡혀서 좋을 것은 하나도 없다."
  " 그렇지만..."
  " 나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지. 그리고 난 초행이 아니다."
  " 형님...."
 
훼이는 어느새 공간을 열고 있었다.

  " 기다려라."

그 한마디를 내뱉고 훼이는 공간 안으로 들어섰다.
뒤에 남은 라이엔과 미하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걱정이 담긴 눈빛을 교
환했다.


지금 훼이가 느낀 것은  분명. 수계(水界)의 힘이었다. 흑룡들이  쓰는 힘과는
약간 다른 그것은 분명 물의 용인 청룡족들이 가진 힘과 흡사했다.

어쩌면 늦었을지도 모른다.
초행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명계의  복잡하게 얽힌 구조를  다 파악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훼이는 무작정 그 물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몸을 움
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공간에서 빠져나오자 마자 훼이의 눈에 시랑(豺狼)이 보였다. 여우와 같은 생
김새를 가진 꼬리가 희고 길다란 귀를 가진 동물이었다.  훼이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던 시랑은 어느 순간  꼬리를 내리고 도망치듯이 사라져
버렸다. 인간들에게 재앙을 가져다주는 불길한 동물들. 명계의 곳곳에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이형(異形)의 동물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훼이는 아직까지 희미하게 물의 기운이 풍겨  나오는 낡은 건물 앞에 멈추어
섰다. 본래는 상당히 심혈을 기울여 지어졌을 듯한  고풍스러운 건물이었지만
지금은 곳곳에 파손된 흔적이 보이는 낡아빠진 건물일 뿐이었다.
군데군데 칠이 벗겨져내린 목조건물은 금방이라도  삐그덕 소리를 내며 무너
져 내릴 것 같았다.
황폐해진 정원을 지나 예전에는  분명 아름다웠을 화려한  조각이 새겨진 문
안으로 들어서자 조금전보다 한층 강한 기운이 느껴졌다.
서둘러야 한다. 분명 살아있는 자의 존재를 느끼고 그들이  모여들기 전에 유
안을 찾아내야 한다.
마치 자신의 집안을 거닐 듯이 훼이는 막힘 없이 길게 이어진 복도를 지나쳐
갔다. 수십 개의 방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지만 훼이는  그 방들에는 눈길
도 주지 않았다.
그리고 예전에는 분명 침소로 쓰였을. 아직까지도 가장 온전하게 형태를 유지
하고 있는 문 앞에 멈춰선 훼이는 주저 없이 문을 열었다.

  < 누구냐...... >

훼이는 축 늘어진 유안과 어느새 창백한 기운이 사라진 얼굴을 하고 있는 청
년을 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이  위태로워 보였던
청년은 어느새 몸에 걸친 장포에 어울리는 체격이 되어있었다.
훼이를 본 청년은 이채로움을 담은 시선으로 몸을 돌렸다.

  " 역시.... 교룡(交龍) 이었나."

훼이가 낮게 내뱉자 청년은 미소했다.

  < 당신은 분명 흑룡족의 후계자 였었지....... >

청년은 훼이를 아는 듯 했지만 훼이의  얼굴엔 아무런 표정의 변화조차 없었
다.

  " 그 아이는 내 혈육이다."

  < 이 아이 말인가. 내게 어울리는 기운을 가지고 있었지...... >

그렇게 말하며 청년은 낮게 웃었다. 더 이상은 그의  목소리에서 냉기가 느껴
지지 않았지만 지금의 목소리에는 어딘지 모르게 광기가 배어있는 듯 했다.
잠시 청년을 응시하던 훼이는 거침없이 유안의 앞으로 다가섰다. 유안의 얼굴
은 창백하게 굳어져 있었다.
청년은 훼이가 유안의 몸을 안아 드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가 막 생각
난 것처럼 말을 꺼냈다.

  < 알고 있을 텐데..... 용족의 피에 인간의 피가 섞이면 어떻게 되는지...... >

깊게 가라앉은 훼이의 눈이 청년에게로 향했다. 담담하게 훼이의 시선을 맞받
은 청년은 가볍게 얼굴을 굳혔다.

  " 역린(逆鱗)은 건드리지 않는 게 좋아..."

그렇게 말하는 훼이의 음성에 담긴 것은 명백한 적의 였다.



========================================================================
오늘은 보충 설명을 조금 하겠습니다. 여기서 자주 등장하는 공간이라는 것은
차원과 차원을 이어주는 통로 같은 곳입니다. 시간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곳이
죠. 그리고 역린(逆鱗)은 알고  계시겠지만 용의 목  아래에 존재하는 거꾸로
된 비늘입니다. 그 역린을 건드리면 살아날 생각은 버리는  게 좋다고 전해질
정도죠. 약점을 뜻하는데 약점이라기 보다는 건드리면 죽어! 이런 느낌이죠..^^
요즘 자료조사 때문에 700페이지가 넘는 책 두권을 읽고 있는데 재미는 있지
만 솔직히 너무 두꺼워요....T.T
내일 올릴(아직 다 쓰지 않았지만^^) 부분에서는 뭔가가 벌어질 듯 하네요.
앗..오늘도 읽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당... *^0^* 아이 조아..


번 호 : 580 / 3334 등록일 : 1999년 06월 22일 23:19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80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4장 二.


  
                           흑룡의 숲


  제 4장 침묵(沈默)


  二.


  < 의외로군...... >

훼이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깊게 가라앉은 눈에서는 조금씩 살기가
내비치고 있었다.

  < 분명 당신도... >

  " 더 이상의 것을 말한다면 내 힘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지."

남자는 훼이의 날카로운 시선에 움찔하며 말을 멈췄다.

  " 아무리 이곳이 명계라해도 질서에서 어긋난 자는 사라지는 것이 좋아."

남자는 피식거리며 웃었다. 그리고 천천히  걸음을 옮겨 훼이 쪽으로  다가섰
다. 명백한 비웃음. 남자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그것이었다.

  < 용족들이 가진 자부심이란 게  그런 거였나? 물론 용족의 피가  대단하긴
하지.... 이렇게 내 모습을 되돌릴 수 있을 정도니까...... >

훼이는 창백하게 늘어져 있는 유안을 내려다보았다. 분명 지금  이 상태가 지
속된다면 유안은 깨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닮진 않았지만 지금 유안의 모습에서  훼이는 지난날의 슬픈 기억을  보았다.
자신의 목숨과 바꿔서라도 되찾고 싶을 만큼 마음속 깊은 곳에 간절하게 남아
있는 기억.

  " 그들이 오기 전에 널 네가 있을 원래의 자리로 되돌려주지."

한 손에는 유안의 몸을 그대로 안은 채 훼이는 자유로운 다른 한 손을 서서히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저 서늘한 눈으로 남자를 바라볼 뿐 훼이는 입조차 벌리지 않았다.
어느 순간 공기가 팽팽하게 곤두서는 듯한 느낌이 방안에 가득차기 시작했다.
남자는 여전히 비웃음을 띤 얼굴로 훼이를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 망설임 없이 내게 힘을 뿜어낼 수 있다면..... >

남자의 말에 훼이의 눈동자가 미미하게 흔들림을 보인 것 같았다.  하지만 여
전히 방안을 가득 채운 팽팽한 공기는 약해지기는커녕  점점 터질 듯이 커져
가고 있었다.


                 *            *            *            *


  " 고맙습니다........."

흐릿한 눈으로 훼이를 보려 애쓰며 비영은 입을 열었다.
훼이는 알고 있었다. 그리 길지 않았던  60여 년간의 시간들. 용족에게 있어서
는 하루 정도로밖에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짧은 시간이었지만 인간인 비영에
게는 실로 많은 것을 겪었던 무수한 세월이었다.
이제 곧 눈을 감을 비영을  눈앞에 두고 훼이에게  떠오른 것은 마지막으로
보았던 젖어있는 화연의 눈이었다.
비는 그저 비영의 손을 굳게 잡은  채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갈라지고
거칠어진 비영의 손이 전해주는 온기를 기억 속에 새기려는 것처럼 비는 필사
적으로 그 손을 잡았다.

  " 당신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분명 나는 삶이 불행하다고 여겼겠지요...."

그렇게 말하며 비영은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를 머금었다.

  " 당신이 나타남으로 해서 화연은 행복하게 짧았던 삶을 살아갈 수 있었고
나 역시 결코 후회하지 않을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노인의 목소리라고는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차분하게 비영은 말을 이었다.

  " 비록 이제 더 이상 비가 자라는 모습을  볼 수는 없을 테지만 지금 이렇
게 두 눈에 당신과 비의 모습을 담을 수 있으니 여한이 없군요."

훼이는 가슴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알 수 없는 감정에 조금  당황하고 있었다.
비영이 보여주는 저 미소가 왠지 모르게 훼이의 마음을  잡아당기는 것이었다.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인간이라고는 보여지지 않는 담담한 그 모습에. 비영이
한마디씩 꺼내는 차분한 목소리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이제 꺼져가는 촛불과도 같은 비영에게 자신은 무엇을 말해
야 하는 것인지.

  " 숙부님........"

계속 비영의 손을 잡은 채 놓으려 하지 않던 비가 비영을 불렀다.

  " 고맙다. 비. 네가 있어줘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비영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미소를 떠올린 비영의 얼굴은
더 이상 노인의 것이 아니었다. 화연과 함께 웃음 지으며 산을  오르던 젊었던
시절의 비영이 거기에 있었다.

하나뿐인 혈육인 여동생을 위해 손에 물 한번 묻혀보지 않고 살았던 그는 험
한 산중턱에 집을 지었고 발이 부르트도록 산을 타며 살았다. 처음 자신의 손
으로 캔 약초를 판 돈으로 음식이며 화연에게 줄  옷을 샀을 때 얼마나 즐거
웠던가.
그리고 하나뿐인 동생이 이름 모를 남자의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에도 비영은 그저 조카가 태어난다는 사실에 즐거움을 느꼈을 뿐이었다.
화연은 남자의 이름을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립도록 어딘가를 향해 있는 화연
의 눈에서 비영은 화연이 선택한 남자를  본 것 같았다. 그리고 마치  자신의
죽음을 짐작하기라도 한 듯이 화연은 훼이에게 줄  편지를 적어 비영에게 맡
겨 두었었다.
화연이 갓 태어난 비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후. 비영은 언젠가 돌아올  비의
아버지를 기다리며 비를 키웠다. 그리고 마치 꿈과 같이 모습을  드러낸 훼이
의 모습을 본 순간. 비영은 화연이 택한 남자가 바로 그라는 것을 알 수 있었
다. 어딘지 모르게 범접하지 못할 기운이 서린 고귀한 인상의  남자에게 비영
은 10년 동안 소중히 돌봐온 동생의 아이를 보내주었다.
그렇게 그의 인생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타인을 위해 이어져 온 삶이었다.
동생을 떠나보내고, 비를 떠나보내고. 홀로 남았지만  그는 여전히 화연과 함
께 살아온 집을 떠나지 않았다. 무언가를 기다렸던 것일까. 아니면, 추억이 서
린 곳을 버리고 싶지 않아서 였을까.
훼이는 눈을 감은 비영의 얼굴을 말없이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비영이 자신에게 가르쳐준 것은 바로 배려. 인간인 그가 말이 아닌 자신의 평
생을 통해 보여주었던 진실이 바로 그것이었다.


  " 언젠가는 모든 것이 사라지겠죠. 지금 제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온기가 빠져나가고 있는 비영의 손을 여전히 잡고 놓지 않은 채 비가 말했다.
훼이는 그저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었다.

  " 숙부님은 어떻게 그렇게 편안하게 미소지을 수 있었죠......?"

작게 내뱉은 비의 말에 훼이는 한동안 아무말도 하지 않다가 천천히 말을 꺼
냈다.

  " 인간은 때로 오랜 시간을 사는  자들보다 더 초월적인 존재가 되는 지도
모른다....."

둘의 시선이 닿는 가운데 마치 잠든  것처럼 편안하게 비영은 세월의 틀에서
벗어났다.


  " 이제 돌아가자."

훼이는 아직 황토로 뒤덮힌 봉긋한 무덤을  지긋이 바라보며 발을 뗄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 인간은 대지의 품으로 돌아갈 때 가장 편안한 안식을 맞이한다고 하지."
  " 숙부님의 기다림은...... 분명 값진 것이었죠?"

훼이는 눈물이 맺혀있는 비의 얼굴을 향해 작게 미소지으며 답했다.

  " 네 유년을 그와 함께 보내서 다행이다."

비 역시 훼이를 향해 미소를 보냈다.
그리고 비는 비영의 무덤에서 등을 돌렸다.

  " 다음에 다시 이곳을  찾을 때엔 분명  비영의 휴식터도 푸르게 변해있을
거다."

걸음을 옮기는 비의 모습은 어느새 훌쩍 커버린 것 같았다.


                 *            *            *            *


  < 내 이름은...... 천오. 청룡족의 여인과 인간 남자의 사이에서 태어났지.....>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팽팽하게 곤두서 있는 방 안에서 인간의 피를 받은 교
롱(交龍) 천오는 담담한 어조로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 다른 것은 몰라도 용족들은 기이하게 인간의 피를  거부하지. 아니, 경멸
하는지도 몰라.... >

우수어린 천오의 목소리가 울려퍼짐과 동시에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기
운이 그를 향해 몰려들었다. 실날같이 이어지던 긴장의 끈이 풀린 것 처럼 일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 사라져......."

평소의 훼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차가운 어조가 울렸다.

그저 바람이 스쳐지나간 것 처럼 아무런 흔적도 없이 방안에 가득 차있던 기
운은 일시에 사라졌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보인적이 없었던  훼이의 힘이었
다. 주문으로 행해지는 힘의 발휘가 아닌 순수한 힘의 움직임.

  < 늦었어............. >

간간히 끊어지는 듯이 미약한 음성이었지만 그것은 분명 천오의 것이었다.



=====================================================================
우왓.....무지 졸리다. 우웅....자고 싶어...
이번 4장도 그리 짧지만은 않을 것 같네요. 좀 시시하다고 느끼셨다면 본격적인
내용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써서 대체 뭘 썼는지 모르겠습니다...--;)
뒷 내용은 구상해 놨는데 왜 여기서 막히는 것일까.....
읽어 주신 분들께 감사를 전하며........
 

번 호 : 591 / 3334 등록일 : 1999년 06월 23일 23:28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75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4장 三.


  
                           흑룡의 숲


  제 4장 침묵(沈默)


  三.


  소용돌이 치는 듯한 공기의 움직임과 함께  검은 빛을 띄는, 속이 비어있는
듯이 보이는 공간의 문이 열렸다. 그것은 용족들이 사용하는 공간을  여는 술
(術)과는 어딘지 모르게 성질이 다른 것 같았다.

  " 반가워요. 훼이.... 거의 500년 만에 보는 것 같군요."

눈에 띄게 화려한 옷차림을  한 여인이 공간에서  빠져나오며 훼이에게 말을
건넸다. 그리고 그녀의 뒤를 따라 살아있는 존재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4명의
남녀가 따라 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높게 틀어올린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벽쪽에 쓰러져 있는 천오에게 시
선을 던졌다.

  " 그가... 당신을 화나게 했나 보군요. 하지만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나의 지배를 받죠. 당신의 힘으로도 그를 죽일수는 없어요."

훼이는 그녀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낮은 어조로 말했다.

  " 나의 혈족을 다치게 한 대가를 치르려는 것 뿐이다."

그녀는 날카롭게 웃었다. 공기를 긁는 듯 소름끼치게 울리는 웃음소리로.
어깨를 들썩이며 웃는 그녀의 움직임 때문에 머리카락에 장식된 갖가지 보석
들이 사방에 빛을 뿌리며 흔들렸다.

  " 여전하군요. 혈육에 대한 당신의 집착은...."
  " 집착이라고 말해도 좋아...."

그녀는 요란하게 다시 한번 웃었다.  그리고 웃음을 멈춘 그녀의  얼굴에서는
섬뜩한 요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 명계의 모든 것들은  나의 관할. 아무리  당신이라도 손을 댈 수는  없어
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뒤쪽에  공손히 시립해 있는  남녀에게 무언가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두명의 남자가 천오쪽으로 다가서 그를 일으켜 세웠다.

  " 당신이 안고 있는 그 아이가 현재 흑룡왕의 후계자인가 보죠?"
  " 내게 대답할 의무는 없지."

짧게 대답하고나서 훼이는 공간을 열었다.

  " 제 허락도 없이 이곳에서 빠져나가려는 건 아니겠죠?"

훼이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돌아 보았다.

  " 요희(妖姬). 그대의  힘으로 날  얽어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
지..?"
  " 그런 건 두고보면 알겠죠."

어느새 요희의 목소리는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리고 치켜 올라간 붉은
색의 눈동자는 적의를 담은 채 훼이에게로 향했다.

소리도 없이 요희의 몸에서 강한  기운이 흘러나와 훼이를 덥쳐갔다.  하지만
그 기운은 훼이의 몸에 닿기도 전에 무형의 기운에 의해 튕겨져 나갔다.
요희가 내뿜은 기운의 여파로 인해 훼이가 열어놓은 공간이 흔들리며 약간의
비틀림을 보였다.

  " 이대로 돌아갈 순 없어요."

날카로운 그녀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훼이는 그대로 몸을  돌려 공간 안으로
들어섰다.
무심한 검은 눈동자가 요희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곧 공간의 문이 닫혔다.
요희는 날카로운 눈으로 훼이가 사라진 자리만을 응시하다가 갑자기 무슨 생
각을 했는지 요란하게 웃어댔다.

  " 좋아. 난 당신의 약점을 알고있어."

그렇게 중얼거리고 나서 요희는 허리를 숙인 채  힘겹게 서 있는 천오에게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언젠가 천오가 내뿜었던 것과 같은 투명한 검은 빛이 그
녀의 손에서 뻗어나와 천오의 몸을 감쌌다. 얼마 지나지 않아 힘겹게 숨을 토
하던 천오는 혈색이 돌아온 얼굴을 들어올렸다.

  " 천오. 그대에게 한가지 일을 맡기도록 하지."

방금전까지만 해도 요사스럽게 웃던 요희의  얼굴은 어느새 냉정한 지배자의
그것이 되어있었다.

  " 분부만 내리십시오."
  " 그대는 지금 이순간부터 어린 용족들의 힘을 빨아들여 그대의 힘을 키우
도록 해. 그리고......."

요희는 잠시 말을 끊었다.

  " 그가 가장 가슴아프게 간직하고 있는 모습으로 그대를 바꾸어주지. 그 모
습을 가지기만 하면 그를 없앨 수 있어."

요희는 입술 끝을 살짝 들어올리며 웃었다.

  " .......두고보지. 훼이. 그대가 과연 그 모습을 눈에  대하고 이겨낼 수 있을
지......"

그녀의 붉은 눈은 피를 말릴 정도로 섬뜩하게 빛났다.


                      *            *            *


안절부절 하며 사실(私室) 안을 왔다갔다 하고 있는 라이엔의  모습을 미하는
무감동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한 시진 정도밖에 흐르지 않았는데도  며칠은 지난 듯이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간 것 같이 무기력했다. 미하와 라이엔은 훼이의 모습이  사라진 그 시
간부터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아무 말이나 꺼내기라도  하면 바로 유안
의 일을 말할 것 같았기에 아예 말 조차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더 흐른후. 라이엔과 미하는 어렴풋이 느껴지는 공간
이 열릴때의 파동을 느끼고 재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사실의 한 구석
에서 공간을 통해 막 걸어나오고 있는 훼이의 모습이 보였다.
미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 달려가다시피 훼이의 앞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그것은 라이엔도 마찬가지 였다.

  " 며칠간 정양을 시키면 곧 깨어날 거야. 생기를 많이 잃기는 했지만."

조금전 명계에 있을 때만 해도 눈에 띄게 창백했던 유안의 얼굴은 고르게 혈
색이 돌고 있었고 마치 잠든 듯이 평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라이엔은 훼이의 품에 안겨있던 유안을 조심스럽게 건네 받았다.

  " 형님.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 정말 고마워요. 훼이...."

미하는 눈에 눈물까지 글썽이며 훼이에게 말을 건넸다.

  " 나 역시 흑룡 일족의 하나일 뿐이니까 당연한  일을 한거다. 유안은 소중
한 후계자니까."
  " 형님. 오늘 만큼은 궁에서 머물다 가세요. 드릴 말씀도 있고..."

라이엔의 말에 훼이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 그냥 오늘은 돌아가겠다. 그리고 내일 다시한번 들르도록 하지."
  " 궁은 불편하신가요...."

미하가 묻자 훼이는 조금 씁쓸해보이는 표정을 떠올렸다.

  " 제게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은 그 숲 뿐이죠."

이래서 싫었다. 일족들을 대할때마다, 궁 안에  발을 들일 때 마다 기억 저편
에서부터 떠오르는 시간의 파편들은 평정심을  유지해왔던 훼이의 마음을 휘
저어 놓았다. 이제 굳게 닫으리라고 결심한 자신의 마음.
무슨 일이 있더라도 다시는 궁으로 돌아올 날은 없어야  한다. 그것만이 훼이
에게 있어서는 유일한 최선책이었다.

훼이의 가벼운 손길에 의해 다시 공간이 열렸다.

  " 형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훼이는 엷게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훼이가 없는  숲은 너무나 텅빈 공간처럼 느
껴졌다.
유에린은 바닥에 놓인 채 은빛을 발하고 있는 검을 집어 들었다. 자신이 사용
하던 검은 나무 그루터기 위에 올려놓은 상태였고 훼이가 쓰던 검은 그가 급
히 자리를 떠났기에 아무렇게나 바닥에 팽개쳐진 상태였다.
훼이의 세검에도 역시 손잡이 부분에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그것은 비(飛)라
는 한 글자. 그 이름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유에린으로서는  알 수 없었
지만 각각 이름이 새겨져 있는 이 검에  지난 추억이 담겨 있는 것만은 확실
했다.

  " 너무 늦은 건 아니겠지."

유에린은 잠시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돌아선 유에린의 눈에 막 사라져가는 공간의 모습이 비쳤다.

  " 빨리 돌아오셨네요."
  " 명계는 시간이 흐르면서도 흐르지 않는 곳이니까."

훼이가 하는 말의 뜻을 잘 알수는 없었지만 훼이의 모습을 대하자 마음이 놓
였다.

  " 다시 한번 검을 겨루어 보도록 하지."
  " 네."

유에린은 손에 들고 있던 검을 훼이에게 건넸다.
이름이 새겨진 손잡이 부분이  다시 한번 유에린의  눈에 들어왔다가 훼이의
손에 가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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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오늘 또 추천을 받았네요. 제이슨님 감사 ^0^
음...동양 환타지라는 장르를 소화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동양적인 문체를 만들었
는데요. 그게 이거에요. (잘 어울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것말고도 저도 정통 환타지 쓰는 게 있거든요. 거기서의 문체는 흑룡의 숲이랑은
또 많이 달라요. 언젠가 흑룡의 숲이 다 끝나면 올릴 생각입니다.^^
읽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번 호 : 601 / 3334 등록일 : 1999년 06월 25일 00:05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88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5장 一.


 
 
                           흑룡의 숲


  제 5장  흩날리는 꽃잎


                    약속하자.
                    넘치는 이 술한잔으로
                    끝나지 않을 시간동안
                    어디에서도 너와 내가
                    함께일 것을.


  一.



  " 파이론. 여기가 좋지 않겠어요?"

가벼운 흰색 경장 차림을 한 챠렌은 아무런 장식 없이 머리를 묶고 있어 무척
이나 자유분방해 보였다.

파이론은 그녀가 가리킨 넓은 초지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파이론은 언
제나 처럼 활동적인 중간 길이의  파오를 걸치고 있었다. 궁에 있을  때 입는
옷보다는 좀 더 평범한 천으로 만들어진 것이었지만 현재 입고 있는 파오역
시 꽤나 고급스러운 소재가 쓰인 것이었다.

푸른 들판에 선 파이론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이질적이었다.  그가 가진 흰
색의 머리카락이 더욱 그런 느낌을  전해주는지도 몰랐지만 용족이라는 그들
이 가진 이름은 하계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 오늘로서 벌써 천계 시간으로 열흘은 지났겠어요. 파이론."
  " 그러니까 여기서 마지막으로 시간을 보내고 돌아가자는 거지."

챠렌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장난스럽게 웃어 보였다.

  " 혼인하기 전에는 이런 성격인 줄 몰랐었는데..."
  " 마찬가지야. 보좌관으로서의 당신은 질릴 정도로 완벽했으니까."

둘은 지난 추억을 회상하는 듯 잠시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소탈하면서도 자로 잰 듯이 똑바른 생활을 고집하던 챠렌과 적당히 넘어가기
를 즐기던 파이론과의 만남은 분명 의외의 것이었다. 눈에  뜨일 정도의 미모
를 가졌던 챠렌은 보통의 여인들처럼 자신을 꾸미는 데  시간을 쓰지 않았다.
그녀는 무엇보다 자신의 능력을 잘 알았고, 또 그것을 적절하게 활용했다.

  " 기억해요... 파이론?"
  " 뭘?"

푸른 초지를 쓸어 내려오는 바람을 온 몸으로 느끼며 챠렌은 입을 열었다.

  " 가끔씩 이렇게 넓은 자연을 마주 대할 때면 떠오르곤 해요...."

챠렌은 어깨에 흘러내린 몇 가닥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잠시 말을 멈췄
다.

  " 아버지의 마음이란 거......"
  " 갑자기 그 이야기는 왜.."
  " 제가 감상적이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어릴 때  전해들었던 흑룡족 왕
가의 이야기는 지금도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좋아했었죠."

파이론은 아무말 없이 챠렌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 가장 오래된 자.......인가....."

너른 평원의 어딘가를 바라보며 파이론은 작게 중얼거렸다.

  " 자, 이제 오랜만에 힘을 겨뤄봐요.  아직까지 당신이 왕에 어울리는 힘을
유지하고 있는지 시험해 봐야 겠어요."

챠렌은 기대감과 장난스러움이 배인 눈동자로 파이론을 응시하며 말했다.

  " 챠렌. 아무리 그 동안 변변한 싸움 한번 치르지 않았다지만 난 엄연히 백
룡일족의 왕이라고."
  " 강조하지 않아도 알아요."

파이론은 챠렌을 감싸 안았던 손을 풀며 피식 웃어 보였다.

  " 챠렌. 아무래도 당신은 싸움을 너무 좋아하는 것 같군."
  " 당신이 백룡족 답지 않은거에요."

가벼운 어조로 대답하고 나서 챠렌은 나는  듯이 가볍게 몸을 움직여 파이론
의 반대편에 가서 섰다.

  " 먼저 공격하죠."

  [ 풍천( 遷) 회륜(回輪)! - 바람을 근본으로 하는 상위 공격주문 - ]

하늘을 뚫을 듯이 높게 회오리가 솟아올랐다. 강력한  힘의 여파에 휩쓸린 풀
들이 바람 속에 뒤섞여 하늘에 떠올랐다.
자신에게로 짓쳐들어오는 강력한 용권풍(龍卷風)을 바라보며  작게 한숨을 내
쉰 파이론은 챠렌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            *            *


  " 전하. 돌아오셨군요."
  " 비 전하께도 인사 올립니다."

막 풍천궁(風天宮-백룡궁의 정식 명칭)의 대전 안으로 들어선  파이론과 챠렌
을 맞이하며 그 동안 둘을 대신해 업무를 담당하고 있던 두명의 장로가 허리
를 숙여 인사했다.

  " 그 동안 별일 없었나?"
  " 아...예. 큰일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청룡궁에서 백룡왕 전하를
모시고자 하는 서신을 보내왔습니다."

파오와 장포를 섞은 듯한 모양의 넉넉한 품의 의복을 걸친 두명의 장로중 선
이 굵은 생김새의 장로가 청룡왕의 인장이 찍힌 서신 하나를 내밀었다.
파이론은 장로에게서 받아든 서신을 펼쳐 들었다. 한동안 서신을 읽어 내려가
던 파이론은 흥미롭다는 표정을 떠올리며 서신을 챠렌에게 건넸다.

  " 곤륜쪽에서 그런 일이 있었군....."
  " 흑룡왕비께서 상당히 놀라셨겠군요."

다 읽었는지 서신을 원래대로 접으며 챠렌이 대답했다.
  " 그들은 무슨 생각으로 일을 벌인걸까요...."
  " 그거야. 무료하기라도 한 모양이지."

챠렌은 심각한 얼굴이 되어있었다.

  " 명계쪽이라면 섣불리 건드릴 수는 없지요."
  " 오랜만에 천계가 좀 활기차지는 건가?"

챠렌은 흥미로운 듯이 미소짓는 파이론을 바라보며 가볍게 혀를 찼다.

  " 전하. 그리고 비전하. 저희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두 장로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대전에서  빠져나갔다. 그들이
나가고 나자 넓은 대전 안에는 입구를 지키는 병사 네명과 시중을 들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시비 몇 명만이 남았다. 거대한 나무 기둥이 곳곳에 세워져 있
는 대전은 수백 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넓었다. 바닥에 깔려 있
는 백색의 대리석은 거울처럼 얼굴이 비칠  정도로 매끄럽게 손질이 되어 있
었다.


  " 아직 회합까지는 시간이 좀 남았으니 사실(私室)에서 술이나 마실까?"

챠렌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 진지하게 좀 생각해봐요.  명계는 손대기 까다로운 곳인  만큼 이번 일은
심각하다구요."
  " 그들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5대 용왕의 힘을  당해낼 순 없어. 그건 그렇
고 실로 오랜만의 회합이로군....."

느긋하게 말을 잇는 파이론은 위기감이라고는 전혀 느끼지 못하는 듯 태평한
얼굴이었다.

  " 누가 사실에다 천화주를 좀 준비해 두도록 하거라."

챠렌이 말하자 입구 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시비들은 머리를 조아리며 대전에
서 빠져나갔다.

  " 큰 일이 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자세한 사정을 알지 못하니 아무말도 않
겠어요."
 
파이론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챠렌에게 손을 내밀었다.

  " 자, 사실(私室)로 옮깁시다."

300여년의 시간을 함께 지내왔지만 파이론은 지나치게 태평한 것 같았다.
용족. 그중에서도 다음 왕의 자리를 이어받을 후계자가 명계로 끌려간 사태가
일어났었음에도 불구하고 파이론은 여유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일
족이 아니기에 태평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감이  넘치는 것인지 챠렌으로서도
잘 알 수 없었다.
겉으로는 파이론에게 불만을 표시하고 있지만  챠렌도 속으로는 가벼운 기대
감이 피어오르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천계는 너무나 평온했기에..
어느 정도의 가벼운 자극은 필요한 것이다.

용족이라는 긴 수명을 가진 종족으로서는 무료한 일상을 벗어나기 위한 소재
가 필요했다. 그때문에 청룡왕은 5대 용왕들에게 회합을  요청한 것인지도 모
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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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요님이 감상을 써 주셨습니다. 아이 좋아...^0^
저는 동양환타지에 무협적 요소가 많이 내포되어 있으면 읽는 분들이 싫어하시진
않을까 생각했었는데요. 머... 무협적이라고 느끼셨다면 그렇게 봐주세요...
(사실...전 엄청난 무협 매니아 ^^)
원래 4장을 좀 길게 설정을 했었는데 지금 내용이 5장에 더 맞는 것 같아서 5장으로
넘겨버렸습니다. 어쩌면 5장은 3장 만큼이나 길어질지도 모르겠군요.
읽어주셔서 감사. 꾸벅.





번 호 : 609 / 3334 등록일 : 1999년 06월 25일 23:55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72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5장 二.


 
 
                           흑룡의 숲


  제 5장  흩날리는 꽃잎


  二.


성휘와 훼이가 다시 만난 것은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였다.
다시 만난 훼이는 예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버릇처럼 지어보이던 슬픈듯
한 미소대신 희미하긴 했지만 행복해보이는 미소가 입가에 떠올라 있었다.

  " 어떻게 된 거야....?"

훼이는 반갑게 자신을 맞이하는 성휘에게 약간의 의문을 담아 물었다.

  " 내게도........ 내 마음을 맡길만한 여인이 생겼거든..."

그렇게 말하며 쑥스러운 듯이 웃는 성휘는 분명 행복해 보였다.
비록 1년전의 일로 본궁에서 쫓겨나 근신생활을 하고 있긴 했지만 오히려 성
휘는 답답함을 벗은 듯이 밝아져 있었다.

  " 비는? 잘 있지?"

훼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 그녀는 연화(蓮花)라는 이름의......검선(劍仙)이야... 부끄럽지만 유배지에서
그녀의 구함을 받았지......"

1년 사이에 더 길게 자란  성휘의 머리카락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가지런하게
묶여 있었다.

  " 다행이군... 행복해 보여서..."

성휘의 얼굴에 떠오른 어렴풋한 미소는 훼이에게도 그가 느끼는 기분을 전해
주었다.


나무를 깎아만든 정교한 목검을 들고 성휘는 자세를 가다듬었다. 성휘의 앞에
마주선 비 역시 진지한 표정으로 검을 올려든 채였다.
비록 연습이었기에 진검을 쓰지는 않았지만 마치 진검승부를 할 때처럼 둘은
호흡하나 흐트리지 않고 서로를 겨누고 있었다. 서로  대치 상태에 접어든 후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비의 검 끝이 미미한  흔들림을 보이며 성휘의 손
목을 노리고 움직였다. 비가  목검을 휘두르기 시작한 후에도  성휘는 여전히
자세를 바꾸지 않았다. 그리고 얇은 목검의 검날이  손목에 막 닿으려던 순간
성휘는 손목의 탄력을 이용해 자신의 목검을 움직여 비의 검을 막아냈다.
희미한 미소를 떠올리며 이번에는 성휘의 검이 비를  향해 움직여 갔다. 비는
눈하나 깜빡이지 않고 성휘의 검이 움직이는 것을 주시하며 왼쪽에서 짓쳐들
어 오는 검을 막았다. '탁'하고 나무와 나무가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둘의 검
이 허공에서 잠시 멈췄다. 그러길 여러차례. 둘의 호흡이 조금씩 거칠어 지기
시작할때쯤 비는 성휘의 눈을 마주 대하며 싱긋 웃어보였다.

  " 잠시 쉬도록 할까요...."

검을 마주 대하고 있던 성휘 역시 가볍게 웃어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천궁에 속한 별궁 정원답게 꽤 넓직한 초지에 주저 앉아서 비와 성휘는 서로
의 실력을 칭찬했다. 성휘로서는 검선인 연화와  대등해지고 싶다는 바램에서
검술을 연마하기 시작한 것이었지만  훼이를 따라나선 비  역시 검에 흥미를
가졌다.

  " 나날이 실력이 늘어나는 구나. 이제 얼마  안있어 나 정도는 눈감고도 이
길 수 있을 것 같은데....?"
  " 아직 멀었어요. 전 검을 배우기 시작한 지 한달도 채 되지 않았잖아요."
  " 이제 내가 알고있는 검술은 거의 바닥이 났으니 네게 가르쳐 줄 것도  없
고 말이다."

훼이에게 주문을 배울때와 마찬가지로 비는 검술 또한 금방 익혀나갔다. 성휘
는 자신이 머물고 있는 별궁을 지키는  천군들에게 검술을 배우기도 하고 아
주 가끔이긴 했지만 연화에게도 검술을 배웠다. 그리고 그것을 비에게 가르쳐
주었다. 확실히 혼자 하는 것 보다는 둘이 함께 하는  것이 실력 향상에 도움
이 되었다.

  " 오늘은 벌써 끝났나 보군."

비와 성휘는 동시에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별궁 건물과 맞
닿아 있는 동쪽편에서 공간을 열고 훼이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 무슨 일이 그렇게 바쁜거야. 요즘은 비 혼자만 보내고 말이야."

약간의 책망이 담긴 어조로 성휘가 말을 건네자 훼이는 가볍게 미소지었다.

  " 이거 안돼겠군...... 둘을 위해 준비해 온 것이 있었는데....."
  " 정말이세요. 아버지?"

비는 금새 기대감에 찬 눈빛을 훼이에게 돌렸다.

  " 잠시만 기다려라. 너무 조급하게 굴면 주기가 싫어지거든."

말은 그렇게 했지만 훼이는 아직 닫지 않은 공간 안으로 왼손을 집어넣어 무
언가를 꺼냈다. 흰 천에 싸여있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길쭉
한 것이 막대기처럼 보이기도 했다.

  " 자, 내가 주는 선물이다."

훼이는 성휘와 비에게 길다란 보퉁이를 하나씩 건네 주었다. 어리둥절한 표정
으로 그것을 건네받은 성휘는 손에쥔  그것에서 어느정도의 무게가 느껴지자
그것이 무엇인지 어렴풋하게나마 눈치를 챌 수 있었다.
비는 감싸여 있는 흰천을 서둘러서 풀었다. 그리고  자신의 손에 들린 길다란
검을 보며 탄성을 내뱉었다.

  " 와..... 검이군요......"
  " 손잡이를 보거라."

검신에만 정신을 팔고 있던 비는 훼이의 말에  손잡이로 시선을 돌렸다. 손잡
이에는 섬세하고 아름다운 글씨체로  비(飛)라는 자신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
다.

그리고 막 흰천을 벗겨내려간 성휘의 검에도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기뻐하며
검집에서 검을 꺼내 이리저리 검을 휘둘러보는  비와 달리 성휘는 한동안 아
무말도 하지 못했다.

  " ......고마워."

훼이는 성휘 곁으로 다가선후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 맘에 드는지 모르겠는데...."
  " 무척.....마음에 들어..." 

성휘는 몇번이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성휘에게는 지금까지 타인에게 무언가를 받아본 기억이 없었다. 그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가슴 한구석에서 가벼운 통증이 일었다. 지금은 정말이지 행복했다.
비록 언제 끝날지 모르는  근신에 처해지긴 했지만  지금의 성휘에게는 마음
한구석을 차지한 여인 연화도 있었고, 무료하게 이어지는 자신의 시간을 함께
채워주는 비가 있었다. 그리고 어린시절부터 그토록이나  원하던 친구라는 이
름이 과분할 정도로 어울리는 훼이도 있다.
정말이지 아주 사소한 일상의  행복이었지만 성휘는 세상의  모든 것을 얻은
것 처럼 기뻤다.
 

  " 아버지. 고맙습니다."

햇빛에 반짝이는 날카로운 검날에 시선을 빼앗긴 채 비는 큰 소리로 외쳤다.

  " 진검을 가진만큼 좀더 책임감을 키워야 한다."
  " 네. 명심할께요."

밝게 미소짓는 비의 머리를 훼이는 가볍게 쓰다듬었다.


                *            *            *            *


라이엔의 얼굴에는 그림자가 져 있었다. 흑룡왕비 미하의 모습이 옆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아직까지 유안이 깨어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 어떤 말씀을 드려야 할지...... 유안은 괜찮습니까."

파이론은 라이엔에게 인사를 건네고 난 후 넌지시  물었다.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는지 라이엔은 파이론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그가 온 것을 알아챘다.

  " 아...예.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닙니다..."
  " 비께서 심려가 크시겠어요."

챠렌은 걱정이 담긴 어조로 말했다.

  " 예....계속 유안의 곁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아서....."
  " 그렇겠죠... 이 일로 비께서도 몸이 상하시지는 않을지 걱정 되는군요."
  " 아니요. 괜찮습니다."

그렇게 파이론과 챠렌이 라이엔에게 몇마디를 건네는 사이 다른 용왕들이 들
어섰다. 그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고 라이엔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청룡왕의 집무실은 깔끔했다. 벽면에 걸려있는  수묵화와 몇 개의 글귀들. 그
리고 한쪽 벽면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책장에는 청룡왕이 즐겨 읽는 서책들
이 잔뜩 꽃혀 있었다.

  " 오늘 이렇게 자리해주신 용왕 및 용왕비들께 우선 인사를 올립니다."

먼저 인사를 건넨 29대 청룡왕 리판은 집무실에 자리를 잡고 앉은 용왕과 용
왕비들에게 차례대로 시선을 던졌다. 리판이 앉은 자리로부터 둥글게 원을 그
리며 자리한 오대 용왕과 비들은 모두 9명이었다.  이번일로 직접적인 피해를
받은 흑룡왕의 비인 미하만이 이 자리에 없었다.

  " 이번 회합의 목적은  명계에서 용족을 상대로 벌인  일 때문입니다. 우선
서신으로 대략적인 내용은 말씀 드렸지만 여기 계신 흑룡왕님으로 부터 직접
사정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각각 자신의 힘을 상징하는 색의 파오를  걸친 용왕들과 간소한 궁장 차림의
비들은 모두 진중한 표정으로 흑룡왕을 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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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어제 올린 글에서 실수가 있었습니다.
백룡족의 공격주문중에 풍천 회륜이란게 있었잖아요. 거기서 풍자가 한자 지원이
안되더군요...^^ 林+風 이었는데.....(에잇..구린 컴퓨터 같으니라구)
그러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번 호 : 613 / 3334 등록일 : 1999년 06월 26일 23:20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51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5장 三.


 
 
                           흑룡의 숲


  제 5장  흩날리는 꽃잎


  三.


  " 그곳. 서천(逝川)은 천상계에서 가장 험한 지역으로  소문난 곳이지. 깍아
질 듯이 높은 산들과 험하디  험한 지형. 그때문에 그곳에는 사람이  살지 않
아. 그리고 내가 유배를 명 받은 곳은 그 서천에서도 가장  끝에 있는 서천강
부근이었어."

부드럽게 울리는 성휘의 목소리는 나지막했지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지도
않았다.

  " 혼자인 건 궁에서와 마찬가지 였지만 그곳은 너무도 고요한 곳이었지. 그
곳에 간 이후로 한달 동안은 인기척조차 느끼지도 못했었으니까. 나는 매일같
이 서천강의 강둑에 앉아서 건너편을 바라보고만 있었어.  그곳에는 서책들도
그렇다고 무언가를 할만한 건  하나도 없었거든. 그저 하루종일  멍하니 앉아
있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지."

훼이는 미안해졌다. 자신을 유일한 친구라고 말해주는 성휘를 위해 해준 것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저 지금은 지나간 이야기를 듣는 것 뿐이었지만 마음
속에서부터 성휘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 그리고 언제였는지는 확실히 기억나지  않지만.....언제나처럼 강둑에 앉아
있던 어느날. 처음으로 그녀를 만났지. 그 험한 강물위에 배를 띄우고 능숙한
솜씨로 노를 저어가며 그녀는 내가 있는 쪽으로 건너왔어.  그리고 그녀는 날
보더니 가볍게 인사를 하고  그냥 지나쳐갔지. 차갑게 느껴질  정도로 표정이
떠오르지 않은 얼굴이었는데도 선명하게 가슴속에 남았지..."

그리고 나서 성휘는 잠시 말을 멈췄다. 성휘의 입가에  희미하게 떠오른 미소
는 그때를 회상하듯 아련함이 묻어 있었다.

  " 검선이라면 어떤 자리에 있지?"

훼이는 처음으로 연화에 대해 물었다.

  " 검선 중에서도 천(天)의 직급을 가지고 있지.... 파란색의 허리끈으로 상징
되는... 아마도 지금 천의 직급을 가진  건 그녀뿐일거야. 천의 직급은 검선중
에서도 최고를 칭하지. 천군  대장보다도 높은 자리니까...  그리고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녀의 실력을 볼 수 있었는데  그녀의 손에 들린 검날의 움직
임도 그리고 소리조차도 들리지 않을 정도였지."

연화라면 훼이도 단 한번이지만  본 적이 있었다. 얼굴에  표정다운 표정조차
떠올리고 있지 않아 과연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무심한 얼
굴. 하지만 성휘를 대할 때 만큼은 그녀의 얼굴도  조금이지만 부드럽게 풀렸
다. 근신중인 성휘였기에 현재 천궁의 수비를 맡고 있는  그녀는 궁을 둘러본
다는 빌미로 잠시 별궁에 들르는 것이었다.

  " 그녀에게 구함을 받은 건 서천쪽으로  도망친 한 죄인이 날 공격한 직후
였어. 그때 난 무기라고 할 만한건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데다가 설사 있었다
고 하더라도 그걸 휘두르는 방법조차 알 수 없었을 테지만. 나름대로 몸을 굴
려 피하긴 했는데 죄인이 가진 검에 팔을 스치는 상처를 입었지. 그리고 바로
그때 그녀가 나타났지."

성휘는 싱긋 웃어보였다.

  " 아무래도 그때 그녀의 검 휘두르는 모습에 반했나봐. 그때부터 나도 검을
배워야 겠다는 생각을 했으니까."

한쪽 벽에 걸어둔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검을 바라보며 성휘는 다시 말을 이
었다.

  " 유배지에서 7개월정도 후에 돌아오게 되기까지  난 그녀와 함께 있을 수
있었지. 그녀가 맡은 서천을 둘러보고 점검하는 일이 끝나면  그녀는 내게 피
리부는 것을 가르쳐 주었지. 그녀가 가진 검은 평소에는  길다란 옥피리의 모
양을 하고 있었는데 싸움을 할 때에만 검으로 변했지. 예전에 검선의 천의 직
급을 가진 자에게 주어지는 검이라고 들은 적이 있어."
  " 요즘 자주 피리를 분다 했더니 그런 사정이 있었군."

성휘는 조금 멋적은 듯이 웃었다.

  " 그리고 그때 비로소 알 수 있었어. 훼이가  어떤 마음으로 화연에게 말을
걸었을지."

훼이는 아무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지금은 무척 행복하다는 걸  느끼고 있어. 소중한 이가  셋씩이나 있으니
까."
  " 다행이군. 그렇게 느끼고 있다니..."
  " 이제 내게도 운이 따라주는 지도 모르지."

아직 상천궁에서는 성휘와 연화가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하지
만 결국 그 사실은 알려질 것이고 그때가 되면 또다시 성휘는 주위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성휘의 얼굴에 떠오
른 미소를 이대로 지켜봐주고 싶었다.

피의 이어짐.....
훼이는 잠시 자신의 몸 속에 흐르는 피가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
았다. 이제 인연을 끊은 부모님과 자신의 일족들. 그리고 자신의 아들 비.

그리고 한 순간 훼이는 지금의 평화가 영원히 계속  되기를 빌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간절하게.


                       *            *            *


성년식.
태어난지 100년이 되는 해에 치르게 되는 그 의식은 한명의 성인으로서 용족
의 일원으로서 다시 태어나는 날이었다. 지금까지 몸 속에  잠재되어 있던 용
족이 가진 진정한 힘을 쓸 수 있게 되는 날이자 이제 앞으로의 삶을 혼자 힘
으로 헤쳐나갈 수 있는 나이와 힘을 가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성년식은 힘을
깨우기 위한 노래와 진언이 그  주를 이룬다. 특별한 힘이 담긴  노래를 통해
몸속에 잠들어 있던 힘을 깨우고 진언으로 성년이 된 것을 축하하는 것이다.

보통 성년식을 치를때가 되면 핏줄이 이어진 친족들이 모여서 축하를 해주기
마련이었다. 생애에 단 한번 맞이하는 날이니 만큼 소란스럽다고 여겨질 정도
로 많은 이들이 모여드는 것이 상례였다.

하지만 비의 성년식에는 훼이를  제외한 단 두명의  하객들이 예정되어 있을
뿐이었다. 아무도 반쪽짜리 용족 아이의 성년식은 축하해주려 하지 않는 것이
었다. 초라하게 치뤄질 비의 성년식이 다가올수록 훼이는 자신을 책망하는 마
음이 더 깊어져 갔다.
적어도 아버지라면 성년식 만큼은 기억에 남을 수 있도록 치뤄주고 싶었건만
아직까지도 완고한 흑룡왕은 비의 존재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이제는 놀랄 정도로 자신의 모습을 닮아있는 비의 모습을 대할때마다 그리고
흔들림 없이 고요한 눈을  대할때마다 훼이는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끼곤 했다. 나이와는 맞지  않는 침착함을 가진. 단 한번도 잘
못된 일을 한 적이 없는 자신의 아들.

요즘들어 부쩍 힘이 강해진  비는 이제 혼자서 수행을  나갈 수 있을 정도가
되어 있었다. 성인식을 치루기 전에 하계에 다녀오겠다며 떠난 비의 뒷모습을
훼이는 깊이 기억하고 있었다.
언제 그렇게 커버렸는지......

그렇게 홀로 정자에 앉아 비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던 훼이는 이곳으로 오고
있는 낯선 방문자의 존재를 깨달았다. 아직 도착하지는 않았지만 미미하게 느
껴지는 진동이 곧 공간이 열릴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훼이의 짐작대로 공간이  열리며 누군가의 모습이
나타났다.
붉은색의 치파오를 걸친 늘씬한 여인의 모습. 예전보다 더  강해진 듯한 기운
이 그녀의 전신에 맴돌고 있었다.

  " 오랜만이군요. 훼이...."

낯선 얼굴은 아니었다. 아니, 잘 알고 있는 모습이었다. 타는  듯이 붉은 머리
카락을 자연스럽게 늘어뜨린 그녀는 28대 홍룡왕 후계자인 화란이었다.
그녀와는 지난번에 상천궁에 초대받았을 때 이후로는 한번도 만난 적이 없었
다. 훼이는 갑작스런 그녀의 방문에 놀라긴 했지만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 오랜만입니다. 화란."

화란은 훼이가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 주어 기쁘다는 듯이 싱긋 웃어보였다.

  " 훼이답지 않네요. 이렇게 적막한 곳에서 파묻혀 지내다니...."
  " 무슨일로 이곳까지 찾아오셨습니까. 바쁘실텐데...."

화란은 훼이의 반대편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 당신의 아들 이야기는  들었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성년식을 치룬다죠?
노래를 불러줄 사람은 구했나요?"

경쾌하게 울리는 목소리였다. 훼이는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 그건 왜......"
  " 혹시 아직까지 구하지 못하셨다면 제가 그 역할을 할까 해서요."
  " 화란... 당신이 말입니까....?"

훼이는 의외라는 듯이 물었다.

  " 물론이죠. 성년식에서 노래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알고 계시잖아요."
  " 그거야 그렇지요."
  " 제 짐작이 맞다면 아직 구하시지 못한 것 같은데.....맞나요?"

훼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화란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 그럼 제게 맡겨주세요. 성년식은 하객이 많은 편이 좋으니까요."

화란의 저의가 무엇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그녀가 먼저 나서고 있었기
에 거절할 수는 없었다.

  " 그럼 부탁드립니다."

훼이는 예의바르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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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파오는 여성용 중국 전통 복식의 이름입니다. 장예모 감독의 영화에서 공리가
자주 입고 나오죠.
5장은 제목처럼 많은 사건이 나옵니다. 얼마나 길어질지는 저도 잘 몰라요.
전 무대뽀로 쓰기가 특기이기 때문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번 호 : 644 / 3334 등록일 : 1999년 06월 28일 00:21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59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5장 四.


 
 
                           흑룡의 숲


  제 5장  흩날리는 꽃잎


  四.



화란은 별궁의 한 방에서 머무르게 되었다. 홍룡족의  후계자인 그녀가 왜 자
신을 찾아온 것인지 훼이는 아직까지 짐작하지 못했다. 물론, 그녀가 밝힌 이
유는 비의 성년식을 위해 노래를 불러주겠다는 것이었지만 그것을 말 그대로
받아들일 만큼 훼이는 순진하지 않았다.

늘씬한 그녀의 몸을 감싼 치파오는 그녀의 머리카락처럼 붉은 색이었다. 그리
고 옷에 새겨진 무늬는  불꽃의 새 주작이  날개짓하는 모습으로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듯이 정교했다.

  " 비라는 이름은 당신이 붙인 건가요?"

한동안 멀찌감치 서서 훼이의 모습을 바라보던 화란이 훼이에게 다가서며 물
었다.

  " 아니요. 제 아내가 붙인 이름입니다."
  " 아....."

화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멈췄다.

별궁은 다른 곳보다 조금 높은 언덕위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별궁에
서 보면 멀리 자리한 흑룡궁의 본궁이 눈에 들어왔다. 점처럼 작아서 겨우 윤
곽을 알아볼 수 있을만한 거리였지만 훼이에게는  그 작게 비치는 건물 하나
하나가 본래의 모습으로 보이고 있었다.
자신이 태어나서 자라온 곳이었기에 그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비에게도 내가 어릴적에 뛰어놀던 곳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하지만 그 바램은 이루어지지 못한 채  비는 며칠후면 이곳 별궁에서 성년식
을 맞이하게 된다.


  " 당신의 마음을 빼앗은 인간 여인이라니..... 한번 만나보고 싶었어요."

화란은 훼이가 시선을 두고 있는 것이 흑룡궁의 본궁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분명 자신의 의지로 궁을 나오긴 했지만 그곳은 언제고 돌아가야할 곳이었다.

  " 언제고 용족은 인간을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우리가 하는 일은 그들 세계
의 균형을 유지하는 일임에도."

그제서야 훼이의 시선이 화란에게 향했다.

  " 무얼 말하고 싶은 겁니까....."

화란은 활짝 핀 모란꽃처럼  웃음을 머금었다. 확실히 화란에게는  다른 이의
시선을 끄는 존재감이 있었다.

다른 용족에 비해 여성 용왕이 많이 나오는  홍룡족은 모계의 혈통이 강했다.
그 때문인지 역대 용왕의 반 이상이 여성 이었다. 전투적 성향이 강한 홍룡족
답게 화란 역시 평소에도 강하고 활발한 성격을  드러냈다. 전투 상황이 되면
그녀는 지금의 모습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진다. 폭발할 듯이 뿜
어져 나오는 그녀의 투기(鬪技)는 남자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로 힘차고 강
했다. 훼이도 몇번 그녀가 힘을 사용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그때의 그녀를
떠올리면 지금의 얌전한 모습은 동일인물 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 제 성격상 돌려 말하는 건 성미에 안 맞으니까요."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는 더욱 화사하게 피어올랐다.

  " 전 당신이 좋아요.  예전에는 당신이 저와 같은  후계자의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말을 못했지만 지금은 아니잖아요."

단도직입적인 그녀의 말에 훼이는 잠시 말을 잃었다.

  " 지금의 당신이라면 제 남편이 되더라도 아무런 장애가 따르지 않아요. 전
예전부터 당신을 봐왔는데 당신의 시선이 닿는 곳은 다른 곳이더군요."

훼이는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 화란... 그대에겐 미안하지만 내게 있어 유일한 아내는 화연뿐입니다."
 
화란은 전혀 실망하지 않은 얼굴로 여전히 미소지었다.

  " 괜찮아요. 곁에 있다보면 언젠가는 좋아지기 마련이에요. 그리고 우리에겐
그만큼의 시간이 있구요."
  " 생각하는 건 그대의  자유지만 마음이란 건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습니
다."

그렇게 말하고 나서 훼이는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 아니요.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녀가 당신의 마음에 얼마나  깊은
흔적을 남겼는지는 모르지만 제겐 그걸 메울만한 자신이 있거든요."

그 말을 끝으로 화란은 몸을 돌려 별궁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 마음이라......."

훼이는 낮게 중얼 거렸다.


             *            *            *            *


  " 그 동안 명계와는 서로간에  불가침의 영역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었기에
표면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일로 그들에게는 그런
생각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청룡왕 리판은 길게 치켜 올라간 눈으로 다른 이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 그리고 간과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사실은 이번일에  연관된 것이 교룡(交
龍)이라는 사실입니다."
  " 그렇다고 해서 용족 전체가 나설 정도로 일을 확대시킬 수는 없겠지요."

5대 용왕 중에서 가장 젊은 황룡왕이 차분하게 말했다. 갓 400을 넘긴 나이의
그는 어깨까지 내려오는 적갈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차분함이 몸에 배인 청년
이었다.

  " 그래서 이번 회합을  열게 된 것이지요. 물론  전면전으로 확대시킬 만큼
큰 사건은 아니지만 차후를 위해서는 미리  이야기를 해 두는 것이 중요합니
다."

26대 황룡왕 청류(晴琉)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 교룡이 연관된 만큼 용족이 나서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것은 명계의 지배
자라 하더라도 감히 나서서 막을 수 없는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그때까지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있던 흑룡왕 라이엔이 입을 열었다.

  " 간과하신 것이 있는데 교룡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우리 용족입니다."

라이엔의 말을 듣고 다른 용왕과 비들은 동의의 뜻을 표했다.

  " 하지만 이것 또한 사실입니다. 교룡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용족들의 생기
가 필요하다는 사실 말입니다. 물론 그것은 그  교룡이 죽은자라는 사실 때문
이긴 하지만."

기다렸다는 듯이 챠렌이 말을 받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보통의 비들과는 다른 단호함이 떠올라 있었다.

  " 흑룡왕님의 후계자를 구하기 위해 흑룡족의 훼이님이 명계에  다녀오셨다
고 들었습니다만, 그 분은 그 교룡을 없애지 않으신 모양이더군요."
  " 명계에서 함부로 누군가를 죽일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
까."

홍룡왕 란의 말에 라이엔이 가볍게 반박했다.

전대 홍룡왕이 일찍 자리를 물려주는 바람에  란은 5대 용왕 중에서 가장 나
이가 많았다. 그렇다고는 해도 겉보기에는 전혀 그 나이를 짐작할 수 없을 만
큼 젊어 보였다. 목덜미를 살짝 덮을 정도의 길이로 자른 붉은 머리카락은 약
간 구불거렸다.
 
  " 하지만 훼이님이라면 명계의 주인도 아무말 하지 못할텐데요. 그가..."
  " 그분도 생각이 있었으니 그렇게 하셨겠지요.  더 이상 그분을 들먹이지는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파이론이 조금은 신경질적이게 들리는 홍룡왕 란의 말을 끊었다.

  " 근본적인 문제는 과연 누가 어떻게 나서서 일을 처리할 것인가 겠지요."
  " 교룡이 감히 천계에 들어설 생각은 하지 못할테니 하계로 수행을 가는 자
들에게 주의를 시키는 것이 좋겠지요. 성년이 지난  용족은 건드리지 못한 다
는 것이 이번 일로  판명이 되었으니 어린 용족들만  잘 보호하면 되는 일이
아닙니까."

황룡왕 청류가 제안하자 대다수의 참석자들은 시큰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그렇게 간단히 끝날 문제라면 회합을 열 필요도 없었을 겁니다."

파이론은 조금 목소리를 높여서 말했다.

  " 그럼, 뭔가 해결책이라도 있습니까?"

평소에 성질 사납기로 소문난 홍룡왕 란은 이번에도 유감없이 자신의 성격을
드러내고 있었다.

  " 괜찮다면 제가 제안을 하지요."

파이론은 란을 향해 가벼운 냉소를 보내며 말을 꺼냈다.




=================================================================
허억.....이러다 정말 삼류 무협지가 되어 버리는 건 아니겠지....--;;;
그냥 동양 무협환타지라는 새 장르라고 우길까.....--;;;
(역시 5년 동안 본 무협의 힘은 대단하다..... 무협 만세 ^^;)
헛소리 였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





번 호 : 650 / 3334 등록일 : 1999년 06월 29일 00:03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42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5장 五.


 
 
                           흑룡의 숲


  제 5장  흩날리는 꽃잎


  五.


  " 돌아오셨어요. 비님."

막 별궁 안으로 들어선 비를 향해 별궁에  머무는 시비 중 하나가 인사를 건
넸다. 비보다 두배 정도  나이가 많은 시비들이었지만 언제나  깍듯하게 그를
대했기 때문에 비는 조금 부담스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이제 훼이와 거의 비슷하게 자란 키와 조금 마른 듯해 보이지만 균형잡힌 몸.
그리고 나이에 걸맞지 않는 깊이를 가진 검은 눈동자. 비는 그다지 감정을 잘
드러내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아버지 앞에서는  언제나 어린아이의 모습 그대
로 였다. 이제 성년식을 맞이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지만 훼이에게 있어서 비
는 언제고 아이의 모습으로 비칠 것이기에.

  " 아버님은.....?"

비는 아직까지 어떤 호칭을 써야 할지 망설이며 시비에게 물었다.

  " 훼이님께서는 내실에 계십니다. 그리고...... 손님이 계십니다."
  " 손님?"
  " 성년식을 도와주러 오신 분이십니다."
  " 아........"
 
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내실로 향했다. 뒤돌아서 걸어가는 비의 뒷모습
을 보며 시비는 작은 한숨을 내뱉었다.


  " 아버님. 비입니다."
  " 그래. 들어오너라."

가볍게 문을 두드리며 비가 말하자 언제나처럼 차분한 훼이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연한 갈색의 나무로 된 문에는 정교한 초목의  모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오랜동안 익숙하게 잡아온 손잡이에는 희미하게 얼룩이 져 있었다.
거의 아무런 소리도 없이 미끌어 지듯이 문이 열렸고 비는 안으로 들어섰다.

  " 다녀왔습니다."
  " 그래. 수고했다."

훼이는 흐뭇한 미소를 떠올리며 답했다.

  " 그분께서는........"

비는 들어섰을 때부터 시선을 잡아끄는 존재. 화사하게  피어난 꽃과 같은 아
름다움을 간직한 여인. 화란에게 시선을 두고 있었다.

  " 아. 소개하마. 28대 홍룡왕 후계자이신 화란님이다."
  " 홍룡족의 후계자시군요. 인사올립니다."

비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 아......"

화란은 가벼운 탄성을 내뱉으며 비의 인사를 받았다.

  " 정말 훼이를 많이 닮았군요. 예전에 훼이와 처음 만났을 때를 보는 듯 해
요."
  " 저도 비를 볼 때마다 놀라곤 하지요."
 
훼이와 나란히 앉은 화란의 모습을 보며 비는 조금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뭐
라고 집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어떤  감정이 마음 속에서부터 떠오르고 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향기가 없음에도 꽃의 여왕이라 불리는 모란꽃과 같이 화란은 그저 존재하는
것 만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그리고 훼이 역시
마주치면 한번쯤은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여운과도 같은 향기를 지닌 남자였
기에 둘이 함께 있는 모습은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 이틀 후로 다가온 성년식을 위해 화란님이 와주셨단다. 몸속에 잠들어 있
는 힘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노래가 필요하지."
  " 아...예. 감사합니다. 화란님."

화란은 엷게 미소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 그렇게 지나치게 감사할 필요 없어요. 그리고 그렇게 높여 부르지 말아요.
둘다..... 전 지나친 격식은 싫어하니까."
  " 그건...."
  " 비. 너도 와서 앉거라. 막 도착했으니 피곤할테지."

비는 자신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살짝 얼굴을 굳히며 자리에 앉았다.

  " 저는 훼이 말고 검은 파오가 이토록 잘 어울리는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생
각도 못했었는데...."
  " 그래요?"

즐거운 듯이 이어지는 둘의 대화를 들으며  비는 조금전부터 느껴지던 알 수
없는 감정이 조금 더 짙어지는 것을 느꼈다.


                      *            *            *


비의 성년식이 열리는 것을  축하하듯이 하늘은 보통때보다  좀 더 화창하고
맑게 개여있었다.

초대를 받고 참석한 성휘와 연화는 처음 보게 될 용족의 성년식에 대한 기대
로 가득한 표정을 떠올리고 있었다. 거의 표정의  변화가 전무하다고 말할 수
있는 연화조차 기대감을 품고 있는 듯이 보여 훼이는 속으로 작게 웃었다.
성년식을 위해 참석해준 손님은 성휘와 연화. 그리고 화란 뿐이었지만, 별궁에
서 생활하는 다섯명의 식솔들 역시 비의  성년식을 축하해주기 위해 함께 자
리했다.


  " 자, 그러면 시작하도록 합시다."

훼이가 말을 꺼내자 별궁  정원으로 통하는 입구에서  은색실로 용의 모습이
수놓인 파오를 입은 비가  들어섰다. 오늘의 성년식을 위해  세명의 시비들이
정성을 들여 만든 파오는 비에게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훼이에게 가르침을 받은 대로 비는 훼이의 바로 앞까지 걸어온 후 걸음을 멈
췄다. 그러자 훼이는 비의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대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시작했다.

  " 그대. 흑룡의 피를 이은 그대가 세상에 태어난 지 백년을 맞이한 오늘. 몸
속에 잠자고 있는 힘을 일깨워 완전한 성년으로의 탈바꿈을 명한다."

훼이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비의 뒤쪽에  자리하고 있던 화란이 노래를 시작
했다. 아무런 악기의 소리도 없이 그저 그녀의 목소리만의 울림을 담은 그 노
래는 그 노래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성휘와 화연에게 있어서
도 신비하게 느껴질만큼 특별한 울림을 담고 있었다.

오랜 옛날부터 이어져 내려온 용족의 힘을 깨우는  노래. 그 노래가 울려퍼지
는 동안 비의 온몸은 희미한 검은 빛으로  감싸였다. 어둠처럼 가라앉을 듯이
검은 색이 아닌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투명한 검은  빛이 비의 온몸을 감싸
안았다.

바람도 불지 않는데 투명한 검은 빛에  감싸인 비의 머리카락은 미풍에 흔들
리는 것처럼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비의 눈은 잠든 것처럼 스르르 감겼다.

화란의 노래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투명한 검은 빛에 감싸인 이후 비의 몸에는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있
었다.
여전히 비의 이마에 손을 대고 있던 훼이는  비의 온몸을 감싼 검은 빛이 처
음 보다 조금 더 짙어졌을 때 다시 입을 열었다.
귀에 들리는 분명한 말임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의미를 알 수 없는 어떤 말이
훼이의 목소리에 실려 나왔다. 마음을 격동시키는 울림을 가진 북의 소리처럼
강하게 훼이의 목소리는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순간. 비의 몸을 감싸고 있던 검은 빛이  완전한 암흑의 빛처럼 검
게 변했다. 비의 이마에 손을  대고 있던 그제서야 검은  빛에 잠겨있던 손을
빼내며 말을 멈췄다. 그리고 때를 맞추어 화란의 노래소리 역시 멈췄다.

  " 어떻게 되는 거지?"

중앙에 검은 빛에 감싸인  비만을 남겨두고 훼이와  화란이 물러서자 성휘는
그때까지 참고 있던 물음을 던졌다.

  " 조금만 기다리면 이제 비는 완전히 새로 태어나게 되지."
  " 새로 태어난다면. 설마 모습이 바뀌기라도 한다는 건가?"

훼이는 고개를 저었다.

  " 용족에게 있어 새로 태어난다는 말은 새로운  힘을 얻는 다는 뜻이지. 새
로운 힘이라기 보다는 그동안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던 힘을 끌어내는 것이지
만."

  " 위험은 없는 것입니까...."

청량한 물소리 처럼 맑게 울리는 목소리로 연화가  물었다. 훼이는 짧은 인사
가 아닌 그녀의 말은 처음 듣는 것이어서 조금은 놀라고 있었다. 성휘의 가장
친한 친구가 훼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연화는 인사 이외의 그 어떤말
도 그에게 하지 않았었다.

  " 그건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 아무일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죠.."

비의 몸에 흐르는 인간의 피가 과연  성년식을 맞이한 이후에 어떻게 작용할
것인가. 그것은 훼이로서도 걱정하고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믿고 싶었다. 비
가 무사히 성년식을 치를 것임을.




============================================================================
아...졸려...요즘들어 괜시리 피곤하네요. 여름이라 그런가.
여름은 너무 더워서 싫어요.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어요...특히 저희집은 미치도록
더워요... 여러분도 더위에 지지않는여름을 보내시길.....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번 호 : 660 / 3334 등록일 : 1999년 06월 30일 00:17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51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5장 六.


 
 
                           흑룡의 숲


  제 5장  흩날리는 꽃잎



  六.



  "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지요."

모든 참석자들의 만장일치로 오랜만에 열린 회합은 끝났다.
다른 용왕과 비들이 하나 둘씩 인사를 나누며 자리를 뜨고 있을 때, 라이엔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두 손을 포갠 채 자리에 그대로 앉아있었다.


  " 흑룡족에게 가장 오래된 자가 있다고 해서 너무 자만하는 것 아닙니까?"

한참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던 라이엔이 막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을 때 홍룡
왕 란이 명백하게 감정이 섞인 어조로 말을 건넸다. 다른 용왕들은 이미 방을
빠져나간 후여서 방 안에 남아있는 것은 라이엔과 홍룡왕 부부뿐이었다.

  " ......무슨.."
  " 사실이 그렇지 않습니까. 모든 용족들이 암묵적으로  흑룡족에게 한발 양
보하고 있는데. 전부터 무척 기분나쁘게 생각했습니다."

라이엔은 일순 황당함과도 같은 감정을 느끼며 아무말도 내뱉지 못했다.

  " 그 수명을 벗어난 것이 그토록 대단한  일이라면 저도 그렇게 되고 싶을
정도군요."

명백한 비웃음이 담긴 그의 말에 라이엔은 울컥하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평
소에 차분한 태도만을 보여온 라이엔으로서는  스스로도 자신의 마음속에 이
런 격렬한 감정이 자리잡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놀랐다.

  " 무슨 말씀입니까.... 제가 우둔해서 그런지 알아듣기가 힘들군요."
  " 하하. 이거 참 의외로군요. 천하의  흑룡왕께서 우둔하다는 말을 다 쓰시
다니..."

순간적으로 터져나올 듯이 끓어오르던 화를 라이엔은 이성으로 억눌렀다.

  " 란, 그만하세요. 대체  무슨 짓이에요. 홍룡족의 왕이면  왕답게 처신하세
요."

확실히 여인들은 눈치가 빨랐다. 홍룡왕비는 라이엔의 얼굴에  떠올랐다 사라
진 분노를 알아채고 자신의 남편을 만류했다.

  " 사죄드립니다. 흑룡왕님. 저희 홍룡족들은 워낙 성격이 불같아서...."
  " 아..예. 괜찮습니다."

고개까지 숙여가며 정중히 사과하는 홍룡왕비를  보며 라이엔은 화를 누그러
뜨렸다.
부인의 말에는 꼼짝을 못하는지 란은 잔뜩 찌푸린  표정을 떠올린 채 라이엔
을 노려보고만 있었다.

  "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라이엔은 가볍게 인사를 건네고 홍룡왕 부부에게서 등을 돌렸다.

  " 다음에는 그분도 꼭 함께이길 빌겠습니다."

어린아이가 유치한 말장난을 하듯이 란은 뒤돌아선 라이엔에게 말했다.
라이엔은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을 뿐 뒤를 돌아보지는 않았다.


                    *            *            *


글세...... 생각해 본 적이 있었던가......
'가장 오래된 자' 라는 말.....
정해져 있는 시간의 법칙을 무시하고 자신과 관련된 무수한 이야기를 남긴채
조용히 살아가고 있는 흑룡 훼이. 언제나 그렇듯 시간을 초월한 자는 다른 이
들의 관심을 끌기 마련이었다.

라이엔에게 있어 훼이는 형이라는 단어 이상의 존재였다. 그가 태어나기도 전
에 훼이는 이미 후계자의 자리에  있었고, 훼이가 후계자의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 훼이보다 이백살 정도 아래인 남동생이 후계자 위를 물려받고, 그로부터
다시 라이엔이 후계자가 되기까지 훼이는 흑룡궁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아니, 몇번 돌아온 적은 있었지만 라이엔은 그때 훼이를 보지 못했었다. 그만
큼 훼이는 흑룡궁으로 돌아오는 것을 꺼려했고 방문하는 일이 생겨도 무척이
나 조용히 머물다 떠나가곤 했다.

천년이라는 세월을 살아가는 용족. 다른  이들의 눈으로 보면 초월한  존재인
그들. 그 용족에게 있어서도 그 천년의 세월을 뛰어넘은 훼이라는  존재는 화
제가 되기에는 충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수명을 뛰어넘은 이유가  하늘이
준 것이 아니라 인위적인 것이었기에 더더욱...

라이엔도 어렸을 적에 훼이가 머무는 별궁에 찾아간 적이 있었다.  자신의 가
장 가까운 혈족인 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훼이의  이야기를 다른 이를
통해서 들어야만 했으므로. 라이엔은 형이라는 존재에 대한 막연한 동경 같은
것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어느날. 라이엔은 훼이가 머물고 있는 별궁으로 갈 결심을  하고 그것
을 실행에 옮겼다.

그리고 라이엔의 두 눈으로 확인한 형의 존재는  다른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큰 것은 아니었다. 그저  깊은 슬픔에 잠겨있는  상처받은 눈을 가진  고독한 
얼굴을 가진 낯선 존재였을 뿐이다.

시기가 나빴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때의 훼이는 더 이상 떨어질 수 없을 만큼
깊이 바닥으로 추락한 상태였으니까. 멀리서 그런 형의 모습을 바라보던 라이
엔은 가까이 다가가 인사조차 건네지 못하고 다시 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라이엔이 24대 흑룡왕이 되던 그때.  훼이는 더 이상 깊이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가라앉은 눈을 한 채 흑룡궁에 찾아왔었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
하고 자신이 추구하는 것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벗어던질 수 있는 과감함
을 가진 훼이는 그곳에 없었다. 그저 검고 검은 두 눈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담
고 마음을 닫아 버린 어떤 남자가 있었을 뿐이었다.


  " 흑룡왕 전하. 유안님께서 깨어나셨습니다."

생각에 잠긴 채 무의식적으로 걸음을 옮기던 라이엔을  향해 기쁨에 잠긴 목
소리로 시비가 말을 건네왔다. 생각에서 벗어나 고개를 돌려보니 언제나 가장
가까이에서 유안의 시중을 들던 시비가 자신의 앞에 있었다.

  " 얼마나 됐지?"
  " 반시진 정도 전에 깨어나셨습니다. 지금은 훼이님께서 가져 오신 약을 드
시고 비전하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계십니다."
  " 형님이....  아직 계신가?"
  " 예. 세분이 함께 계십니다."
  " 전해줘서 고맙구나."

라이엔은 시비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발걸음을 빨리했다. 회합이  열리지만 않
았어도 자신 역시 미하처럼 유안이 깨어날 때 까지 옆에서 떠나지 않았을 것
이었다. 핏줄이란 말로도 설명하지 못할 강한 끈과도 같이 연결 된 것이었다.

  " 유안......."

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서며 라이엔은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 돌아오셨군요."

미하가 가볍게 미소를 띄운 얼굴로 라이엔을 맞이했다.

  " 걱정 끼쳐드려서 죄송해요. 아버지."
  " 몸은 괜찮으냐?"
  " 네. 백부님이 주신 약 덕분에 이젠 완전히 나았어요."

라이엔이 듣기에도 유안의 목소리는 보통때와 다름없이 힘찬 울림을 담고 있
었고 혈색 역시 보통때와 같았다.
라이엔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유안이 누운 침상옆에  의자를 끌어다 놓고
앉았다. 유안의 머리맡에 의자를 놓고 앉아있던 훼이는 아무말도 없이  두 부
자가 이야기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 형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라이엔은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가느다란 미소를 떠올리고 있는 훼이를
향해 몸을 돌리며 말했다.

  " 그런 감사는 필요없다..... 당연한 일이니까......"
  " 백부님은 약초에 관한 것도 잘 알고 계셔서 놀랐어요."

유안은 언제나 처럼 방긋 웃는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세사람을 향해 밝게
말했다.
그러자 훼이는 손을 내밀어 유안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으며 담담하게 웃었다.

  " 괜히 나이만 먹은 게 아니니까 말이다..."
  " 훼이. 오늘도 그냥 돌아가시지는 않겠지요?"

미하는 훼이가 돌아가려 할 때 미소를 보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훼이는
대답없이 또다시 가볍게 웃었다.

  " 형님. 하루쯤은 머물다  가세요. 유안이 형님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 백부님. 부탁이에요."

우습게 느껴질 정도로 셋은 훼이가 돌아가려는 것을 만류했다.

  " 솔직히 이야기 해서 난  이곳에 떠도는 과거의 기억들이  싫다.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난 강한 자가 아니야."
  " 형님....."

자신을 향한 세쌍의 시선을 느끼며 훼이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 훼이. 주제넘게 들리더라도 전 이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 망각은 남겨진
자에게 주어진 하나뿐인 자유라는 것을요......"
  " 다음에 또 들르도록 하지요."

등을 돌린 훼이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세사람은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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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웃.....머리 뽀사진다...아..이 얽히고 ?힌 시간들이여....
난 숫자계산하는 게 젤 싫은데 어쩌다 이런 내용이 된 것인가.....T.T
나도 비축분 있었으면 좋겠다....매일 한편씩 쓰려니 언제 머리가 터질지 조마
조마.....(웃..동시연재는 힘들어... 빨리 완결내자... 완결....)
읽어주셔서 감사.....모기 조심하세요~~~



번 호 : 666 / 3334 등록일 : 1999년 07월 01일 01:41
등록자 : ZPFANTS4 이 름 : 포럼운영 조 회 : 199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5장 七.



                           흑룡의 숲


  제 5장  흩날리는 꽃잎


  七.


감았던 눈을 떴을 때 비의 눈에 비친  세상은 평소와는 조금 다른 느낌을 주
었다. 지금까지의 자신이 정해진 어느 높이의 세상을 보아왔다고 한다면 지금
보이는 세상은 하늘 위에서 내려다 보는 것 처럼 넓고 작았다.

  " 축하한다. 한 사람의 어엿한 흑룡족이 된 것을."

언제나 처럼 부드러운 미소를 떠올린 얼굴의 성휘가 축하의 말을 건넸다.

  " 축하드려요."

그리고 성휘의 곁에 선 검선 연화 역시 짧은 축하의  말을 전했다. 훼이가 그
렇듯이 비 역시 연화가 길게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은 없었다.
비는 자신에게 축하를 전하는 그들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것으로 답했다.

같은 용족인 훼이와 화란. 그리고 별궁의 식솔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
만 그들의 얼굴에 떠오른 엷은 미소는  이제껏 지켜봐온 비의 성장을 누구보
다 기뻐해주고 있었다.


  " 우린 이만 돌아가야겠어."

모든 이들이 막 별궁을 향해 몸을 돌리고 있을 때 성휘가 말을 꺼냈다.

  " 벌써 돌아가시는 거에요?"
  " 아직 근신중이니까...."

성휘의 처지를 알고 있는 훼이와 비는 돌아가려는 성휘를 만류하지 않았다.

  " 그럼 다음에 뵙지요."

인사를 건네는 용족들을 뒤로 한채 성휘와 연화는 돌아섰다.


 
  " 언제 봐도 천계는 아름다운 곳이야. 천상계에서 느껴지는 중압감 같은 것
이 없으니까..."

혼잣말처럼 작게 성휘가 말하자 연화는 말없이 고개를 돌려 성휘를 응시했다.

  " 하루빨리 말을 꺼내고 싶은데...기회가 생기질 않는군..."
  " 전 괜찮아요."
  " 하지만........"

연화는 고개를 저었다.

  " 지금은 이대로 있어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 연화가 그렇게 생각해 준다면 괜찮지만.... 그래도 조바심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어...."

용족들이 공간을 여는 술(術)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로 천인들 역시 각 계(界)
를 이동할 때는 특별한 힘을 쓰곤 했다. 용족들의 경우 아무 곳에서나 공간을
열 수 있는 힘을 가졌지만 천인들은 각 계(界)를 잇는 문을 미리 만들어 두고
그곳을 통해 이동했다. 그것은  용족들이 오행의 힘에 가장  밀접한 영향력을
가지고 마력을 끌어내서 쓰는 것과 달리  천인들은 순수한 수련의 힘을 통해
그것을 길러야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상제의 피를  이은 자들은 용족들이 태
어날 때부터 가지는 특유의 힘과 같은 피를 통해 전해지는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지닌 자는 극히 일부로  보통의 천인들은 부단한 노력을 통해
서만이 그 힘을 기를 수가 있었다.

  " 시간은 가장 큰 해약이 될 수도  있으니까 기다려요. 지금까지 기다려 왔
잖아요."
  " 기다림이라..... 어떻게 보면 내 삶의 거의 모든 것을 채운 감정이 바로 그
기다림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연화는 막 천상계로 통하는 공간의 입구를 열었다.

  "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은 수명부에 적혀있는 것 만이 전부는 아닐거라  믿
었는데......"
  " 갑자기 감상에 빠진건가요?"

연화의 말에 성휘는 피식 웃으며 공간 안으로 발을 들여 놓았다.

  " 어쩌면 그럴지도...... 훼이의 아들 비가  벌써 성년을 맞이했고, 나 자신이
그것을 지켜봤다는 사실이 그런 감상을 자아내게 한 걸거야."

연화는 간단한 도술로 공간을 닫았다. 그리고 다시  성휘의 곁에 나란히 서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아직까지 훼이에게 사실을 말해주지 못했어...."
  " 하지 않는게 좋을 거에요."
  " ........그럴까....?"

연화는 묵묵히 고개만 끄덕였다.

  " 그럴지도 모르지. 때로는 모르는  것이 더욱 행복할 수 있으니까.  다가올
날을 근심으로 채우며 기다리는 것 보다... 주어진 시간들을 즐겁게 보내는 것
이 더 나을 때도 있겠지..."

그 말을 끝으로 성휘도 연화도 입을 열지 않은 채 걸음만을 옮겼다.


                      *            *            *


검은 하늘을 촘촘히 수놓은  별들사이로 크게 얼굴을  내민 달빛을 바라보며
비는 낮은 한숨을 토해냈다.

성년이 되었다는 것. 언제고  다가올 일이었지만 막상 성년식을  치루고 나자
다시 예전의 어린 아이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어느새 훌쩍 자라버린 자신이 오늘따라 더욱 낯설게 느껴졌다.
원래 어른이란 건 이런 것일까. 그저 그동안 잠들어 있던 힘을 끌어냈을 뿐인
데 어제까지의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별개의 생물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비는 두손에 힘을 주고 손바닥을 활짝폈다. 길게  뻗은 하얀 손가락과 손바닥
에 새겨진 가느다란 선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 이 두손으로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

  " 성년이란 그런거야. 이제 스스로 걸어나가야 한다는 것."

어느새 기척도 없이 비의 옆으로 다가선 화란이 말을 걸었다. 그녀의 몸을 감
싸고 있는 붉은색의 치파오는 검은 밤 하늘 아래서도 선명하게 그 빛깔을 드
러내고 있었다.

  " 아직 안 주무시고 계셨나요?"
  " 응. 난 이런 밝은 달빛을 좋아하지. 비 역시 그런 것 같은데?"
  " 그래요."

비는 선선한 밤 공기 아래에 혼자 앉아있는  것을 좋아했다. 온몸을 파고드는
희미한 냉기는 피부의 감각 하나하나를 일깨워 주곤 했다.

  " 난 이제 얼마후면 29대 홍룡왕이 될거야."

커다란 나무에 기댄 채 앉아있는 비의 옆에서서 화란은 모두가 알고 있는 당
연한 말을 꺼냈다.

  " 홍룡족은 전투 성향이 강한 일족이지. 무척이나 활동적이라서 한 곳에 머
무르는 걸 무엇보다 싫어해. 나도  과연 왕이 된 이후에  여러 가지 업무들을
참을성 있게 처리할 수 있을지 걱정이야."

비는 화란을 빤히 쳐다보았다.

  " 내가 만약 홍룡족이 아닌 다른 용족으로 태어났다면 난 누군가의 비가 되
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난 홍룡족의 여인으로 태어났고  당연히 왕이 될 거
야."

화란이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비는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다.

  " 그리고 내겐 스스로  원하는 남자를 선택할 권리가  있지. 지금까지 내게
다가온 남자는 많았지만 내가 원하는 남자는 단 한명 뿐이지."
  " 제게 허락을 구하시려는 건가요...."

비의 물음에 화란은 고개를 저으며 웃어보였다.

  " 그저 말하고 싶었을 뿐이야. 내가 원하는 남자가 바로 훼이라는 것을.  너
는 그의 아들이긴 하지만 그와는 별개의 영혼을 가진 존재니까."
  " 아버지는 알고 계신가요....?"
  " 훼이는 네 어머니 이외의 여인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어. 자신의 마음
을 차지한 것은 그녀 뿐이라고  말했지. 하지만 내 마음을  차지한 것도 훼이
뿐이야."

어머니.......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어머니.
화란의 말을 통해 비는 문득 아득히  먼 기억속을 더듬어 어머니라는 존재를
끄집어 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의 기억속에는  어머니라는 존재는 처음부
터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인간을 사랑한 아버지. 용족을 사랑한  어머니. 그리고 다시 아버지를 사랑하
는 차기 홍룡왕이 될 여인 화란.
비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화란은 너무나도 당당했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진
생기있게 피어난 꽃과도 같은 그녀.

아버지의 말을 통해 그리고 오래전 세상을  떠난 숙부 비영을 통해 전해들은
자신의 어머니 화연은 조용한 여인이었다. 하지만 직접 대하고 느껴보지 않고
서는 누군가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는 없는 것이다.
가장 돌아가고 싶은 누군가의 품. 그것이 어머니라고  하지만 비는 훼이가 비
의 미소에 담긴 화연을 보듯이 어머니를 볼 수 없었다.
그저 어머니라는 막연한 단어만이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을 뿐.

  " 난 훼이 이상의 남자가 아니면 혼인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지. 그리고 훼이
이상의 남자는 어디에도 없어."

자신의 선택에 대한 그 어떤 의문도 품지않은 흔들림없는 당당한 목소리.
비가 지금까지 한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그 감정을 화란은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화란과 비의 시선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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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웃....오늘은 늦어졌군요. 만화 동아리 회원들이랑 놀다가....^^
그래도 오늘분은 써야죠... 아아....졸렸었는데 지금은 졸음도 다 달아났습니다.
5장은 진짜로 길어지겠군요. 아직 하고 싶었던 얘기까지 도달하지 못했어요.
흑룡의 숲은 감정적인 내용이 많은데요. 제가 추구하는 스타일을 표현하고자
하려는 시도에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흑룡의 숲의 주제는 심리에 관련된 것이
거든요... 그래도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려면 아직 한참 남았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번 호 : 672 / 3334 등록일 : 1999년 07월 02일 01:09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55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5장 八.



                           흑룡의 숲



  제 5장  흩날리는 꽃잎


  八.



  " 아버지. 지금도 어머니를 기억하세요?"

방에 들어선 이후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의자에 몸을 파묻고 있던 비가 입
을 열고 물은 것은 조금 의외의 내용이었다.

  " 아니, 화연은 언제고 살아있다. 내가 살아있는 한은..."
  " 네......."

비는 훼이의 얼굴을 한번 쳐다보고는 처음처럼 다시 입을 다물었다.

  " 뭐가 알고 싶은거냐. 비."
  " 아니에요. 단지.... 제  기억속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어머니가 아버지에겐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었을 뿐이니까."

아무렇지 않게 대답한 비의 말을 듣고서야 훼이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지금까
지 과거에 대한 이야기는 한번도 꺼낸 적이 없던 비가 화연의 이야기를 물은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언제나 어른스러웠기에 비가 무엇을 생각하고 또,  바라고 있는지 훼이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자신이 비에게 해줄수 있는 최상의 일을 하려고 노력하
는 것 밖에는.
비를. 아니, 화연을 만나기 전 까지는  자신도 아버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조차 해본 일이 없었으므로.

  " 내가 화연과 함께 보낸 시간은 하계의  시간으로 3년 동안이었다. 천계에
서 지내다보면 우스울 정도로 짧은 시간이지만, 난 결코  그 시간이 짧았다고
는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말  없이도 나눌 수 있는 그런  감정이 있으니
까."

하지만 비는 훼이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직 자신이 어리기 때문일까. 비에게는 기억한다는 말보다 잊는다는 말이 더
가깝게 다가왔다.

훼이의 말에 3년의 시간이 천년을 감싸안을 수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면 비
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도 이해할 수도 없을 것임이 분명했다.


                      *            *            *


찾아왔던 때와 마찬가지로 화란은 별다른  인사도 없이 떠나갔다. 아니, 인사
대신 훼이에게 편지를 남기고서.


성년이 되었지만 비의 일상은 바뀐 것이 없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훼이와 함
께 식사를 하고 그 후에는 여러 가지 주문에 관한 것들을  배운다. 그리고 나
면 이후의 시간은 각자가 하고 싶은 것을 했다. 가끔은 외출을 하기도 했지만
보통은 거의 별궁 밖으로 나가지 않는 생활이었다.

숨막히는 적막.
그것이 지금 비가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무심코 멀리에  자리한 흑룡궁 본궁
을 바라보자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같은 땅에 얼마 떨어지지도 않은 곳에
있는데도 비는 저곳에 발을 들여  놓을 수가 없다. 훼이를 따라  처음 천계로
왔던 그날 이후로 비는 흑룡궁에 들어간 적이 없다.  그저 스쳐지나가듯이 한
번 본 자신의 혈족들. 그 눈에 떠올랐던 명백한 거부. 다른 것은 몰라도 그것
만은 기억하고 있었다.

  " 아버지. 저 천상계에 다녀올께요."

수련이 끝난 직후 잠시 동안의 휴식을 취하면서 생각에 잠겨 있던 비는 답답
해져 오는 기분을 털어버리기 위해 도피처로 성휘가 있는 곳을 택했다.

  " 아버지는 가실 생각 없으세요?"
  " 한 이틀 후에 가마. 지금은 하던 일이 좀 남아있어서."
  " 네. 그럼 먼저 가 있을께요."

비는 몸을 일으키고는 별다른 준비없이 바로 천상계로 통하는 공간을 열었다.

  [ 역궁(逆窮) 개문(開門) ]

아직은 주문을 필요로 하긴 했지만 비는 나이에 비해 월등히 뛰어난 힘을 가
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비가 훼이의 피를 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
과도 같았다.

비의 모습이 공간 속으로 사라지고 난 후 훼이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어느새 스스럼 없는 사이가 된 자신의 친구와 아들.
그 두 존재를 떠올리면 저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훼이의  마음 속에서 이제는
화연과 동등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비와 성휘.
걸음을 옮기는 훼이의 뒤로는 언제나 처럼  작게 보이는 흑룡궁의 본궁이 자
리하고 있었다.



시간. 사계절을 지배하는 자인 용족에게도 공평하게 다가오는  시간은 어느면
에서 보면 잔혹한 것임에 틀림없었다.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 같았던 일상의 평화를 시간이라는 이름의 화살은 가볍
게 꿰뚫어 버렸다.

지금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비의 성년식을 축하해주기 위해 찾아왔던 그때의 모습 그대로 성휘는 잠들어
있었다. 천인들에게 주어진 수명을 반도 채우지 못한 채  성휘에게 주어진 유
일한 공간이었던 그 별궁에서  자신을 배웅하는 단  세사람의 시선을 받으며
그렇게 잠들어 있었다.

  " ...........대체......"

고요하게 잠든 성휘를 보면서 훼이가 꺼낸 말은 그것 뿐이었다.

  " .....저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요.........."

비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 그렇게나 많은  피가 흘렀는데  전 그저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어
요......."

비는 자신의 두 눈에 눈물이 흐르는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저 고개를 숙
인 채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훼이는 연화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연화의 얼굴은 보통때처럼  표정없이 굳어
있었다. 평소와 다른 것이 있다면 창백한 색으로 물든 그녀의 얼굴 뿐.

  " 그는 언제나 예상하고 있었어요..........."

훼이쪽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연화가 입을 열었다.

  " 어떻게 된 일인지 말해주세요."

두 눈을 가득 채운 창백하게 식어버린  친구의 얼굴은 슬픔보다는 분노를 느
끼게 했다.

  " 상제의 명령이었습니까?"

연화에게서는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 그러면, 그 태자의 짓입니까?"
  " .......그 누구도 나서서 말리지 않았어요."

잠겨서 갈라진 목소리로 비가 대답했다.

  " 전 이해할 수 없어요.... 자신의 혈육에게.....친 동생에게  칼을 꽂을 수 있
다니......도저히........도저히.........."

훼이의 귓가에 파고드는 것은 숨을 죽인채 오열하는 비의 목소리.


머리속에서 무언가 툭하고 끊기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현실........?
피라는 것이 그토록 중요한 것이었나.....?
받아들이지는 못하더라도 그저 놓아줄 수는 없었던 것인가.
대체 그 피라는 게 뭐길래...... 목숨 하나를 무참히 꺽어버릴 수 있는 것인가.
처음부터 끝까지 처연한 미소만을 지어야 했던 친구의 아픔을....
그리고 겨우 찾은 밝은 미소를 자신은 지켜주지 못했다.


수십년이라는 시간동안 몸을 눕혔던 별궁의 침상 위에서 성휘는 그렇게 마지
막 잠을 맞이하고 있었다.
인형처럼 미동조차 없이 성휘의 곁을 지키고  있는 연화는 눈물 한방울 보이
지 않았다. 하지만 훼이는 알 수 있었다.
가장 슬플때는 눈물 조차 흐르지 않는 다는 것을.
친구라는 이름보다 더 깊었을....... 성휘가 가진 아픔을 가장 깊이 이해하고 있
었을 연화는 그렇게 굳어진 인형처럼 성휘의 얼굴만을 내려다 보았다.

한동안 그런 연화와 성휘를 바라보던 훼이는 갑자기 몸을 돌렸다.

  " .......아버지?"

훼이의 얼굴에 떠오른 싸늘한 미소를 본 비는 놀라서 입을 열었다.

  "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하나뿐이다."

훼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을 나가 버렸지만 분명 마지막 말은 비와 연화
에게 한 것이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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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을 만들었습니다. ^^
이름하여 왕언니와 떨거지들...^^;;; 구성원은  너희가 판타리아를 아느냐를 쓰
시는 뱀파이어님이 왕언니. 그리고 파색 쓰시는 숟가락님이 둘째언니.
그리고 제가 막내입니다. ^^
오늘 내용도 시간을  막 섞어  놨는데요. 핫..머  맨날 그러니까...이해해 주세
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번 호 : 681 / 3334 등록일 : 1999년 07월 03일 00:43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50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5장 九.



                           흑룡의 숲


  제 5장  흩날리는 꽃잎


  九.



하늘을 뒤덮은 검은 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폭우는  마치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쉴새없이 퍼부어지고 있었다.
굵은 나무 뿌리까지 한번에 뽑힐 듯이 거세게  몰아치는 바람과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세차게 내리는 굵은  빗방울들. 격심한 계절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천상계의 날씨로 보기에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날씨가 며칠째 계속되자
천상계에 사는 사람들은 이변이라도 생긴 것이 아닐까 걱정하고 있었다.
때아닌 폭우로 거리를 나다니는 사람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을 정
도로 천상계는 거센 빗소리  이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적막에 감싸여
있었다.


  " 대체 무엇 때문에 이 정도의 폭우도 멈추지 못하는 것이냐!  그러고도 너
희들이 천상계의 수문장(守門將) 이라고 말할 수 있나!"

싸늘한 노기를 가득 담은 오현의 외침이 대전 안에 울려 퍼졌다.

  " 태자전하. 그...그것이 이 폭우는 자연현상이 아닌지라 저희들의 힘으로는
멈출 수 없습니다."
  " 그건 나도 알고 있다.  그러나 명색이 천상계의 수문장인  너희들이 가진
힘으로도 막아낼 수 없다는 것이냐? 단지 한 사람의 힘일 뿐인데도?"
 
보통사람의 머리 두 개는 더 되어 보이는 키와 단단한 체구를 한  사방(四方)
의 수문장들은 머리를 조아리며 곤혹스러운 표정을 떠올렸다.

  " 한사람이라고는 해도 그는 용족 중에서도  최강의 힘을 가진 흑룡족입니
다. 게다가 흑룡족 중에서도 근래에 보기 드문 힘을 가진 자라는 소문이 파다
합니다."
  " 감히 내 앞에서 변명을 하는 것인가?"

노기가 담긴 오현의 목소리를 듣고 수문장들은 일시에 입을 다물었다.

  " 당장에 무슨 수를 쓰더라도 저자를 멈춰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들의
목을 치겠다."

낮게 울려 퍼진 오현의 말에 수문장들의 얼굴은 하얗게 굳어졌다.

  " 지금까지의 일은 눈감아  줄 수도 있으니  당장 폭우를 멈추게 해.  알았
나?"

아직 극소수밖에 모르는 일이지만 자신의 친동생을 직접 죽였을 정도로 태자
오현은 냉혹한 성품을 가진 자였다. 어떤 사실일 지라도 그는 입밖에 낸 말은
반드시 지켰다.

  " 꾸물거리지 말고 당장 움직여라!"
  " 예. 전하."

수문장들은 입을 맞추어 대답하며 몸을 돌렸다.

  " 하. 우스운 우정 놀이인 모양이지. 성휘?  죽어서까지 널 위해 슬퍼해 주
는 친구가 있다는 건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군 그래. 어디까지  계속되나 보자
구......."

텅빈 대전 안에서 태사의에 몸을 기댄 채  오현은 싸늘한 비웃음을 떠올리며
내뱉었다.


몇 달 전부터 천상계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업무처리는 오현이 맡아하고
있었다. 이제 서서히 다음 상제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라며 상제가 그에게 일
을 맡긴 것이다.

천상계의 하늘을 뒤덮은 검은 먹구름이 훼이의 힘으로 인한 것이라는 것도.
성휘가 오현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도 상제는 알고 있을 것이 분명했지만
그는 언제나 그랬듯이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그는 그저 상천궁의 깊숙한 곳에
자리한 자신의 방안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철저하게 가리워진  궁의 심처에서
상제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는 그 자신밖에는 모를 것이었다.


                       *            *            *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 같은 폭우는 거세게 지면에 떨어지며 빗방울들을 사방
에 뿌려댔다.
반쯤 열린 창 밖으로 거세게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에 가만히 귀 기울이며 세
사람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숨소리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침묵.
방안에 그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은  단지 그들의 안색이
성휘처럼 새하얗지 않다는 것뿐이었다.
며칠전과 마찬가지로 연화는 성휘가 누워있는 침상 곁에  앉은 채 미동도 보
이지 않고 있었고 붓기가 빠지지 않은 눈을 한  비는 멍한 얼굴로 창밖을 내
다보고 있었다.

그 침묵이 얼마나 이어졌을까. 갑자기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성휘의 감시역으로 배치되었던 천군들이 누군가가 들어서려는 것을 만류하는
소리와 강압적인 몇 마디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바닥이 쿵쿵거
리고 울릴 정도로 커다란 발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방문이 활짝  열렸다. 그리
고 방안으로 들어선 것은 조금 전 대전 안에서 오현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던
사방의 수문장들이었다.

  " 지금 당장 빗줄기를 멈춰 주십시오."

말투는 정중했지만 그들의 표정은 금방이라도 공격을 할 듯이 위험스럽게 보
였다.
분명히 그들이 들어선 것을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지만 방안에 있는 세 사람
중 어느 누구도 그들에게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서로 비슷한 생김새를 가진 네 명의 수문장 중  길게 수염을 기르고 있는 사
내가 다시 말을 꺼냈다. 관복 겉에 갑옷까지 걸치고 있기 때문인지 몸집이 더
욱 크게 느껴지는 사내였다.

  " 이 폭우만 멈춰 주신다면 상천궁의 일부를 파괴하신 것은 눈감아 드리겠
다고 합니다. 큰 일이 될 수도 있는 문제니까 함부로  처신하시지는 않으시리
라 믿습니다."

수문장의 말이 끝나고 난 후에도 훼이는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눈
조차 깜빡이지 않고 있었기에 어찌 보면 인형이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였다.

  " 그렇게 거부하시면 저희들도 힘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훼이에게서 아무런 대답이 없자 네명의 수문장은 어깨에 메고 있던 말이라도
한번에 베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칼을 뽑아들었다.
스르릉하는 소리와 함께 검이 검집에서  빠져나오는 소리가 울리자 그때까지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있던 연화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 당장 나가라. 여기는 너희같이 피에 물든 자들이 들어올 곳이 아니다."

그저 나직한 목소리 였지만 연화의 목소리에는 강한 힘이 담겨 있었다.

  " 검선님의 명령이라고 하셔도 따를 수 없습니다.  저희는 태자전하의 명령
을 받고 온 것입니다."

대답을 들은 연화는 입술 끝을 살짝 치켜올리며 웃었다.

  " 내 앞에서 검을 꺼내드는 자는 누구라도 상관없이 베어 버리겠다."

그렇게 말하고 나서 연화는 허리에 끼워두었던 옥소를 빼내들었다. 그리고 그
옥소는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황금색의 용이 휘감겨  있는 손잡이가 달린 투
명한 검신을 가진 검으로 바뀌어 있었다.
연화의 손에 들린 검을 본 수문장들은 몸집에 맞지 않게 흠칫하고 몸을 떨었
다.
그들이 막 공격을 해야할지 어떨지 망설이고 있던 사이.

  [ 개문(開門) 풍(風) 수(水) 운(雲) - 폭풍을 부르는 주문 - ]

훼이의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목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그의 말이  떨어지자
마자 폭우가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거세어 졌다.
열려진 창문은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이  삐걱거리며 흔들렸고 창밖으로 보이
는 정원의 나무들은 금세 뿌리가 뽑혀 날아갈 것처럼 거세게  흔들렸다. 그리
고 실제로 작은 나무들은 뿌리가 뽑힌 채 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그 광경을 목도한 수문장들은 손에 든 검을 휘두르며 훼이를 향해 몸을 움직
였다. 몸집만 보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재빠른 움직임을 보이며 수
문장들이 막 훼이에게 검을 휘두르려던 찰나 챙하는 가벼운 검성(劍聲)이  울
리며 연화가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 내 입에서 같은 말이 나오게 하지 마라."

반대편이 비춰질 정도로 투명한 연화의 검신이 푸른빛으로 물들어 간다고 느
꼈을 때 그녀의 검은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유연한 움직임을 보이며 수문장들
의 목을 향해 움직여갔다.

  [ 패사령진(覇邪靈陣) 개(開) - 최상급 방어주문 - ]

그리고 비가 방어주문을 외치며 연화의 옆으로 뛰어들었다.  언젠가 훼이에게
서 받았던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검을 손에 든 채.


수문장들이 휘두르는 대검의 영향으로 인해 나무로 지어진 건물의 벽이 조금
씩 파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비가 외친 방어주문 덕택에 잠든  것처럼 조용히
누워있는 성휘의 주위는 흔들림 하나 없을 정도로 고요했다.

검과 검이 마주치는 날카로운 금속음과 윙윙거리며 울리는  바람소리. 그리고
밖에서 들려오는 찢어질 듯이 거센 바람소리와 무언가가 무너져 내리는 소리
가 서로 섞여서 묘한 흥분을 자아냈다.
그리고 어느새 방안으로 들어선 천군 몇 명도  싸움에 가세해 수문장들을 문
밖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파랗게 선을 그리며 움직이는  연화의 검은 정확하게  수문장의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가느다랗게 뿜어져 나오는 붉은 색의 핏줄기가 막 문  밖으로 밀려
나가면서 비춰졌다. 이제 여러 가지 뒤섞인 소리 속에 낮은 침음성이 섞여 들
었다.

그리고 훼이는 그 모든 장면들을 그저 검고 깊은  두 눈에 담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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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오늘은 날씨가 그나마 시원해서 좋았어요...^0^
그래서 그런지 글이 어제보다 잘 써지네요.
요즘은 선배한테 빌린 우타다 히카루 CD를 듣고 있는데 노래 정말 잘 부르더군요.
600만장이나 팔린 이유를 알겠어요. 혼혈이라서 그런지 영어 발음도 정말 좋구
가창력도 좋고 16살 짜리 목소리가 아니에요. 정말 대단해..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0^



번 호 : 688 / 3334 등록일 : 1999년 07월 03일 23:15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44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6장 一.



                           흑룡의 숲


  제 6장  환영(幻影)


                            잠시 눈을 감았다.
                          한 동안의 침묵 속에
                         지겹도록 이어질 어둠과
                        아스라한 여명이 공존한다.  



  一.


  " 오라버니가 현무족과 다투게 된 것은 순전히 젊은 혈기 때문이었어요."

유에린은 멀리에 있는 무언가를 응시하듯이 고개를 돌린 채 입을 열었다.

  " 둘중의 하나라도 양보했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겠죠. 그 일은 그저
스쳐지나가듯이 넘겨버릴 수 있는 아주 사소한 일이었으니까요."

훼이는 잠시 고개를 들어 유에린의 얼굴을  바라보았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 젊은 현무족과 젊은 용족의 다툼은  그저 일상의 한 부분이었던 것  처럼
지나가 버렸죠. 아무도... 심지어 그 싸움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오라버니의 가
족들 조차 아무렇지 않게 그 사실을 받아들였어요.  하지만 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어요."

유에린은 낮게 시를 읊조리듯이 평이한 어조로 말을 이어나갔다.

  " 다른이들에겐 있을 수 있는 일이었을지 모르지만. 제겐 단 하나뿐인 혈육
을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었죠. 비록 피는 이어지지 않았지만...."
  " 그를 마음에 두고 있었나보군."

유에린은 보이지 않게 살짝 미소를 떠올렸다.

  " 그랬을 지도 몰라요.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자신을 돌봐준 이에게 이끌리
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지요. 오라버니는 일찍 돌아가신 제 부모님을 대신해서
절 돌봐주셨으니까요. 친 가족이라해도 거짓은 아닐 정도로."
  " 그 현무족은 어떤 자였지?"
  " 글쎄요. 전 그저 먼  곳에서 얼핏 보았을 뿐이니까요. 오라버니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 자가 대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보기 위해서 환계로 찾아갔
었지만 당당하게 그의 앞에 나설 수는 없었어요.  제겐 어떤 명분도 없으니까
요."

훼이에게서 피식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오자 유에린은  얼굴 표정을 바꾸며
고개를 돌렸다.

  " 세상엔 명분보다 중요한 게 많이 있지..."
  " 하지만 적어도 그자의 앞에 당당하게 서기 위해서는 대등한 힘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지만."
  " 그래서 무턱대고 내게 와서 현무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한 건가?"

유에린은 무안한 듯이 훼이에게서 시선을 거두어 들였다.

  " 용족들에게. 아니 모든  이들에게 경이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당신이라면
제게 해답을 줄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요."
  " 해답이라.....그래서 그 해답은 찾았나?"

유에린은 고개를 저었다.

  " 아직 찾지는 못했지만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분명."

그것은 유에린이 어떤 생각을 품고 살아가는 지를 알려주는 말이었다. 성년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린 청룡족 유에린이 어떠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
고 있는지 훼이는 느낄 수 있었다.

그래.....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이 결심한 것을 이루고 싶어하는 거겠지.
그 누구와 닮았군.

요즘들어 과거의 일들이 마치 얼마 전에 일어났던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르는
일이 많았다. 오랜 세월동안 혼자만의  생활을 고집해 왔기 때문일까. 일상에
자신 이외의 존재가 끼어들었다는 사실은 훼이의 심경에 많은 변화를 안겨주
었다. 마치 작은 돌 하나가 잔잔한 수면에  파문을 일으키듯이 유에린의 존재
는 훼이에게 과거로의 회귀라는 이름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살아온 천년을 훨씬 뛰어넘는 세월  동안 훼이는 세상이 변해가는 것
을 두 눈으로 지켜보았다. 반복되고 언제나 또  반복되는 시간이지만 그 시간
을 살아가는 자들은 언제나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유에린이라는 갓 성년을 넘긴 여인이 던져주는  파문은 아주 작은 것에 불과
했지만 요지 부동하게 움직이지 않고 있던  나무를 흔드는 것도 시작은 작은
바람에 불과한 것이다.

  " 늦었지만 감사드려요. 당신의 안식의 시간을 방해한 저를 받아주신 것을."

훼이의 검은 눈동자에 비친 유에린의 모습은 처음과는 달리 부드럽지만 강인
한 여인의 모습이 되어 있었다.


                     *            *            *


  " 전하. 이상이 이번에 수행을 위해 하계로 내려간 총 인원입니다."
 
라이엔은 보좌관이 내민 문서를 책상 위에 내려 놓고 잠시 내용을 훑어 보았
다.

  " 예년에 비하면 적은 숫자군."
  " 그렇습니다. 요즘은 혼인을 하는 연령대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에 그만큼 아이들도 늦게 태어나고 있습니다."
  " 하긴.."

라이엔은 고개를 끄덕이며 문서에  인장을 찍고 나서  쌓여있는 문서들 위로
그것을 올려놓았다.

  " 이제 하계의 계절이 가을로 넘어올 때이니 백룡들이 바빠지겠군."
  " 그리고 그 후에는 저희들이 바빠지는 때가 오는 것이구요."
  " 그나마 올 여름에는 가뭄이 든 지역이  적어서 일이 덜한 편이었지. 마음
같아서는 매년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있도록 적당히 비를 뿌려주고 싶지만
가뭄 역시 천기의 일부이니 어쩔 수 없지."

아침부터 거의 쉬지 않고 문서들을 처리한  탓인지 한낯이 될 무렵에는 거의
모든 일이 끝이 났다.

  " 오늘은 이걸로 끝인가... 수고했네. 보좌관."
  " 아닙니다. 전하께서야 말로 늘 문서를  처리하시느라 유안님이나 비 전하
와 함께 하실 시간이 적으신데요."

라이엔과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짧고 깔끔하게 머리를 자르고 있는 보좌관은
엷게 미소지으며 답했다. 흑룡족 장로중의 한명을 아버지로 둔 그는 라이엔이
후계자가 되기 전부터 보좌관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고 있었다. 혼인은 일찍
한 편으로 같은 귀족인  흑룡족의 여인과 200살  정도에 혼인을 해서 지금은
두명의 자식을 가진 아버지 였다.

  " 그렇군. 오늘은 오랜만에 밖으로 나가봐야겠군. 보좌관. 그러면 나는 나가
볼테니 뒷 정리를 부탁하네."
  " 네. 전하. 편히 쉬십시오."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는 보좌관의 인사를  받으며 라이엔은 집무실을 빠져나
왔다.


막 미하의 방으로 들어서려던 라이엔에게 미하의  전속 시비 하나가 말을 걸
어왔다. 

  " 전하. 조금 전에 비전하께서 유안님과 함께 산책하러 나가셨습니다."
  " 아. 그런가... 어디로 간다고 했지?"
  " 오랜만에 궁 밖으로 나가신다며 수행원 셋을 데리고 황룡족의 영지에  있
는 초지로 나가셨습니다."

라이엔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렸다.

흑룡왕비가 된 이후로 미하는  거의 궁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었다. 기린족의
황녀였을 당시의 그녀는 혼자서 여러곳을  다니기를 즐겨했었는데 시간은 그
녀의 그러한 성격마저 바꿔버린 모양이었다.
영수족인 기린족에 비하여 용족들은 맡은 일들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에 하루
의 삼분지 일의 시간  정도에도 못 미치는 짧은  동안만이 라이엔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낯설다면 낯설다고  말할 수 있는 용족들의  틈에서 미하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라이엔도 깊숙이는 알지  못했다. 그녀는 그저 조
용한 여인이자 흑룡왕의 비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가끔은 백룡왕 파이론의 비인  챠렌과 같은 활발한  여성이 곁에 있어주기를
바랄때도 있었다. 하지만 라이엔에게는 미하만이 가장 편안한 기분이 되게 만
들어주는 여인이었다.
자신의 검은 눈과는 전혀 다른. 심해와도 같은  미하의 푸른눈을 마주할 때면
일로 지친 몸이 저절로 풀어질 정도로 기분이 편해지곤 했다.

그때 환계에 가지 않았다면 미하는 만날 수 없었겠지.
인연이라는 것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다. 기린족의 여인을 자신의 비로 맞
이하게 될 거라는 생각은 그녀와 만나기 전까지는 한번도 해본적이 없었는데
지금은 가장 깊이 자신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오셨어요."

자신의 무릎을 베고 잠든  유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하는 부드러운 눈을
들어 라이엔을 응시했다.

  " 오늘은 오랜만에 셋이 함께 시간을 보낼까 해서."
  " 유안은 조금 피곤했던 모양이에요. 그 동안 지난번의 실수를 만회해야 한
다며 수련에만 전념하더니..."
  " 어린녀석 같으니라구...."

라이엔 역시 미하의 옆에 나란히 앉았다. 눈 앞에 펼쳐진 푸른색의 초지와 등
뒤로 늘어선 나무숲. 황룡족의  영지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히는
이곳은 미하가 천계에 온 이후로 가장 마음에 든다고 말한 곳이었다.

  " 이곳에 오니 문득 당신과 처음 만났던 날이 떠오르는군."
  " 전 그날 당신을 만난 것이 정말  행운이라고 여기고 있어요. 진정한 인연
은 자신도 모르는 때에 찾아오는 것인가봐요."

미하의 입가에 떠오른 엷은 미소를 보며 라이엔 역시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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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나온 현실 장면이군요....^^
부드러운 분위기 연출입니다. 6장은 보통 길이정도(어느 정도지? ^^) 구요.
평이한 전개가 될 것 같습니다. 더운 나날이지만 힘내세요 ^0^
읽어주신 모든 분들. 감사드려요.



번 호 : 712 / 3334 등록일 : 1999년 07월 05일 01:21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47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6장 二.



                           흑룡의 숲


  제 6장  환영(幻影)


  二.



지리하게 이어지는 일상의 나날들.
남겨진 자는 남겨진 대로 떠나간 자는 떠나간 대로 시간은 흘러갔다.

성휘의 죽음이 아무렇지 않은 일처럼 처리되고 천상계에서 몇날 며칠 폭풍을
부른 훼이에게 천계의 흑룡궁으로 항의가  오고나서 훼이에게는 금족령이 떨
어졌다. 하지만 금족령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해도 훼이는 더  이상 움직일 생
각조차 갖고 있지 않았다. 침울하게 가라앉은 표정의 비와  함께 훼이는 별궁
안에서 한 발자국도 나서지 않았다.

천상계에서의 소란으로 인해 훼이와  비가 머물고 있는  별궁에는 많은 수의
병사들이 배치되었다. 흑룡왕에게서는 아무런 말도 없었지만 그것은  분명 자
중하고 조용히 지내라는 무언의 암시와도 같은 것이었다.

죽음이 가져다 주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자신의 눈앞에서 죽음을 목격한 비는 충격을 받은 듯 했다. 물론 숙부인 비영
의 죽음을 보기도 했지만 그것은 자신의  수명을 다한 자가 맞이하는 편안한
안식이었기에 슬픔 이외의 것은 없었다. 그에 반해 성휘의  죽음은 예정된 것
이 아닌 죽음이었기에. 게다가 그 죽음을 목도 하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죄책감으로 비는 심한 우울증에 빠진 것 처럼 보였다.
다른이의 앞에서라면 별로 말이 많은 편이 아니었던 비였지만 언제나 훼이의
앞에서만은 자신이 품고 있는 생각들을 이야기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훼이에
게 조차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멍한 시선으
로 자리에 앉아 있을 뿐. 비는 하루아침에 변모해 버린 것 같았다.


  " 전하. 차라도 내어 올까요"

숨막힐 정도로 가라앉은 별궁안의 공기를  깨뜨리며 시비 한명이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자신의 방에 틀어 박힌 채 며칠째 서책들을 읽고 있던 훼이는 오늘도 변함없
이 몇권째인가의 서책을 읽고 있었다.

  " 차라......"

겨우 책에서 시선을 뗀  훼이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떠올리고 있는 시비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 용정차를 두잔 준비해 주겠나? 비에게도 한잔 가져다 주도록 하고.."
  " 네. 전하."

훼이의 대답을 듣고난 후 시비의 얼굴에는 안도가 떠올랐다.

각자 자신의 방에 틀어박힌 채. 식사 때 조차 얼굴을 내밀지  않는 두 부자는
어떻게보면 지독히도 닮아 있었다.
훼이에게는 친구이자 비에게는 편안한 대화  상대였던 성휘의 죽음이 가져다
준 여파는 그토록 큰 것이었다.


  " 들어가겠습니다. 비님."

시비는 가볍게 문을 두드리고 나서 비의 방 안으로 들어섰다.
시비의 눈에 비친 비는  지금까지의 단정했던 모습과는  달리 많이 흐트러져
있었다. 옷차림이나 외관이  아닌 풍겨나오는 분위기가  그랬다. 마치 정신을
놓아버린 사람처럼.
활짝 열린 창문으로 보이는 풍경들중 무엇에  시선을 두고 있는지 비는 줄곧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 차를 가져왔으니 드시지요. 아무일도 하지 않고 계시는 건 비님답지 않습
니다."

시비의 말에도 비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시비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탁
자 위에 찻잔을 내려 놓았다.

  " 용정차입니다. 기분을 맑게  해주는 차이니 내키지  않으시더라도 드십시
오."

그렇게 말을 하고 나서 시비는 공손히 몸을 돌렸다. 그리고 막 방을 나서려는
시비의 눈에 찻잔으로 손을 가져가는 비의 모습이 들어왔다.
 
  " ........고맙다....."

작은 소리였지만 시비는 비의 목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            *            *


  " 이래서 남자들은 어쩔 수 없다니까!"

날카롭게 울려퍼진 화란의 목소리가 방안을 맴돌았다.

  "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죠? 그러고 있으면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
오기라도 한 대요? 남겨진 자가 가진 최대의 축복은 망각이라는 것도 모르는
건 아니겠죠?"

훼이는 가볍게 눈만을 돌려 화란을 바라보았다.

  " 누가 부자(父子) 아니랄까봐 그렇게 똑같이 하고 있는거에요. 대체."
  " 무슨일로 이곳에...."

화란은 훼이의 말을 막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 갑작스레 찾아오긴 했지만 정말  이런 모습으로 있을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당장 일어나서  산책이라도 하세요. 당신과  비는 가뜩이나 얼굴색도
흰데 지금은 마치 송장같아요. 어서."

쏘아대듯이 빠르게 말을 뱉어내는 화란의 손에 이끌려 훼이는 정원으로 나섰
다. 화란은 훼이를 정원으로 몰아내고는 비의 방문을 벌컥  열어 젖히고 끌어
내다시피 해서 비를 데리고 나왔다.
여전히 굳어진 표정을 하고 있는 비를  보자 훼이는 지금까지의 자신이 한심
하게 느껴졌다. 그때문인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터져 나왔다.

얼마만에 보는 정원인지는 모르지만  시간이 흐른 것은 분명했다.  막 파릇한
새싹이 나무가지를 뒤덮고 있던 정원은 어느새 푸른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풍성한 푸른빛을 머금고 햇살아래 피어난 초목들은 어제와는 또 다른 오늘을
맞이하여 피어나 있는 것이었다.

  " 비야....."

훼이는 나직한 목소리로 비를 불렀다. 그러자 비는 힘없는 시선을 훼이에게로
향했다.

  " .....미안하구나..."

무엇을 위한 사과인지는 훼이 자신도 잘 알 수 없었다.
그저 초췌한 슬픔을 담은 비의 얼굴을 마주  대하자 그 말밖에는 할 수가 없
었다.

  " 남은 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거에요.
그 이상의 것은 없다고 전 생각하니까.  자, 그렇게 서있지만 말고 정원을 걸
어 다니는 건 어때요? 이렇게나 아름답게 가꿔진 정원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
는건가요?"

가만히 자리에 서 있던 훼이와 비는 말 잘듣는 어린아이 처럼 천천히 정원을
거닐었다.
묵묵히 입을 다문채 걸음을 옮기는 두  부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화란은 고
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렇게 그들을 바라보던 화란은 몸을 돌려 별궁 건물 안
으로 들어섰다.


  " .........아버지."

얼마만에 들어보는 비의 목소리인지 훼이는 알 수가 없었다.  아주 오래된 것
같기도 하고 바로 어제의 일인 것 같기도 했다.

  " 정말 그럴까요........ 남겨진 자는 떠나간 자를 위해서 남아있는 자신의  삶
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사실 말이에요......"

훼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멀찌감치에서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는 병사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흑룡왕의 명을 받아 감시자로 붙여진 그들. 정원을 거닐고 있
는 훼이와 비를 향한 그들의 시선에 무엇이 담겨있는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 너보다 오랜 시간을 살아오긴 했지만 나역시 무엇이 정해진 답이라고 말
할 수는 없구나....... 그저 우리에겐 앞으로 많은 시간들이 남아있다는 것 이외
에는."

비 역시 훼이가 보고있는 병사들을 응시했다.

  " 그렇겠죠.....시간은 언제고 변함없이 흘러가니까. 그리고........과거는 되돌릴
수 없는 것이니까."

훼이는 대답없이 그저 시선을 한곳으로 고정시키고 있었다.

  " 아버지. 제게 그분의 검을 주시겠어요?"
  " 검을.....말이냐?"

비와 훼이의 검은 눈이 서로 마주쳤다. 진실함과 의지가 담긴 비의 눈빛에 담
긴 뜻을 훼이는 읽을 수 있었다.

  " 그래.... 그러면 한번 천상계에 다녀와야 겠구나. 연화에게서 그 검을 건네
받아야겠지."
  " 그분과 함께 검을 겨루던 시간들을 기억하고 싶어요."
  " 그래....."

초여름을 맞이하고 있는 별궁  정원의 나무들 사이를  훼이와 비는 계속해서
걸었다.
그리고 겨울을 지낸 나무들이 새싹을 피우고 푸르름으로 뒤덮히는 것처럼 그
들을 둘러싼 시간은 멈춤없이 움직였다.




===========================================================================
음...숟가락 언니의 감상으로 저의 소설 형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을 해 봤습
니다. 저는 나름대로 이원적 전개를 하고 싶었는데 역시  실력이 딸리다 보니
잘 안되는군요. 그러니까 이원적 전개란 현재의 이야기와 과거의 이야기가 동
시에 진행되는 것입니다. 일부는 회상의 형식을 빌어 쓴  것도 있지만 대부분
은 또 다른 하나의 전개로 쓰고 싶었거든요. (우..역시 실력이 딸려..--)
그리고 숟가락 언니의 감상.....너무 어려웠어요....감상이 글케 어려운 내용이라
니...^^ (제가 이해력 불능인가봐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쓸께요.



번 호 : 718 / 3334 등록일 : 1999년 07월 06일 00:04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45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6장 三.



                           흑룡의 숲


  제 6장  환영(幻影)


  三.



  " 제 계승식 날짜가 정해졌어요."

화란은 훼이와 비와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말을 꺼냈다.
훼이와 비는 동시에 눈을 돌려 그녀의 얼굴을 응시했다.

  " 아....그렇군요.."
  " 뭐에요. 그 표정은?

화란은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두 부자를 바라보며 가볍게 웃었다.

  " 앞으로 꼭 한달후 군요."
  " 계승식이 코 앞인데 이렇게 다른 곳에 머물고 있어도 되는건가요?"

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 물론 안돼지. 금방 돌아가야 해."
  " 그러면..."
  " 멀리서도 훼이 당신과  비가 일으킨 소란에 대해서  듣고 있었죠. 그리고
둘의 성격상 어떻게 하고 있는지 뻔했기 때문에  이렇게 온거에요. 그리고 하
고 싶은 말도 있었고."

훼이는 덧붙인 그녀의 말에 음식을 먹던 손을 내려놓았다.

  " 비와 함께 홍룡궁으로 가지 않을래요. 훼이?"

화란의 말을 듣고 비 역시 굳어진 것처럼 움직임을 멈췄다.

  " 남자 둘이서 언제까지 이렇게 틀어박혀 살 생각이에요?  용족은 활동적인
걸 가장 큰 장점으로 가지는 종족인데..."
  " 말은 고맙지만..."

화란은 싱글 거리는 얼굴로 훼이의 말을 끊었다.

  " 아무도 제 결정에 불만을 표할 수 없어요. 그러니 걱정 마세요. 그리고 지
금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당신도 비도 절 받아들일 날이 올거라고 믿으니까요.
전 자신있어요."

어떻게 그렇게 자신할 수 있을까.
화란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는 자기 자신의 생각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인간의 여인과 사랑을 하고 그 여인에게서 아이를  얻은 훼이를. 그리고 긍지
높은 용족으로서 받아들이기 힘든 인간의 피가 섞인 아이를 그녀는 진심으로
자신의 가족으로 만들기를 원하는 것이었다.

비는 자신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진 것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숙였다.
화란과 같이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 비. 넌 어떻게 생각하지?"

고개를 숙이고 있는 비에게 화란이 물어왔다.
비는 한동안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아버지 훼이와
화란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 전.......아버지가 하시는 결정에 따르겠어요. 제가 이곳에 있을 수 있는  것
도 아버지 덕분이니까요."

훼이는 물끄러미 비를 바라보았다. 화연이 그랬듯이....  그리고 비영이 그랬듯
이.
비의 몸속에 흐르는 그 피는 훼이에게 또 다시 배려라는 형태의 사랑을 보여
주고 있었다.

  " 지금의 제가 바라는건요. 훼이. 예전의  당신이 가지고 있던 밝음을 보는
거에요. 후계자 시절의 당신은 모든 일에 대해 의욕이 넘칠 정도였잖아요. 전
당신의 그런 모습이 좋았던거에요.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당신이  싫은 건 아
니지만."

화란은 식탁위에 놓여있던 물이  담긴 도자기 잔을  두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덧붙였다.

  " 이제 넓은 곳으로 나와요. 아직 당신과 비에게  남은 무수한 시간들을 생
각해봐요. 함께 갈 수 있죠......?"

화란의 저 자신에 찬 당당한 표정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용족중에서도 이단(異端)이라고 할 수 있는 훼이에게 저토록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화란을 보며 훼이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결코 화연 이외의 여인을 마음에 담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자신과 비를 향해
보여준 화란의 배려를 가볍게 대하고 싶지는 않았다.

여인이란 종족을 초월해서 강인함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훼이는 처음으로 깨
달았다.
귀족에서 몰락해버린 인간의 여인 화연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의미있게
받아들이며 살아갔다. 훼이로서는 평생을 가도 깨달을 수 없었을지도 모를 누
군가에 대한 진실한 사랑을 화연은 3년이라는 짧은 시간을 통해. 그리고 그녀
가 남기고 떠난 비를 통해 훼이에게 확인시켜주었다. 외관의 아름다움이 전부
가 아니라는 것을 훼이는 화연과의  짧았던 그렇지만 앞으로도 계속될 3년의
시간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훼이를 밝은 곳으로. 보다 넓은 곳으로 끌어내려는 화란 역시 훼
이에게 어떠한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하지만 결코  자신은 그녀를 받아들
이지는 못할 것이다. 아직도 훼이의 마음 속 깊은 곳에는 화연이 남겼던 편지
의 글귀들이 지워지지 않을 각인처럼 새겨져 있었기 때문에.

  "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군요..... 화란."

화란의 얼굴에는 환하게 핀 꽃처럼 밝고 아름다운 미소가 떠올랐다.


                 *            *            *            *


파이론은 집무실 책상에 가득 쌓인 문서들을 검토하느라 분주하게 손과 눈을
놀리고 있었다. 파이론의 옆에 나란히 앉은 챠렌 역시 문서를  정리하고 분류
하느라 부지런히 움직였다.

  " 조금 이상하지 않아요?"

보통때처럼 간소한 궁장차림을 하고 자리에 앉아 일을 처리하던 챠렌이 목소
리에 의아함을 담은 채 물었다.

  " 뭐가 말이지?"
  " 요즘들어 수행을 떠난 어린 일족들의 귀환이  늦어지고 있는 것 같은데...
아닌가요?"
  " 아....."

챠렌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았다. 매일같이  쏟아져 들어오는 무수한
문서들 틈에는 수행을 나간 일족들에 관한 것들도 있었다.  그들이 어디로 수
행을 떠났으며 얼마간 수행을 할 것인지. 그리고 돌아온  후에도 수행의 성과
를 기록하여 왕에게 보내도록 되어 있었다.

  " 이번에 하계로 떠난 일족들은 몇 명이었지?"
  " 성년식 이전의 일족이 셋. 성년을 갓  치른 일족이 하나. 그리고 임무 때
문에 내려간 일족이 다섯이에요.  그중에 예정보다 귀환이 늦어지고  있는 건
어린 일족들의 경우이고."
  " 흐음... 의심이 가는군. 지난번의 회합때 나왔던 말도 있고 해서."

챠렌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 그렇죠? 저도 의심이  가요. 끈질긴 그들이 그렇게  흐지부지하게 물러날
리가 없어요."
  " 맞는 말이야. 아무래도 조사를 위해 몇 명정도를 보내야겠군."
  " 새로 몇 명을 보내는 것  보다는 지난번에 임무 때문에 내려간  이들에게
연락을 취하는 것이 좋겠군요."

챠렌의 말에 동감하며 파이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럼 말이 나온김에 당장 하지."

  [ 천개(天開) 경(鏡) - 이공간(異空間) 연결 주문 - ]

가볍게 울려퍼진 파이론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눈 앞의 허
공에 일그러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곧 백색의  기류에 휩싸여
작은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팔 하나 정도의  높이를 가진 투명한 거울로 변했
다. 거울 가장자리에는 은은한 안개와 같은 희뿌연 기운이 서려 있었다.

  - 전하. 인사올립니다.

투명하던 거울에 어느새 하계의 풍경과 누군가의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 키가
크고 마른 체구를 가진 젊어보이는 남자였다. 그는 파오가  아닌 경장 차림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문인지 특별히 인간들과 다르게 보이지 않았다.

  " 원류(洹流) 쪽의 일은 대충 끝마쳤나?"

  - 네. 오늘 안으로 끝날 것 같습니다.

  " 그렇다면 잘 됐군. 특별한  임무를 맡기려고 하는데 그쪽의  일이 끝나는
대로 다른 일족과 협력해서 조사해주길 바라네."

  - 시급을 요하는 일입니까?

  " 명계쪽의 동향을 감시하는 일이네. 그리고 어린  일족들의 귀환이 늦어지
고 있으니 혹시라도 명계에서 손을 대지는 않았나 살펴봐주게."

  - 네. 전하. 그리고 제가  있는 사막에서 벗어난 지역에  다른 일족 두명이
일을 하고 있으니 함께 조사하도록 하겠습니다.

  " 그렇게 하도록 하게."

거울에 비친 경장 차림의 남자는 정중하게 파이론에게 인사를 건넸다.

  [ 해제(解制) ]

파이론의 목소리가 울리자 눈 앞에 떠올라 있던 거울은 흩어지듯이 사라졌다.

  " 그러면 당분간 지켜보도록 하지."
  " 그래요. 이제 좀 쉴까요. 아까부터 계속 일만했으니까."

파이론은 고개를 끄덕이며 인장을 내려놓았다.

  " 그럼, 제가 차를 내올께요."

챠렌은 가볍게 손을 털며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그리고 문을 닫기 전
에 파이론에게 미소를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
음...흑룡의 숲의 시간 전개에 관해서 너무 갑작스럽다는 분들이 많아서요.
설명을 드리려 합니다. (사실은 저도 머리아파요..^^)
같은 글 내에서 시간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경우에는 *표 4개로 구분을
했구요.^^ 같은 시간 배경내에서 장면이 바뀌는 경우에는 *표 3개입니다.
좀 우습게 구분을 했지만요. 제가 생각하는 전개  방식이 회상이 아니라 그게
액자식 구성인가요? 암튼 그런식으로 두  개의 줄기가 동시에 진행되는 방식
으로 쓰려고 하는 거랍니다.  현실의 이야기와 과거의 이야기가  섞여 있지만
두 이야기. 현실과 과거역시 마구잡이의 시간전개는 아닙니다. 현실은 현실대
로 과거는 과거대로 순차적으로 진행되는데 그  두 개의 시간대가 섞여 있어
서 무지하게 헷갈리는 겁니다. 저도 잘 알고 있는데 그걸 이해하기 쉽게 쓰지
못하는 건 제 실력이 딸리기 때문이지요. ^^ 죄송합니다.
그리고 설정을 가르쳐 달라는 분도 계셔서 조금씩 여기에다 붙일께요.

< 5대 용족 설정 - 힘 >

용족의 설정은 음양오행에 근거해서 설정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약간 변형된
음양 5행이지요.
木  봄    청룡  동쪽  물
火  여름  홍룡  남쪽  불
土  土用  황룡  중앙  흙(대지와 관련된 모든 것)
金  가을  백룡  서쪽  바람
水  겨울  흑룡  북쪽  날씨 조정(물의 힘을  쓰는 것은 흑룡의 속성에 雨가
관련되어 있기 때문)
그리구요. 제 소설의 용족들은 직접 용으로 변신하지는 않습니다. ^^ 그러니까
약간 색다르게 느끼셨을 거에요. 힘의 형체가 용의  형상을 띄고 있을 뿐이거
든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번 호 : 734 / 3334 등록일 : 1999년 07월 07일 02:49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28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7장 一.



                           흑룡의 숲


  제 7장  역린(逆鱗)


                    
                         둥글게 퍼져나가는
                         파문속에
                         잊혀지지 않을 기억이
                         스치고 지나간다.
                         홀로남은 자에게 주는
                         마지막 위안 처럼.


  一.



한 일족의 왕이 되기 위한 계승식은 실로 성대하고도 질서있게 진행되었다.
모든 홍룡족들은 화천궁(火天宮)에 모여 새로운 왕의 탄생을 숨죽여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흑룡족인 훼이와 비도 있었다.
물론 계승식에 참석한 것은 홍룡족들만은 아니었다. 새로운 용왕의 탄생을 축
하하기 위해 다른 용족의 왕족들도 함께 자리하고  있었지만 분명 훼이와 비
는 그들에게 환영받을 만한 존재는 아니었다.
모두들 아무런 말도 하지않았지만 훼이와 비를 보는 다른이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 지금부터 29대 홍룡왕의 위를 계승하는 식을 거행하도록 하겠다."

성격이 상당히 거칠어 보이는 현 홍룡왕이 큰 소리로 입을 열자 주위에 은은
한 음악이 울려퍼졌다. 비파 소리 같기도 하고  가느다란 적(笛) 소리 같기도
한 아련한 음률이 주위를 가득 채워갔다.

  " 잘 봐둬라. 비. 이것이 용왕의 계승식이다."

비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광경을 두 눈에 가득
담았다.

화천궁의 넓은 정원에 마련된 계승식을 위한 장소는 자단목으로 세워진 높은
단이었다. 수십명이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넓은 단 위에는 온통 홍룡을 상징
하는 붉은색의 천들로 뒤덮여 있었다. 그 위에 선 것은 다음 홍룡왕이  될 화
란과 현 홍룡왕.  홍룡왕의 가족들과 장로들.  그리고 축하를 위해 함께 자리
한 다른 용왕족들이었다. 다른 용왕족들은 용왕과  비, 그리고 후계자들로 용
족의 정식 복장인 파오를 갖추어 입고 단 위에 나란히 서 있었다.
단 주위에는 모든 홍룡일족들이 둘러선 채 수많은 이들이 모여있다고는 생각
하기 힘들정도로 조용하고 진지한 자세로 의식을 지켜보고 있었다.

홍룡왕의 입에서는 의미를 알기가 힘든 어떤 말들이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있
었다. 그리고 홍룡왕의 앞에 가지런히 두 손을 모으고 서있는  화란은 어느때
보다 아름답고 위엄있어 보였다. 몸을 감싸고 있는 화려한 붉은  색의 파오와
틀어올린 붉은 머리카락이 멀리서도 시선을 끌어당겼다.

  " 저건 무슨 말이에요. 아버지?"

비는 작은 소리로 훼이에게 물었다.

  " 광명진언(光明眞言)이다. 힘을 계승하기위한 중요한 의미가 담겨있지."
  " 힘을 계승하고나면 전대 홍룡왕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 힘을 계승했다고 해서 완전히 모든 힘을 잃는 것은 아니다. 성년을 갓 치
룬 상태 정도의 힘은 남는거지."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식은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었다.
어느새 광명진언을 외우고 있던 홍룡왕 대신 청룡왕의 후계자와 황룡왕의 후
계자가 나란히 앞으로 나서 노래를 시작했다.
성년식때도 그렇지만 용족에게 있어서 힘을 깨우기 위한 의식에 노래는 상당
히 큰 작용을 한다. 노래에는 부르는 자의 힘이 담겨있기 때문에 무척이나 중
요하게 여겨졌다.

함께 단 위에서 의식을 지켜봐 달라던 화란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훼이와 비
는 홍룡 일족들에게서도 한참 떨어진 거리에서 계승식을 지켜보았다.

  " 할아버님도..........오셨네요..."

비는 조금 쓸쓸한 빛이 담긴 눈으로 단위에 선 흑룡왕을 응시하며 말을 꺼냈
다.
언제나 비가 할아버지를 바라볼 수 있는 거리는 이정도 인 것 같았다. 처음에
도 그저 먼 발치에서. 그리고 별궁에서는 흑룡궁 본궁을 바라보며, 지금도 이
렇게 얼마간의 거리를 두고 아버지의 아버지. 자신의 몸 속에도  흐르고 있을
진한 혈육의 피를 가진 할아버지를 비는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훼이 역시 자신의 아버지 흑룡왕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곁에
서 있는 얼마전 후계자가 된 자신의 나이어린 동생의 모습도 들어왔다.
훼이만의 작은 욕심일지 몰랐지만 훼이는  후계자로서가 아니더라도 비를 저
옆에 세우고 싶었다. 그저 작은 바램.  흑룡왕에게서 진정한 흑룡족으로 인정
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랬다.
비에게 자신이 어린시절 지내왔던 흑룡궁의 곳곳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손자의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게 하고  싶었다. 하지
만 지금은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흑룡왕은 더 이상 비를 받아들일 생각을 품고 있지 않았고, 훼이 역시 흑룡궁
으로 돌아갈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다. 지금의 훼이가 바라는 것은 그저 아들
의 곁에서 함께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 뿐이었다.


식이 중반에 접어들었을 무렵  화란의 몸에서는 붉은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비는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바로 용족 본연의 순
수한 마력의 기운. 그것도 차기 왕이될 자가 가진 강력한 마력.

그리고 잠시 후. 조용하던 화천궁의 정원에 감탄의 탄성이 울려퍼졌다.
하늘위에 떠오른 불타오르는 거대한 화룡의  형상은 저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할 만큼 멋진 것이었다. 보통 주문을 사용해서 불러내는  화룡과는 그 모양과
크기부터 다른 장엄하기 까지한 거대한 용은  바로 현 홍룡왕의 힘의 결정체
였다.

  " 저게 바로 왕에게서 전해지는 힘의 계승이다."

훼이의 말을 귀에 담으며 비는 화란의  몸을 감싸안는 거대한 화룡의 모습을
보았다.


                        *            *            *


  " 뭐하세요?"

훼이와 비가 머물고 있는 화천궁의 한 사실(私室) 안으로 들어서며 화란은 경
쾌한 목소리로 물었다.

  " 홍룡왕님... 이렇게 막 나오셔도 돼요?"
  " 뭐야. 비.... 그냥 보통때처럼 불러."

화란은 조금 서운한 듯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 앉으시죠."

훼이는 화란에게 자리를 권했다.
훼이와 비는 함께 차를 마시던 중이었다. 화란이 자리에 앉자 비가 찻잔 하나
를 더 꺼내어 화란 몫의 차를 따랐다. 화란의 앞에  차가 놓이자 훼이는 그녀
에게 시선을 던지며 물었다.

  " 무슨일로..?"
  " 이번 수행에 함께 가자는 말을 하려구요."
  " 수행이요?"

화란은 고개를 끄덕이며 비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 왕이 된 후에도 수행은 계속 해야하지. 힘이 무디어지면 안돼니까. 그리고
하계를 돌아볼 필요도 있고 말이야."
  " 그렇군요..."
  " 짧지는 않은 수행이 될거야. 하계의 곳곳을 돌아보게 될 테니까."
  " 얼마나 걸리는데요...?"
  " 음...하계의 시간으로 세달 정도일까..."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탁자위에 조용히 내려놓으며  훼이는 비에게 시선을
던졌다.

  " 함께 가고 싶으냐. 비?"

훼이의 물음에 비는 조금 놀란듯한 표정을 지었다.

  " 제가 결정하라구요?"
  " 물론이다. 난 이제 네가 하고 싶은 걸 하게 해주고 싶으니까. 자, 네가 원
하는 걸 말해라."

비는 잠시 망설이다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 네... 가고 싶어요. 홍룡족과 함께하는 수행은 처음이고... 아버지와 함께가
는 수행도 오랜만이니까요."
  " 그래. 좋다. 나도 오랜만에 네 실력을 알아보고 싶고 말이다."
  " 다행이네요. 둘다 함께한다고 해주다니."

화란은 싱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그럼, 전 집무실로 가봐야 하니까 이만 일어나겠어요."
  " 네... 그럼 안녕히.."
  " 오늘 말씀 고마워요." 

둘의 인사에 화사한 미소로 답하고 나서  화란은 즐거운 듯이 가벼운 발걸음
으로 돌아서 방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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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설 못 올리는 줄 알았네...(오타가 있을 것 같지만 제눈엔 안보이네요)
우와....지금이 몇시인가...-- 이제 학원은 다 갔군...
오늘 스타워즈를 봤어요....담주엔 미이라 보러가야지.

오늘의 간단한 설정 탐색은 천계의 궁에 관한 것.
궁은 어제 올린 자료와 마찬가지로 각 용족이 다스리는 방향에 있습니다.
그리고 궁의 이름은 두가지로 불리죠.
홍룡궁(화천궁), 백룡궁(풍천궁), 황룡궁(지천궁), 청룡궁(수천궁),  흑룡궁(宇천
궁) 이렇습니다. 힘의 속성에 따른 이름이구요. 천계의 크기는 지상과 거의 같
다고 보시면 됩니다. 다른 계(界)들도 마찬가지.
그리고 용족의 평균수명은 1000년. 천상인들은 500-600년, 영수족들은 1000년
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번 호 : 746 / 3334 등록일 : 1999년 07월 08일 01:25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30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7장 二.



                           흑룡의 숲


  제 7장  역린(逆鱗)


                    
  二.


조금전부터 온몸에 엄습하는 불길한 느낌을 애써 부인하며 백룡족의 소년 류
는 온몸을 긴장시켰다. 여럿이 함께 몰려 다니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 때문에
평소에도 혼자 수행을 다니던 류였지만, 오늘 만큼은 자신의  그런 성격이 원
망스러웠다. 아직 성년식을 치루지 않은 어린 용족인 류였지만 그래도 수행만
큼은 다른 동년배의 용족들과는 확연한 차이가  날 정도로 많이 해온 자신이
었다.

이렇게 몸이 굳어질 정도의 힘을 느낀 것은 성년을 맞이한 자신의 형과 힘을
겨루던 때 이외에는 처음이었다. 사실 그때는 단순한 대련의 차원이었기 때문
에 이렇게 온몸이 신경이 곤두설 정도의 섬뜩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 자신을 긴장시키고 있는 그 기운은 분명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이곳 하
게에서 용족인 자신에게 위협을 가할만한 존재는 없다. 그렇다면  분명 이 느
낌은 하계에 존재하는 자가 아닌 것이 분명했다.

사라락.
조금 거센 바람이 불어와 나뭇가지를 흔들며 지나갔다. 그리고 류가 바람소리
에 잠시 귀를 기울인 그  순간. 온몸의 감각을 마비시키는 강력한  힘이 류의
몸을 감쌌다.
그것은 실로 한순간의 일이었다.

  [ 어린 용족들은 너무나 약하군..... 최강  이라고 자만하는 용족이라도 어린
아이는 별 수 없다는 건가.......? ]

명백한 비웃음이 담긴 그 어조에 류는  두눈에 힘을 주고 상대방을 노려보았
다. 손끝하나 움직일 수 없게 만드는 그 강력한 힘은 인정하기 싫었지만 자신
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났다.

류가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오직 두 눈뿐. 천천히 자신을 향해 손을 뻗는 창백
한 인상의 남자를 바라보며 류는 눈을 부릅떴다.

  [ 가장 오래된 자를 없애기 위해 도움이 되는 것을 영광으로 여겨라..... ]

낮고 차갑게 울리는 남자의 목소리와 함께  류의 미간에 섬뜩한 기운이 맞닿
았다.


                *            *            *            *


  " 홍룡왕 전하... 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겁니까."
  " 내 결정입니다. 보좌관."

화란은 단정하게 자세를 가다듬고 앉아서 보좌관을 바라보았다.

  " 하지만....그 둘은 용족의 피를 더럽힌 자입니다."

중년에 접어든 듯한 외모를  보니 홍룡왕 화란의 보좌관은  700살을 넘긴 듯
했다. 아직 새 보좌관을 뽑지 않았기 때문에 전대  홍룡왕의 보좌관이었던 그
가 계속해서 그 일을 맡고 있는 것이었다.

  " 피를 더럽혔다라..... 그건 누가 정한 기준이죠?"

화란은 눈꼬리를 치켜 올리며 되물었다.

  " 하지만 전하..... 용족의 피는  용족의 피와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용족들이 있어온 먼  옛날부터 당연시 되어오던 것입니다.  인간의 피는
우리에겐 약함을 줄 뿐입니다."
  "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 전하. 그들과 함께 다니시는 것은 전하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결과를 낳
을 뿐입니다. 왜 모르십니까.  지금도 그들을 궁에 머물게  하시는 것에 대해
불만을 품은 자들이 꽤 있습니다."
  " 그래요?"

화란의 목소리는 조금 날카롭게 변해있었다.

  " 불만이 있는 자는 직접 내게 와서 말하라고 하세요. 난 내 생각을 청회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 전하... 전하께서는 이제 한 일족의 왕이라는  사실을 항상 숙지하셔야 합
니다. 왕이란 것은 항상 일족들을 선두에서 이끄는 자입니다."

화란은 냉정하게 굳어진 붉은 눈동자로 보좌관을 빤히 바라보았다.

  " 전하....."
  " 나가주세요. 보좌관. 지금은 당신과 말이 통할 것 같지 않군요."

화란의 축객령에 막 다른 말을 꺼내려던  보좌관은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
다.

  " 심려를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홍룡왕 전하. 그러면 저는 이만 나가보겠
습니다."

화란은 고개를 숙였다가 들어올리는 보좌관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
였다.

막 닫혀진 집무실의 문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화란은 피식하고 웃었다.

용족의 피를 더럽힌 자라.......
정말 마음에 안들어. 우리와 같이 영겁의 시간의 귀퉁이를  걸어가는 그들 인
간들이 그렇게 하찮은 존재밖에 되지 않는다는 건가.....
그리고 훼이의 마음을 빼앗은....아니, 지금도 차지하고 있는 그 여인.
화연이라는 그 여인이 만약 인간이 아니었다면 훼이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
겠지....  지금의 그는 오직 그녀만을 생각하고 있으니까....
이해는 되지 않지만 느낄 수는 있어. 인간의 무엇이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지.

  " 하지만......"

화란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내뱉었다.

  " 지나간 기억은 언젠가는 잊혀지기 마련이니까...."

화란은 자신의 두손을 맞잡아 포갠채 힘을 주었다.

그녀가 훼이를 처음 본 것은 훼이가 막 흑룡왕의 후계자가 되었던 때였다. 그
때의 그녀는 성년식을 1년 앞둔 때였고  훼이는 이미 300살을 바라보는 나이
였다.
그때의 화란은 그저 훼이에게 막연한 호감을 느꼈을 뿐이었다. 그녀가 훼이에
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인간의 여인과 사랑에 빠져 아들을 얻어서 돌아온
그의 소식을 접하고 난 후였다.
호기심 반으로 다가섰던 그때 화란은 자신의 지위를 버리면서까지 인간의 피
를 이은 자신의 혈육과 그 여인을 선택한 훼이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화란이 가지고 있던 상식의 틀을 깬 행동이었다.
용족으로서의 자부심과 한 일족의 후계자라는  자리를 훼이는 자신의 신념으
로 맞바꾼 것이었다.


  " 전하. 훼이님께서 뵙기를 청하고 계십니다."

막 지나간 기억을 떠올리고 있던 화란은  시비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대
답했다.

  " 들어오시게 해라."

화란의 대답이 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집무실의 문이 열리며 훼이가 들어
섰다. 언제나 처럼 무늬없는 깔끔한 검은색의 파오를 걸친  훼이는 가볍게 고
개를 숙여 화란에게 인사를 건넸다.

  " 무슨일로 먼저 절 찾으셨나요. 기쁘게 받아들여도 될 일인가요?"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떠올리며 훼이는 입을 열었다.

  " 하계에 내려가면 당신과 꼭 같이 갔으면 하는 곳이 있소."
  " 함께 갔으면 하는 곳이요....? 어디죠?"

화란은 약간의 기대를 품고 물었다.

  " 당신에게 화연을 소개해주고 싶어서....."

훼이를 바라보며 화란이 할 수 있는 것은 작게 한숨을 내쉬는 것이었다.


화천궁의 입구에 선 화란과 훼이, 비. 그리고 두명의 청년을 앞에두고 보좌관
과 장로들은 조금 가라앉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 수행을 마치시고 돌아오실 날을 기다겠습니다. 홍룡왕 전하."
  " 내가 없는 동안 일을 맡기겠습니다."

보좌관은 고개를 들어올린 후 훼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 훼이님. 홍룡왕께서 아직 미숙한 점이 많으시니  옆에서 도와주시기 바랍
니다."

무척이나 정중하게 말을 건네는 보좌관을 보며  화란은 조금 놀란 듯한 표정
을 떠올렸다.

  " 명심 하겠습니다."

훼이 역시 정중하게 답했다.

  " 그럼 이만 길을 열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훼이는 손을 가볍게 휘둘러 공간을 열었다.

29대 홍룡왕 화란의 수행에  함께하는 네명은 차례로 공간  안으로 들어섰다.
여름의 용이자 불꽃의 용인 홍룡일족의 새  왕인 화란의 수행은 보통의 왕들
의 수행과는 달리 무척 적은 인원으로 움직였다.




==========================================================================
우웃...졸려....잠자고 싶어...잠....
음... 오늘은 어떤 설정에 대해서 말해야 할까요...
아...이 소설에 나온 이름과 지명에 대해서 잠깐 말씀드리죠. 등장인물의 이름은
중국식으로 짓기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많이 했구요. 하계의 지명은 중국의 신
화 서적에 나오는 지명들을 활용 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작은 소품들...
예를들어 옷이나 차등등은 중국 문화 서적에서 참고 했구요. 음양오행에 관한
것들은 창룡전 가이드북이랑 백과사전 그리고  몇몇의 참고 서적을 이용했습
니다. 그리고 동물이나 풀이름  같은 것도 신화서적과 예전에  아버지와 함께
산에 오르내리면서 배웠던 풀들을 활용 했습니다. ^^
음...그리고 훼이의 나이는요... 나중에 본문에서 나올겁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시간 되세요.

번 호 : 760 / 3334 등록일 : 1999년 07월 09일 01:24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14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7장 三.



                           흑룡의 숲


  제 7장  역린(逆鱗)


                    
  三.


막 가을에 접어든 하계의 숲들은 푸른색의 잎 대신 붉고 노란색의 잎들로 자
신을 치장하고 가을을 맞이했다.  군데군데 솟아나 있는 푸른  잎의 침엽수와
더불어 숲의 빛깔은 화려하게 물들어 있었다.

하계에서도 가장 커다란 대지를 가진  동방의 대륙에는 고신국이라는 나라가
자리하고 있었는데 수행을 위해 내려온 화란  일행이 머물고 있는 곳은 고신
국의 북쪽에 자리한 조산(肇山) 이었다.
그곳은 험한 지형은 아니었지만 산 자체가  워낙 높아서 웬만한 체력을 가지
지 않고서는 오르기 힘든 곳이었다.
평소에도 정상으로 향하는 인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드문 곳이었
지만 이틀전부터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는  노을보다도 진한 붉은 빛 때문
에 인간들은 조산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고 있었다.

  " 홍룡족의 힘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건 처음이에요."

화란과 힘을 겨루고 있는 두명의 젊은  홍룡족과 어느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관망하듯이 그들을 바라보며 비가 말했다. 그 목소리에 배어  있는 엷은 감탄
을 읽으며 훼이는 대답했다.

  " 우리가 가진 힘과는 상반된 성질을 가졌기에 더욱 생소하고 신비하게 느
껴질 것이다."
  " 정말 그래요. 계승식때 본 화룡과는 많이 다른 것 같기도 하구요."

화란이 내뿜는 가히 압도적이기 까지한 힘을 멀찌감치에서 지켜보며 두 부자
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두명의 홍룡족 청
년이 힘이 부쳐 숨을 헐떡이고 있자 화란은 손을 흔들며 훼이와 비를 불렀다.

  " 나와 힘을 겨뤄보지 않겠어요?"

화란은 둘 모두에게 물은  것이었지만 훼이는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화란은 비에게 물었다.

  " 비. 나와 한번 힘을 겨뤄보겠니?"

순간 고개를 돌려 훼이에게 허락을 구하려는  비에게 훼이는 비가 묻기도 전
에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지었다.

  " 나는 여기서 보고있을 테니 한번 네 실력을 발휘해 보거라."
  " 네. 아버지."

비는 힘차게 대답하고는 먼저 방어주문을 외쳤다.


하늘 끝에서부터 검푸른 물결이  퍼져나와 서서히 온  하늘을 자신의 빛으로
물들여 갔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난 것일까. 물끄러미 검은 색으로  뒤덮여 가는 하늘
과 그 검은 빛 사이로 촘촘히 솟아오른 별들을 바라보던 훼이는 바닥을 스치
는 가벼운 발소리를 들었다.
약하긴 하지만 경쾌한 울림을 담고 있는 비의 발소리가 아닌 것으로 보아 그
발소리의 주인공은 화란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훼이는 여전히  하늘에 시선을
둔 채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 비는 잠들었어요."

화란은 흰색의 길다란 끈으로  질끈 묶은 머리카락을  한 손으로 훑어내리며
말을 이었다.

  " 역시 당신 아들 답더군요.  제 힘을 어느 정도라지만  막아내고 반격까지
할 정도라니...... 하지만 마지막엔 약하게  힘을 보냈을 뿐인데 쓰러져 버려서
놀랐어요."
  " 비는 체력이 약합니다."

밤 하늘 아래에 자리한 훼이는 그 속에 녹아들길 바라는 듯이 미세한 움직임
조차 보이지 않았다.

  " 그것도 인간의 피 때문이겠죠.....?"

그렇게 말하며 화란은 훼이가 보고 있을 하늘의 저편으로 시선을 돌렸다.

  " 용족들은 자존심이 너무나도 강한 것 같아요. 그건  우리가 가진 힘이 세
상의 질서와 관계되어 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단지 인간을 나약한 존재로
여기기 때문일까요..."
  " 글세..... 나는 그다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애초부터 우리와 그
들은 별개의 존재이니까..."

화란은 다시 훼이를 바라보았다. 훼이는  여전히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이제
완전히 깊게 잠겨든 밤의 장막 안에서 검은 파오에 감싸인 훼이의 모습은 눈
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두 눈에는 똑똑히 보였지만 화란은 훼이의
모습이 곧 어디론가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 난 그저 비가 내 곁에 함께 있어주어서  기쁠 뿐입니다. 비와....그녀의 가
족들은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으니까...."
  " 비는 착한 아이에요."

화란은 훼이의 말에 짧게 덧붙였다.

  " 내일 또 다른 곳으로 다니려면 지금 눈을 붙이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 괜찮아요. 지금은 별로 잠도 오지  않으니까. 그리고 며칠 자지 않는다고
해도 피곤하거나 하진 않으니까요."

훼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을 표시했다.

  " 내일은 비가 태어난 곳으로 가볼까해요. 안내해 주시겠죠?"

담담하게 이어진 화란의 말에 훼이는 그때  처음으로 시선을 돌려 화란을 응
시했다.

  " 무엇이 그토록이나 당신의 마음을 끌었는지 알고 싶어요. 하계는 그저 아
름다운 곳이라고만 생각해 왔었는데 내가 모르는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 같
아요."

잠시 화란의 눈만을 바라보던 훼이가 나지막하게 말을 꺼냈다.

  " 어쩌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이  짧은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
각이 들기도 합니다. 긴 시간은 결코 좋은 게 아니라는 걸 알 것 같군요."

훼이는 약간이지만 허무하게 느껴지는 미소를 지으며 몸을 돌렸다.


                *            *            *            *


  " 전하는?"
  " 비 전하와 함께 정원의 누각에 계십니다."

백룡왕 파이론의 명령을 받아 하계에서 명계의 움직임을 감시하는 임무를 맡
았던 312세의 젊은 용족은 막 자신이 알아낸 사실을 한시라도 빨리 백룡왕에
게 전하기 위해서 서둘러 정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전하. 우려하시던 일이 발생한 것 같습니다."

조급한 마음으로 거의 뛰다시피 하여 파이론의 앞에  선 청년은 인사를 하는
것도 잊은 채 말을 내뱉었다.
막 식사를 끝마치고 챠렌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고  있던 파이론은 고개를 돌
려 청년을 바라보았다.

  " 어떻게 되었는지 자세히 말해보게."
  " 네. 전하. 저를 비롯한 세명이 조사에 임했고 지금도 다른 두명은 하계에
남아서 명계에서 온 자로 짐작되는 자의 움직임을 뒤쫓고 있습니다."
  " 그래서 그 자의 움직임은?"
 
청년은 난감한 듯이 얼굴을 살짝 굳히며 말을 이었다.

  " 아무래도 우리 일족의 아이가 희생당한 듯 합니다. 아직  확인은 하지 못
했지만 소형산 근처에서 수행을 하던 성년전의 일족 하나가 행방불명입니다."
  " 흐음..... 사라진 것은 언제지?"

그렇게 질문을 던지며 파이론은 들고 있던 술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진중하
게 굳어진 표정으로 보아 무언가를 떠올리는 듯했다.

  " 하계 시간으로 하루가 지났습니다. 그곳에 있다면  마땅히 느껴져야할 마
력의 기운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걸 보아 위험한 상황에 처한 듯 합니다."

그리고 그때까지 둘의 대화를 귀기울여 듣고 있던  챠렌이 처음으로 입을 열
었다.

  " 제가 가죠."
  " 당신이 직접.....? 아직 그렇게 큰 일은 아닌 듯 한데..."

챠렌은 강경하게 고개를 저었다.

  " 일족의 생명이 걸린 일이에요. 백룡왕의 비로서  그리고 보좌관으로서 가
만히 두고 볼 일은 아니에요."

파이론은 가볍게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말린다고 해서 들을 당신이 아니지. 그럼 부탁하겠소."
  " 제가 직접 가는  것이니 만큼 확실하게 백룡족의  힘을 보여주고 오도록
하죠."

자신감에 가득찬 미소를 떠올리며 챠렌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누각의 아래로
걸음을 옮겼다.

  " 안내해 주겠나?"
  " 네. 비전하."

챠렌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파이론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면서 바로 공간
의 문을 열고 하계로 떠났다.



==============================================================
와.... 오늘 분으로 딱 30회입니다. 놀라워라... 30회다...30회. 아이 조아.. ^-^
훗...그리고 어제 올린 부분에 오타가 있더군요...오늘 봤다...--
이제 며칠 후면 매일연재의 기록이 깨질지도 몰라요. 왜냐하면 저희  만화 동
아리 편집이 다음주 거든요...  친구네 집에서 밤샘해야 하는데....비축분을  쓸
수 있으면 좋겠지만 매일 쓰는게 버릇이 돼서 미리 안 써지더라구요...
오늘은 설정 쓸 것이 없네요. 뭘 써야할지 모르겠어요.. 혹시 궁금한게 있으시
면 말씀해 주시길....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름엔 잠이 최고!!



번 호 : 784 / 3334 등록일 : 1999년 07월 10일 01:54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12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7장 四.



                           흑룡의 숲


  제 7장  역린(逆鱗)


                    
  四.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인간의 시간은 그토록이나 빠르게 흘러가는 것이었다.

비가 성년을 맞이하고도 얼마간의 세월이 흐른 후 였기에 하계는 벌써 몇 개
의 나라가 들어서고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망연함도 아무것도 아닌 그저  텅빈 시선으로 훼이는  화연이 살았던 그곳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그때의 흔적이라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그저 평평한 밭
으로 변해버린 그곳.
빽빽한 숲과 경사진 산길이 나 있던 예전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리고
한창 번성하고 있었던 마을의 모습도 온데간데 없었다. 그저 띄엄띄엄 늘어서
있는 몇채의 집들과 피어오르는 밥짓는 연기만이 예전과 같았다.


  " 보지 않아도 알 것 같군요....... 어떤 곳이었을지."

화란은 나지막하게 말을 꺼냈다.

  " .....그때도 전 잊었었죠..... 아마도 그것은 내가 용족이기 때문이겠지만  인
간들의 시간이란 그런 것이니까요."

화란은 훼이의 입가에 스쳐지나가는 쓸쓸함을 보았다.

화란은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평평한 밭길 사이를 걸었다. 이제 얼마후면 인
간의 손에 의해 거두어 들여질 푸른  빛깔의 채소들은 싱싱한 빛을 간직하고 
자라나 있었다.

  " 안녕하세요. 화연. 늦었지만 먼저  인사할께요. 난 화란이라고 해요. 29대
홍룡왕이죠. 훼이와는 당신이 그를 만나기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지만 그
의 마음을 먼저 가져간 것은 당신이군요."

마치 바로 앞에 화연을 대하고 있는 것처럼 화란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꺼냈
다.

  " 어쩌면 가장 오래 사는 것은 인간일 지  모르겠어요. 당신이 떠나고 나서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 이곳에는 당신을 기억하는  자들이 남아있잖아요.
당신이 남긴 핏줄도. 당신이 마음을 주었던 사람도 그리고  한번도 보진 못했
지만 저역시 당신을 기억하고 있어요. 마음 속에서 살아남는 다는 것..... 그런
거겠죠?"

화란은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에 담긴 것은 엷은 애닯음이었다.

  " 이제 돌아갈까요.... 그저 이곳이  어떤 곳이었는지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
니까..."

훼이는 뒤돌아서서 공간을 열었다.
아직 어슴푸레하게 옅은 안개로  뒤덮여 있는 작은  마을의 어귀에서 훼이가
찾은 것은 아직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흔들림 없는 화
연의 얼굴이었다.

  " 분명 이곳은 당신이 왔던  예전의 그곳과는 많이 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언제고 변하지 않을 그 풍경은 당신의 마음속에 있겠군요..... 돌아가요."

이곳까지 와서 무엇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일까.
잊혀진 자는 그저 잊혀진 자로 족하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자신이었
건만 모든 것이 그렇지는 않았다.
화연이라는 인간 여인이 가졌던 것이 무엇이었기에... 이토록  오랜 시간이 지
난 후에도 여전히 훼이의 마음을 점령하고 있는 것일까.
천계에서의 백년이라는 시간은 하계의 시간으로 따지자면 어마어마한 세월이
다. 천년의 세월을 보장받은 용족에게 있어서도 결코 짧은 않은 그 시간.
과연 지금도 마음속에 품고 있는 자신감이  흔들리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 있
을까.
훼이의 눈 속에 들어오는 것은 오직  화연이 살았던 천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후의 대지일 뿐인데..... 그 오래고 오랜 세월의 흐름을  뛰어넘어서 그의 눈에
는 예전의 그가 기억했던 모습이 펼쳐지고 있을 것이다.
각자가 품고 있는 사랑은 그토록이나 달랐다.


  " 무척 피곤했던 모양이군..."

막 햇살이 눈부시게 빛을 뿜어낼 무렵  훼이와 화란은 수행기간 동안 머무르
고 있는 얕은 평지에 다다랐다. 평소라면 벌써 일어나 있을 비가 아직도 잠에
빠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훼이와 화란이 나가기  전까지 곁에서 잠들
어 있던 홍룡족의 수행원 둘은 어딜 갔는지 그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 오늘은 일족들과 수행을 다녀오도록 하겠어요. 당신은 비와 함께 있는 편
이 좋겠죠?"

그렇게 말을 던지고 나서 화란은 몸을 돌려 일족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태양이 서쪽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화란과 홍룡족의
청년 두명은 돌아왔다.

  " 아직 깨어나지 않았나요?"

훼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무슨.......문제라도 생긴건가요?"
  " 아무래도 몸이 부담을 느끼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동안은 체력의 한계를
벗어날 정도로 힘을 쓴 적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겠죠."

잠시 말을 멈추고 나서 훼이는 잠든 비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었다.

  " 게다가 말은 안했지만 비는  흑룡족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 자신이
약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왔지요. 그래서 몸이 힘들어도 내색하려  하지 않는
겁니다."
  " 비는 나이에 비해 너무나도 깊은 눈을 가지고 있어요."

화란은 자신의 약함을 드러내기 싫어하는 비의 모습이 언제까지고 과거의 기
억속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 훼이의  고집스러움을 그대로 닮았다고 생각했
다.


              *            *            *            *


오늘따라 훼이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다른 곳에 마음을 두고 있는 것 처럼
느껴졌다. 항상 훼이의 정해진 것처럼 보이는 움직임과 별다른 표정을 떠올리
지 않는 얼굴을 대해 오던 유에린으로서는  그러한 훼이는 조금 의외로 여겨
졌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곳은 숲에서 한참 떨어진 흑룡궁  이었다. 그곳을 바라보
며 훼이가 무엇을 떠올리고  있을지는 짐작이 가지  않았지만 보통때와 달리
훼이의 얼굴에는 짙은 감정의 빛이 떠올라 있었다.

  " 왜 궁으로 돌아가지 않으세요. 이런 곳에서 혼자 지내기 보다는 동생이신
흑룡왕님과 함께 궁에 머무르는 편이 더 낳지 않나요?"

별다른 생각없이 꺼낸 유에린의  말에 훼이는 입가에 고소(苦笑)를  머금으며
유에린에게 말했다.

  " 내겐 저 곳으로 다시 돌아갈 자격 같은 건 없으니까. 그리고 비록 살아있
긴 하지만 지금의 내가 살아가는 시간들은 천상계의 수명부에도 기록되어 있
지 않지... 한마디로 난 존재하지 않는 자야..."

그 말을 듣고 유에린은 문득 일족의 어른들에게 들은 적이 있었던 훼이가 용
족의 수명을 뛰어넘게 된 까닭을 떠올렸다.
갓 성년을 넘긴 자신으로서는 천년이라는 세월보다도 더 길게 살아온 훼이가
무엇을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의 두 눈에 담긴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의 깊이와 굳어진 얼굴에서. 유에린은  그저 가라앉은 애
상을 보았을 뿐이었다.

  " 오늘은 그동안 익힌 것을 혼자서 연습해 보도록 할께요. 지켜보다가 틀리
는 곳이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훼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유에린이 걸음을 옮기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막 하늘 위로 네 마리의 수룡을 띄우며 진중하게 표정을 굳히는 유에린의 모
습에서는 자신이 바라는 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자의 꺾이지 않는 의지
가 담겨 있었다.

훼이는 언제나 유에린을 볼때마다 느끼고 있었다. 그에게 다시 과거를 떠올리
게 만드는 것은 바로 유에린이 가진  앞을 바라보는 강인한 눈동자 때문이라
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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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너무 졸리다....다행히 낼은 학원에 안가는 날이라서 늦잠을 조금 잘 수
있지만. 오늘은 글이 너무 짧네요. 졸려서 쓰는데 평소의 두배나 걸렸어요.
역시 사람은 잠을 자야 합니다.
자..그러면 안녕히 주무세요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시길...


번 호 : 804 / 3334 등록일 : 1999년 07월 11일 01:50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03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7장 五.



                           흑룡의 숲


  제 7장  역린(逆鱗)


                    
  五.



온 몸을 뒤덮는 나른한 기운.
비는 젖은 솜처럼 무거운  몸을 움직이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하게
비쳐 들어오는 햇살을 보니 정오가 된 듯했다.
분명 오랫동안 잠을 잔 것 같았다. 말로 내뱉진 않았지만 화란의 힘을 막아내
기 위해 비는 내색 없이 힘을 끌어내어 사용했다. 그때문인지 이른 저녁이 되
었을 무렵 자신도 모르게 깊은 잠에 빠져버린 것이다.

천계의 고요함과는 다른 정적.
하계에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내려왔었다. 비가 태어난 곳도 바
로 하계 였고, 그의 몸의 반을 타고 흐르는 피는  바로 하계에서 살아간 인간
의 것이었기에 비는 하계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다른 용족들이  하계에 대해
약간의 이질감을 느끼는 것과 달리 비는 무척이나 친숙한 느낌을 받곤 했다.
하지만 지금의 정적은 비도 처음으로 느끼는 것이었다.
주위가 고요한 것은 언제나와 같았지만 피부에 와닿는 약간의 생소함과도 같
은 정적은 한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제 29대 홍룡왕이 된 화란의 수행. 그리고 그 수행을 함께  하고 있는 자신과
아버지 훼이. 그리고 홍룡족의 수행원인 두 청년은 그다지  많은 말을 하지는
않았다. 왕의 수행이라는 것은 힘을 기르기 위한 수행이라기  보다 앞으로 자
신이 관리해야할 하계의 모습을 익히는데 더욱 큰 목적을 두고 있었다.
천계의 시간으로도 500년이 훨씬 넘는 긴 시간 동안  하계의 여름과 화(火)의
기운이 깃든 모든 것에 대한 관리는 홍룡족이. 그리고  왕인 화란이 해야하는
것이었기에 하계의 시간으로 세달 동안 하계의 곳곳을 둘러보는 것이다.

몸에 힘이 돌아오자 비는 공터에서 벗어나 숲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너무 오
래 잠을 자서인지 몸이  전처럼 가볍게 느껴지지  않았기에 지난번에 보아둔
얕은 못에 몸이라도 담글까 하는 생각을 떠올리며 걸음을 재촉했다.

왕으로서의 화란은 보통때와는 조금 달랐다. 평소에도 곧은 태도를 보이던 그
녀였지만 왕으로서의 그녀에게는 위엄이 있었다. 일족을 이끄는  자라면 누구
나 가지고 있을 그런 위엄. 비는 문득 자신의 아버지. 훼이를 떠올렸다.
분명 후계자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았더라면  훼이는 이미 흑룡왕이 되었을지
도 몰랐다. 아직 훼이의 아버지인 22대 흑룡왕이 정정하긴  했지만 그가 훼이
에게 일찍 왕의 자리를 물려주었을지도 모를 일이었기에.

만약 내가 없었더라면 아버지가 가끔 흑룡궁을 가라앉은 눈으로 바라보는 일
은 없었겠지......?

비는 피식 거리는 웃음을 터트렸다.
훼이가 무엇을 위해 후계자의 위를 버렸는지는  잘 알고 있는데.... 훼이가 얼
마나 자신을 생각해주는지 비는 알고 있었고,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어머니라는 존재를 알지 못하는 비를 위해 훼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
면 무엇이든지 하려고 했다. 비에게는 오히려 별궁에서의 조용한 삶이 도움이
되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비와 훼이를 진정으로 위하는 시비들을 통해 비는
다른 이를 생각하는 마음을 배웠고 이제는 먼 기억 속의 한 자락으로 자리잡
은 비영의 모습 또한 떠올려 볼 수 있었다.

인간과 용족의 경계에 선 자.
그것은 언제나 비를 따라 다니는 해답 없는 물음이었다.


  " ......뭐지..?"

막 못에서 빠져나와 옷을 걸치고 자리를 뜨려던 비는 못에 맞닿아 있는 반대
편 수풀 속에서 무언가 일렁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공간이 열릴 때
생기는 일그러짐 같이 휘어져 있는 것 같기도 했고, 희미한 빛깔의 안개에 푸
른색이 더해진 것 같기도 했다.
비는 그 일렁임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겨 그곳으로 향
했다.
그리고 그 일렁임을 두 눈으로 보게 된 비는 신선한 호기심에 사로잡혔다. 그
일렁임은 다른 곳으로 통하는  문과 같았다. 보통 용족들이  사용하는 공간을
여는 방식과는 조금 달랐지만 분명 그  일렁임에서는 하계가 아닌 다른 곳의
기운이 풍겨져 나오고 있었다.
비는 천천히 손을 뻗어  그 일렁이는 한사람 정도가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의
원 속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비가 느낀 것은 생소함. 단  한번도 접해보지 못한 이계(異界)의 공기
가 주는 생소함 이었다.


                       *            *            *


  " 어디 좋은 곳이라도 있나요? 계속 다른 곳에만  가계시는군요. 저와 함께
여러 곳을 둘러보는 것도 좋지않으신가요?"

막 공터로 들어서는 훼이에게 화란은 방금전에  따온 과실 하나를 내밀며 말
했다.

  " 그저 발길 닿는대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왔습니다.  혼자서 생각할 것
이 좀 있어서."
  " 그렇군요...."

화란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라난지 수십년은 되어보이는 굵직한 나무 기
둥에 몸을 기대고 섰다.

  " 아..그리고보니 비는 어디론가  나간 모양이군요. 오후쯤에 깨어난  듯 한
데...."

화란의 말을 듣고 둘러보니 보니 비의 모습은 근처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 굳어진 몸을 풀기 위해 산에라도 오른 것 같군요."

훼이는 짧게 대답하고는 이제는 하늘을 완전히  뒤덮은 붉은 색의 노을을 바
라 보았다. 인위적인 색으로는  도저히 표현해낼 수 없는  자연만이 보여주는
아름다운 붉은 빛의 움직임.  그것은 언제고 훼이가 하늘을  바라보게 만드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 하지만 조금 늦는군요."

훼이가 덧붙여 말하자 화란은 빠른 어조로 말했다.

  " 제가 찾으러 갈께요. 이제 날이 저물어 오니까요."
  " 그렇게 하십시오. 지금 시간까지  돌아오지 않는 걸 보면  또 어딘가에서
잠들어 있는지도 모르지요."

고개를 끄덕이는 훼이를 한번 바라본 후 화란은 나무 기둥에서 몸을 떼고 발
걸음을 옮겼다.

 
  " 홍룡왕 전하께서는 아무래도  훼이님을 마음에 두시고 있는  것 같은데...
알고 계십니까?"

화란의 모습이 사라지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공터에  앉아 있던 두 명의
젊은 홍룡족 청년 중 한명이 훼이에게 말을 걸어왔다.

  "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대답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또 다른 한명의 홍룡족 청년 역시 훼이에게 물어왔다.  지금까지 화란의 명령
에 대답하는 것 이외에는 단 한마디도  내뱉지 않았던 그들을 보아왔기에 훼
이는 조금 의외라고 느꼈다.
마치 친 형제가 아닌가  의심할 정도로 닮아 있는  두 청년은 완곡한 얼굴로
훼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 화란은 홍룡왕. 그리고  난 그저 한명의 흑룡족일  뿐이지. 그 이상 다른
무엇이 더 있다고 생각하나?"
  " 하지만 홍룡왕 전하께서는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지 않습니다. 그저 옆
에서 지켜보고 있는 저희들도 느낄  정도인데 당사자이신 훼이님께서 그것을
모르신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 마음이라는 것은 그렇게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야."

그렇게 말하고 나서 훼이는 화란에게서 받은 사과를 한입  베어 물었다. 아삭
하는 소리와 함께 향기로운 과즙이 훼이의 입안을 가득 채웠다.

  " 들어서 알고 있겠지만 나는 인간의 여인을 사랑했고 지금도 그렇다. 내가
했던 선택이기에 지금도 난 그걸 후회하지 않아. 그리고  인생에 여인은 한명
으로 족하다고 여기는데..... 그대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 죄송합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저희도 더 이상  무어라 드릴 말씀
은 없습니다."

두 홍룡족 청년은 무척이나 정중한 어조로 훼이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 지금의 난 내 아들의 일만을  생각하고 싶으니 더 이상은 아무말 말아주
게. 누군가가 날 마음에 담는 것은 바라지 않으니까..."


그것은 무척이나 미묘한 흐름이었다.
화란은 언제나 한발 물러선 거리에서 훼이를 보고 있었다.  항상 말은 확실하
게 내뱉곤 하는 그녀지만 말 이상의 것은 하지 않았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과연 훼이가 생각하는 그것과 동일한 것일까.
언제나 확연하게 거절의 뜻을 전하는 훼이를 대하면서도 화란은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훼이를 대했다.

화란. 그녀만이 가질 수 있는  당당함과 직시하는 시선으로. 그 한결같음으로
그녀는 훼이를 바라보았다.


잠시 각자의 생각에 빠져 있던 세사람의  눈앞에 갑작스레 공간이 열리며 조
금 당황스런 모습의 화란이 나타났다.

  " 큰일이에요. 어디에서도 비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아요."

그 말을 들은 훼이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화란의 눈에 비춰진 것은 굳어진  얼굴로 공간을 여는 훼이의 모습이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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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제 소설 문장력이 너무 딸리는 것 같아요. 괴로워....괴로워...
읽어주시는 분들... 이런 졸작 소설을 읽어주시느라 주고가 많으십니다.
조금씩 자신이 없어지고 있네요. 주위에 뛰어난 사람들이 워낙 많다보니..
보잘 것 없는 제 자신이 너무 작아보여요. 에잇...그치만 열심히 써야죠.
제 장점은 열심히 쓴다는 것 밖에 없는 것 같지만... ^-^
오늘도 잠이 모자르는 저는 눈을 반쯤 감고 자판을 두드립니다.




번 호 : 829 / 3334 등록일 : 1999년 07월 12일 01:07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04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7장 六.



                           흑룡의 숲


  제 7장  역린(逆鱗)


                    
  六.


비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고 있었다.
생소한 이질감에 호기심을 느껴  들어선 이계(異界)의 땅은 무척이나  신비한
것들로 가득 들어차 있었다.
곳곳에 돋아난 풀들과 나무들. 그리고 가끔가다 눈에 띄는  동물들은 보통 천
계나 하계에서 볼 수 있는 동물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끼릿.
공기를 날카로운 칼로 베는 듯한 높고 가느다란 울림에 비는 한쪽 귀를 손으
로 막으며 고개를 돌렸다.

분명 그것은 학과 같은 생김새를 하고 있었지만 어딘가가 달랐다. 온 몸의 깃
이 흰색이 아닌 푸른빛을 띄고 있는데다가 부리는 흰색이었다. 그리고 무엇보
다 그 동물의 다리는 한 개였다. 어떻게 한 개의 다리로  몸을 지탱하고 움직
이는지 비는 무척이나 궁금했다. 막  그 생각을 떠올린 순간 그  동물은 비의
궁금증을 풀어 주기라도 하듯 흔들림 없이 재빠르게 한 발로 움직였다. 그 새
가 목표로 삼은 것은 근처에 있는 나뭇가지를 기어  올라가던 작은 벌레였다.
나뭇 가지와 같은 빛깔을 띄고 있어서 눈에 띄지도 않았지만 그 새는 하늘에
서 지상에 있는 먹이를 노리는 매의  움직임처럼 날렵하게 그 벌레를 부리로
낚아챘다.

  " 필방(畢方)."
  " .........?"

비는 갑작스레 들려온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고 흠칫하며 놀랐다. 분명히 방금
전 까지만 해도 주위에는 그 이상한  생김새의 푸른새 밖에 없었건만 비에게
말을 건네온 그 목소리는 마치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러
웠다.

  " 저 새의 이름은 필방이지. 화재를 불러오는 재난의 새."

고개를 돌린 비의 눈에 들어온 것은 침울하게 가라앉은 표정을 떠올린 비 또
래의 청년이었다.
아랫쪽을 향해 쳐져 있는  눈꼬리와 금빛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밝은 갈색의
눈이 인상적이었다. 몸에 걸치고 있는 의복은 비로서는 처음보는 형태의 것이
었는데 상의와 하의의 폭이 무척이나 넓은 데다가 여밈이 많은 옷이었다.

  " .........누구지.....?"
  " 그것보다 여긴 어떻게 들어왔지? 이곳은 생명을 가진 자가 올 곳이 아닌
데."

비는 자신의 앞에 선 침울한 인상의 청년이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생명을 가진 자가 올 곳이 아니라니. 그렇다면 지금 말을 거는  그 자신은 죽
어있기라도 하다는 말인가?

  " 몸에서 풍기는  기운으로 보아하니 용족인  모양이군......아니야, 용족과는
조금 다른데?"

어깨까지 닿는 검은 머리카락을 자연스럽게  늘어뜨린 청년은 주의깊게 비를
바라보더니 그렇게 말했다.
비는 청년이 자신의 정체를 한번에 꿰뚫어  보는 것에 놀라며 조심스럽게 물
었다.

  " 여긴......어디지?"

청년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떠올리며 비를 응시했다. 그리고  천천히 그의
입술이 움직였다.

  " 버림받은 자들의 땅. 명계(冥界). 그것이 바로 이 땅의 이름이지........"

비는 놀란 눈으로 청년을 쳐다본 후 다시 자신이 서 있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어디를 둘러보아도 비에게 익숙한 풍경은 없었다.


               *            *            *            *


  " 저쪽이다."

챠렌의 목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두명의 젊은 백룡족은  재빠른 동작으로 풀
숲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잠시후. 침음성을 삼키며 한 남자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 찾았습니다. 비 전하......하오나 이미 사체입니다."

차분한 얼굴로 풀숲을 응시하고  있던 챠렌의 눈에  수풀을 헤치며 걸어나온
일족에게 들려있는 어린 소년의 모습이 보였다. 한눈에도 이미 목숨이 끊어졌
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푸르게 굳어진 피부와 축 늘어진 몸. 소년의 사
체를 대한 챠렌의 눈은 순간 싸늘하고 예리한 빛을 발했다.

  " 누구인지 알 수 있겠느냐?"

챠렌의 질문에 소년의 사체를 안고 있던 일족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 뒤
를 따라 나온 다른 일족이 말을 꺼냈다.

  " 제가 알고 있습니다... 분명 류라는 이름이었습니다."
  " 어떤 아이지?"
  " 평소에 무척이나 수행을 즐기는  아이로 아직 성년은 맞이하지 못했지만
무척이나 경험이 풍부한 아이였습니다."

머리를 짧게 자른 건장한 체격의 청년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 잠시 소년의 얼
굴을 내려다 보았다.

  " 기억하기로는 좀 젊은 부부의 독자였던 것 같습니다."

챠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 죽음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 아무래도 몸을 제압당한 상태에서 생명력 자체를 빼앗긴 것 같습니다. 명
계에서 자주 사용하는 수법이지요."

그의 말을 듣지 않고서도 챠렌은 소년이 어떻게  목숨을 잃었는 지 알 수 있
었지만 그녀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흔들림 없는 시선으로 소년의 사체를 응시
했다.

  " 그대는 류를 데리고 천계로 돌아가서 부모에게 알려주도록 하게."
  " 네. 비전하."

소년의 사체를 안고 있던 일족은 깍듯이  고개를 숙여 챠렌에게 인사를 하고
나서 공간을 여는 주문을 외쳤다.
챠렌이 여는 것에 비해 상당한 시간이 지나서야 공간의 문이 열렸다. 젊은 일
족의 청년은 다시 한번 챠렌쪽을 바라보며  고개를 숙이고 나서 공간 안으로
들어섰다.

  " 그대는 나와 함께 이 주위를 더 살펴보도록 하지."
 
막 공간이 닫히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챠렌은 남아있는 한 명의 일족에게 말
을 건넸다.

  " 비전하. 류라는 소년이 쓰러져 있던 곳 주위의  풀들은 아무런 손상을 입
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것으로 보아 소년이 죽음을 맞이한  곳은 이곳이 아닌
듯 합니다."
  " 그건 나도 알고 있어."

청년이 의문이 담긴 시선을 던지자 챠렌은 손을 들어 방금 전 소년의 사체를
발견했던 풀숲을 가리켰다.

  " 분명 어떤 흔적이 남아있을거야. 명계의 자들이 가진 특별한 기운은 그리
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니까."

그렇게 말을 하고나서 챠렌은 걸음을 옮겼다.

  " 죽은자들이 산 자의 땅에 들어서면  반드시 그 주위엔 죽음의 기운이 남
기 마련이지."

활동에 편한 흰색의 치파오를 걸친 챠렌은 서슴없이 풀 숲에 발을 들여 놓았
다.


  - 다행이군. 역시 챠렌 답다고 해야 하나?

공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이공간(異空間) 연결 주문을 통해 챠렌은 파이론에게
자신이 오늘 찾아낸 것에 대해 이야기를 전했다.

  " 작은 증거를 찾기는 했지만 조금 힘들지 몰라요.  명계에서 온 자가 남긴
것은 아주 미세한 것에 불과하니까. 분명 다른 무언가가 있어요...."

  - 당신의 직감은 언제나 틀리는 적이 없었지.

  " 죽은 아이의 부모에게는 위로의 말을 전하도록 하세요. 어린 일족의 죽음
을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것은 분명 왕의 책임이에요."

  - 아아. 잘 알고있어. 이럴 때 만큼은 정말 보좌관답다니까.

고개를 내저으며 말하는 파이론의 모습을 보며 챠렌은 빙긋이 미소지었다.

  " 돌아가는게 조금 늦어질지도 모르겠군요. 발견된 것은  한명 뿐이지만 또
다른 희생자가 있을지 몰라요. 백룡족이 아니더라도 다른 용족들도 하계에 많
이 내려와 있을테니."

거울에 비친 파이론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 다른 용왕들에게도 소식을 알려야겠군.

  " 그렇게 하도록 하세요. 그럼..."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건네며 챠렌이  막 해제의 주문을 내뱉으려 하
자 파이론은 손을 내저어 잠시 그녀의 움직임을 만류했다.

  - 그대의 빠른 귀환을 위해 다른 용족들의 도움을 구하도록 하지.

  " 제 능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겠지요?"

  - 그럴 리가. 언제나 말하는 것이지만 그대는 보좌관이기 이전에 나의 비니
까.

부드럽게 미소짓는 파이론의 모습은 해제의  주문이 외쳐짐과 동시에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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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새벽까지 안 썼습니다. 하지만 12시는 넘었네요.
아직까지 동아리 밤샘작업은 시작되지 않았지만 이제 곧이네요.  하루종일 작
업하는 곳에 있다보니 글 쓸 시간도 없고...아...비축분. 비축분이 필요해..
이제 뭔가 이야기가 시작되려는 듯한 조짐이 보이는 것 같지요? ^^
흑룡의 숲에 등장하는 다른 계(界)들도  가벼운 위치는 아닙니다. 지금까지는
명계나 천상계 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다음에는 다른 곳들도 나온답니다. 이게
의외로 스케일이 좀 커서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를 맞이하시길 빌어요.


번 호 : 849 / 3334 등록일 : 1999년 07월 13일 00:38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14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7장 七.



                           흑룡의 숲



  제 7장  역린(逆鱗)


                    
  七.


  " 그쪽은 어떻지?"

조급한 화란의 음성에 두명의 홍룡족 수행원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 어디에도 흔적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미세한  기운조차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이미 예상한 대답이긴 했지만 화란은 자신도 모르게 온몸에서 힘이 빠져버려
바닥에 주저않고 싶은 듯한 기분이었다.
훼이는 공간을 열고 비를 찾으러 떠난 후 아직 돌아오지 않은 채였다. 그렇게
까지 심각하게 굳어진 훼이의 얼굴은 처음 대하는 것이었기에 화란은 조금전
의 훼이의 모습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비는 말없이 사라질 아이가 아닌데......분명 무슨일이 생긴 것이 틀림없어...
하지만..... 강한 힘을 가졌지만 비의 몸에 흐르는 인간의 피는 언제 어디서 어
떤 일이 생길지 모르게 만들고 있으니.....
설마......

화란은 방금 머릿속에 떠오른 불길한 생각을 지우듯이 세차게 고개를 내저었
다.

  " 전하. 다른 곳을 더 둘러볼까요?"
  " 아니. 여기서 기다리도록. 지금까지 찾지  못했다는 건 우리 힘으로는 찾
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니까. 여기서 훼이를 기다리도록 하지."

그렇게 말하고 난후 화란은 턱에 한 손을 가져다 댄 채 생각에 잠겼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던 두명의 홍룡족  청년들 역시 자세를 풀고 바닥
에 주저 앉았다.


                        *            *            *


훼이는 자신도 모르게 떨려오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주의깊게 주위를 둘러보
았다. 아직까지 어디에서도 비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훼이는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있었다.
하지만 가슴 한구석에서 치밀어 오르는 불안은  그대로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훼이는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미약한 작은 기운 하나라도 느껴지면 재빨
리 공간을 열고 그곳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번번히 실패할 때 마다 훼이의 얼
굴은 점점 더 굳어져 갔다.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분명 며칠전에 지나치게 힘을  썼기 때문에 아직까
지 체력이 회복되지 않았을 것이 틀림없었다. 만약 그  상태로 위험한 상황을
맞이하게 되면 비는 별다른 힘을 쓸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본연의 마력만으로도 평생 손끝하나 다칠 일  없는 용족인 훼이가 자신의 아
들 비에게는 친구를 통해 검을  가르친 것도 바로 그때문 이었다.  항상 마음
한구석에 앙금처럼 남아있는 자신의 아들에 대한 걱정. 반쪽짜리 용이라는 비
난 속에 비를 내던지지 않기 위해 훼이는 후계자의 위까지도 버린 것이다.

비가 자라는 동안 하계의  모든 것들은 변해버리고  비가 훼이의 아들이라는
증거는 자신 밖에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화연이 살아 있었다는 증거 역시 훼
이의 가슴 속에만 남아 있는 것이었다. 아직 훼이의 방 한쪽에 귀중하게 보관
되어 있는 화연이 남긴 편지와 반지 이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훼이가 화연을 떠올릴 수 있는 유일한 매개가 되어 주는 것은 자신과 떠나간
그녀가 남긴 유일한 혈육. 비 뿐이었다.

혹자는 지나가 버린 추억 속에서 사는 것 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고 말하기
도 한다. 하지만 가장 아름다웠고 간직하고 싶은 기억을  강물에 흘려 보내듯
이 잊는다는 것 또한 어리석은 일인지 모른다.
망각이 주는 것은 안식이지만 안식이란 또  다른 슬픔의 이름이기도 한 것이
다.

훼이의 온몸의 감각은 끊임없이 자신과 같은  기운을 가진 비를 찾는데 집중
되어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넓은  조산 전체를 다 뒤지고 나서 조
산이 자리잡고 있는 한 지역 전체를 다 돌아다녔지만 어디에도 비는 없었다.
훼이는 깊게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주저 앉았다.
그리고 바로 그때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훼이의 눈 앞에 작은 공간의
일그러짐이 보였다.
누군가가 들어설 수 있을 정도의 넓이가 아닌  팔 하나가 들어갈 수 있을 정
도의 아주 작은 공간. 그리고 그 일그러진 공간을 통해서 느껴지는 것은 훼이
도 익히 알고 있는 감각이었다.

그것은 바로 죽은자들을 부르는 곳.
영혼의 안식 없이 영겁의 세월을 살아가는  자들이 가지는 깊고도 깊게 가라
앉은 빨려들어갈 듯한 어둠의  향기. 음울한 회색빛으로 가라  앉은 버림받은
영혼들의 땅 명계의 기운이었다.

소리없이 그 일그러진 공간을 주시하고 있던 훼이는 무엇에 이끌리기라도 한
것처럼 몸을 일으켜 공간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희미하긴 하지만 그곳에서 훼이는 익숙한 비의 기운을 느꼈다.

망설일 필요 같은 건 없었다. 훼이는 곧바로 일그러진  공간을 통해 보여지는
명계를 향해 다시 한번 공간을 여는 술(術)을 행했다. 그리고 나서 크게 열려
진 공간 사이로 훼이는 발을 들여 놓았다.


                         *            *            *


  " 그렇게까지 놀랄 필요는 없다고 보는데... 못 볼 것  이라도 본 듯한 표정
이군."

담담하게 말을 이어가는 눈 앞의 청년을 보면서 비는 대체 그의 정체가 무엇
인지 궁금해졌다.
주위에서 들은 바로는 사후의 심판 이후  윤회조차 주어지지 않을 정도로 악
업을 쌓은 자들이 세상이 끝날때까지 영원토록  그 삶을 이어가는 곳이 바로
명계라고 했다. 언제까지고 끝나지 않을 영겁의 시간속에서 살아가는 것 만큼
큰 형벌은 없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 대체........ 누구지.......?"

비는 조심스럽게 청년에게 물었다. 그러자 무심한 시선으로 비에게 시선을 돌
리며 청년은 손을 내밀었다.

  " 이 손이 보이나? 시간의 그림자에  감싸인 이 손이..... 알고 있을텐데. 명
계에는 어떤 존재가 살고 있는지."
  " 그럼... 죽은....자....?"

비는 마치 금기시된 말을 꺼내는 것 처럼 기분이 이상해졌다. 분명 지금도 자
신의 눈 앞에 형체를 가지고 서 있는  청년이 죽은 자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
다.

  " 나도 한때는 용족이었지......."

청년이 내뱉은 말에 놀라 비는 눈을 크게 떴다.

  " 왜? 놀랍나... 어떤 죄를 지었길래 이곳에서 영겁의 형벌을 받고 있는지?"

청년의 어조에는 경멸이 담겨 있었다.

  " 분명 이곳에서도 죽음은 있다. 하지만... 그 죽음은 영원히 반복되는 죽음
이지. 육신의 죽음을 몇번이고 반복하면서 또 다른 내일을 맞이하는 거다. 지
금 이 몸도 몇번째 다시 태어난 몸인지 기억하기 힘들 정도로."

비는 청년의 눈에 떠오른 싸늘함을 대하고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마치 보이
지 않는 주박에라도 걸린 것처럼 비는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 그대가 가진 것은 용족과  인간의 피. 그리고 내가 가진  것 역시 그대와
같은 것이지........ 우습지 않나? 내 부모  이외에 그런 바보같은 짓을 하는 자
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이야."
  " 바보같은 짓.............?"

비는 자신의 속에 그런 격렬한 감정이 숨어있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방금전에 청년이 내뱉은 것은 그의 정체를  말해줌과 동시에 비의 존재 자체
를 부정하는 말이기도 했다.
아직 그리 오랜 시간을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비는 한번도 자신의 존
재 가치를 의심해 본 적은 없었다.

  " 당연히 우스운 일이지. 인간과 용족의 사이에서 무엇이 남기라도 할 거라
고 믿었단 말인가? 아니지. 남는 게 있다면 단 하나 뿐이야. 하계에도 천계에
도 속할 수 없는 괴리(乖離). 그대는 그렇지 않은가?"

비는 주먹을 세게 쥐었다. 손톱이 살을 찌르는 감촉이 느껴질 정도로 세게.

  " 적어도 내게는 날 인정해주는 이들이 있어. 당신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
군."

청년의 입가에는 비웃음이 떠올랐다.

  " 과연 그럴까..... 아직 새파랗게 젊은 애송이가 무엇을 알겠나. 처음엔 나도
그렇게 여겼었지. 하지만 지금의 나를 봐.  내게 흐르고 있던 용족의 피가 준
것은 지겹도록 이어지는 삶의 반복 뿐이야."

비는 조금씩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청년의 얼굴에 떠오른  싸늘함과 우울함의
정체를 이제서야 깨달았기에. 그것은 바로 자신의 눈 앞의  것 이외에는 보지
도 되돌아 보지도 않는 광기였다.
비는 천천히 몸을 돌려세워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말을 해봤자 통하지
않을 상대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몇걸음 걸어나가던 비의 귀에 신음성과도 같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오
래된 문이 삐걱거리는 듯이 음산한 웃음소리가.

  " 잊은 모양인데 이 곳은  명계다. 살아있는 자가 들어오면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 건 아니겠지......"

비는 뒤돌아 보고 싶은 것을 참으며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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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옷.... 분위기 죽인다!! ^^;;;
저는 제 소설 설정이 이해가 잘 안갑니다.  바보라서... 제가 대체 먼 말을 하
고 싶은 걸까요...^^
7장은 좀 긴데요. 10편이 넘어갈 것은  확실합니다. 제가 한편 쓰는데 걸리는
시간이 거의 한시간 30분인 것 같군요. 그치만 막히면 3시까지도 씁니다.
음... 명계... 복잡한 곳이구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상쾌하고 즐거운 하루를...



번 호 : 869 / 3334 등록일 : 1999년 07월 14일 00:34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10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7장 八.



                           흑룡의 숲


  제 7장  역린(逆鱗)


                    
  八.


며칠째 훼이는 유에린에게 지금까지 가르쳐 준  것 이상의 것은 가르쳐 주지
않고 있었다. 그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듯 훼이는 움직임 없이 한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다.
유에린은 훼이에게 무슨 말이라도 건네고 싶었지만 생각에 열중하고 있는 훼
이를 보자 쉽사리 말을 걸 수가 없었다.

벌써 한달이라는 시간을 훼이와 함께 보내고 있었지만 유에린은 훼이가 무엇
을 생각하고 있는지. 그의 얼굴에 떠오른 그저 가라앉은  침묵이 무엇을 의미
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토록 오랜 시간을 살아온 자는 과연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지금까지 자
신이 살아온 시간의 열배도 넘는 시간을  살아온 훼이가 겪었을 무수한 일들
은 자신으로서는 상상조차 하지 못할 정도일 것이다.
유에린에게 자주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오라버니는 언제나 훼이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마치 자신이 훼이가 된 듯이 흥분을 감추지 못했었다.


  " 들어봐라. 유에린. 그가 가진 힘은 같은 용족들도 당해내지 못할 만큼 강
한 것이다. 현재 천계의 각 일족들의 장인 용왕들이라해도  쉽사리 그를 당해
내지는 못할 것이다.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천상계 조차 상대도 되지 않을 정
도다."


그때의 유에린은 오라버니가 왜 그토록이나  훼이라는 인물에게 호감을 가지
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유에린에게는 먼 곳에 있는 훼이라는 인물 보다는 바
로 자신의 곁에 있는 오라버니 쪽이 훨씬 더 강하고 현실감이 있었기 때문이
었다.


  " 그렇게나 강하다면 그는 왜 왕이 되지 않았죠?"


유에린의 질문에 그는 피식 하고 웃어보이며 대답했다.


  " 그가 흑룡족 후계자의 지위를 버린  후에도 그리고 오랜 수명을 얻은 후
에도 그를 왕으로 앉히려는 노력은 있어왔다. 하지만 그는 모든 걸 거부했지.
그는 너무나 오랜 시간을 살았어.  그가 숲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는  것도 더
이상 다른이의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아서다. 오래된 자들은  항상 해가 지날
수록 고독해지기 마련이니까. 언젠가는 주위의 모든 것들이 다 사라지고 생소
한 것으로 변할테니까 말이다."


그때 오라버니가 했던 말의  의미를 유에린은 이제서야  조금씩이나마 알 것
같았다.
오라버니의 죽음을 목도하고 싸늘한 표정을 가지게 된 자신과 달리 훼이에게
서 표정의 변화를 보기란 극히 드문 일이었다. 끈질기게  매달린 자신에게 손
을 내밀었던 훼이는 분명 엷은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 뿐이었다.
그날 이후로 유에린은 단 한번도 훼이의 미소를 본 적이 없었다.

유에린은 자신의 가장 소중한 존재였던  오라버니의 생명을 앗아간 현무족과
당당히 힘을 겨루고 싶었기에 오라버니가  입이 닿도록 이야기했던 훼이에게
찾아온 것이었다. 힘을 겨루고 난 후의  일은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것을 복
수라고 불러야 할 것일까.  그렇지 않을 지도 모른다.  유에린은 그 현무족을
증오하지는 않았다. 다만 오라버니가 어째서 그자와의 싸움에서  졌는지 자신
이 직접 마주 대해보고 싶었다.

모든 용족들에게 경외의 대상이 되어온 훼이의  모습을 직접 두 눈으로 대하
기 전까지 유에린은 훼이가  대단한 자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직접
마주대한 훼이의 모습은 확실히 보통의 용족들과는 어딘가가  달랐다. 외관상
으로는 겨우 600살을 넘긴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훼이의 눈에 담긴 잴 수
없는 깊이는 그에게 얼마나 많은 세월들이 머물다 갔는지를  말해 주었다. 말
로 하지 않아도, 행동으로 내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훼이의
검은 눈은 깊고도 깊었다.


  " 유에린. 난 언젠가 그를 만나서 그가 지내온  세월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
다. 그가 강한 힘을 가져서도  아니고, 수명을 초월한 자라서도  아니다. 물론
그 두가지 이유가 크지 않다면 그건 거짓이겠지. 하지만  난 천년이상이나 이
세상에 살아오면서 그가 느낀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다."

  " 전 잘 모르겠어요...."

  " 그래. 그럴거다. 하지만 유에린. 너도 언젠가는 이런 생각을 하는 날이 올
거야. 그리고 내게 주어진 시간동안 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을 할거
다."


그렇게 말했던 오라버니의 얼굴에는 자신이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지금 유에린이 오라버니가 그토록이나 이야기 하길 원했던 훼이와 함
께 있을 거라는 사실을 예측하지 못했던 것처럼 오라버니가 그토록이나 허망
하게 목숨을 잃을 거라는 사실도 그때는 알지 못했다.

  " 시간이란 정녕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었군요........."

유에린은 자신도 모르게 머리 속에 품고 있던 생각을 입밖으로 꺼냈다.
그리고 유에린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훼이는  천천히 유에린에게 고개를 돌렸
다.

  " 지나가기 전에는 느낄 수도 볼 수도 없는 것이 시간이 품고 있는 운명이
지."

운명이라.....
유에린은 고개를 저었다.

  " 저는 운명을 믿지 않아요.  아무리 천상계의 수명부에 제  수명이 정해진
채 적혀있다고 해도. 전 단지 제 눈앞에 보이는 것을 믿을 뿐이에요."

훼이는 유에린의 얼굴을 한번 바라보고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갓 성년을 넘긴 저 어린 용족 소녀가 가진 당당함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오랜 시간을 살아온 자신조차 확신하지 못하고 있는 시간이라는 이름이 가진
힘을.

반복. 어쩌면 그 이름이 가져다주는 것은 기억과 망각의 교차일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모든 것들이 한조각도 남기지 않고 산산히 부서져 흩어질 것이다.
기억. 언제고 훼이의 마음 속을 채우고 있는 그 말 역시  그렇게 먼지가 되어
부서질 것이었다.


                      *            *           *


  " 그게 사실인가?"
  " 그렇습니다. 전하. 며칠전 백룡족의 보좌관이자 비인 차렌님께서 직접 내
려가셔서 확인한 사실이라고 합니다."

30대 홍룡왕 란은 기분 나쁘다는 듯이 얼굴을 찡그렸다.

  " 그대도 다녀오도록 하게. 아직까지 홍룡족에서는 피해자가 나오지 않았지
만 이렇게 간과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백룡족과 황룡족  이외에는 아직까지
더 이상의 희생자는 없겠지?"
  " 그렇습니다. 전하."

란은 타오르는 불꽃의 색처럼 선명하게 물든  붉은 색의 머리카락에 손을 가
져다 대며 다시 보좌관에게 말을 건넸다.

  " 아니야. 괜히 힘을 낭비할 필요는 없으니 하계로 내려간 일족들에게 어린
일족들을 보호하라고 전하게."
  " 알겠습니다. 전하."

란보다 200살은 젊어보이는  보좌관은 정중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네고는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보좌관이 자리를 뜨고 나서도  란은 한참 동안이나  움직이지 않고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는  갑자기 눈을 빛내며
주문을 외쳤다.

  [ 천개(遷開) 경(鏡) ]

그리고 눈 앞에 떠오른 붉게 감싸인 매끈한 평면에 비친 것은 차분한 얼굴로
문서를 들여다 보고 있는 라이엔의 모습이었다.

  " 오랜만입니다. 흑룡왕."

이공간 매개 주문을 통해  얼굴을 드러낸 것이  란이라는 사실이 놀라웠는지
라이엔은 가벼운 놀라움을 나타냈다.

  - 네. 오랜만이군요. 홍룡왕. 그런데 무슨일로....

  "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만 요즘 명계의 교룡으로 추정되는 자에게 어
린 용족들이 습격을 받고 있소."

  - 네. 그 사실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대답은 하고 있었지만 라이엔의 얼굴에는 명백한 의문이 떠올라 있었다.

  " 그래서 말인데... 이번 기회에 훼이님의 힘을 빌어 그 교룡을 없애는 것이
어떻겠소?"

잠시 라이엔은 침묵했다.

  - 형님은 더 이상 천계의  일에 관여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번
일은 우리 용왕들이 직접 해결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는데 그대께서는 그렇게
여기지 않으시는 모양이군요.

  " 그게 그렇게나 어려운 일인줄은 몰랐군요. 그  정도도 해결하지 못한대서
야 어디 오래된 자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란의 눈에 담긴 빈정거림을 읽고 라이엔은 순간 치밀어  오르는 화를 삭혔다.
예전부터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란은 훼이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
을 드러내곤 했다.

  - 아... 잊고 계신 모양인데, 명계에서  살아가는 자들에게 영원한 죽음이란
없습니다. 아직까지 큰 일이 벌어진 것도 아니니 굳이 형님의 힘을 빌리지 않
아도 충분하다고 봅니다. 아니면, 그대는 자신의 힘에 자신이 없으신 겁니까?

라이엔으로서는 무척이나 드물게도 약간의 감정을 담은 말투였다.
라이엔은 란의 얼굴이 조금이긴 하지만 일그러지는 것을 보며 입을 열었다.

  - 더 이상 하실 말씀이 없으시다면 이만 인사를 건네도록 하지요.

뭔가 할말이 더 남아있는  듯한 불만스러운 얼굴이었지만  란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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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이당....외전도 같이 진행시켜야 얘기 진행이 맞아 떨어지는데... 후....
본편 쓰기도 벅차니 외전은 언제쓰나.....
오늘은 친구네 집에 묻혀있던 초류향 전기를  발견하고 기쁜 마음에 들고 나
왔습니다. 전 고룡 작품 중에선 절대쌍교랑 초류향 전기가 좋아요.
어느덧 오늘 올리는 것이 35편 이군요.  자, 50편을 채우는 그날까지 잘 써야
지. (50편에서 끝은 아녜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를....



번 호 : 889 / 3334 등록일 : 1999년 07월 15일 00:13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06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7장 九.



                           흑룡의 숲


  제 7장  역린(逆鱗)


                    
  九.



훼이로서도 명계에 들어선 것은 처음이었다.
그 존재만 알고 있을  뿐 관심을 가진 적도  없었기에 이곳에 무엇이 있는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지금의 훼이가 느끼는 것은 무척이나 생소하다는 느낌이었다.  주위에 자라나
있는 초목들 역시 색과 그 모양이 기이했고 가끔씩 지나 다니는 동물들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는 느낌을 강하게 던져 주는 것들 뿐이었다.

명계 전체를 감싸고 있는 공기는 천계를  비롯한 다른 곳들과는 완전히 달랐
다. 무색무취여야 할 공기가 가지고 있는 희뿌연 느낌과  웬지 모르게 기분을
바닥까지 끌어내리는 듯한 기분나쁜 향. 그 향은 확연하게 맡을 수 있는 강한
냄새는 아니었지만 은근하게 몸 속을 타고 퍼져나가며 신경을 거스르는 것이
었다.

죽은자의 땅이라더니 과히 기분 나쁜 곳이군.....

훼이는 속으로 낮게 읊조리며 걸음을 옮겼다. 온 몸의 신경은 오직 비가 내뿜
는 희미한 기운을 느끼는데 기울여져 있었다. 그리고 두눈으로는 한시도 쉬지
않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인적하나 없는 적막으로 가득찬 숲속을 거닐던  훼이는 어느 순간 비의 기운
을 감지하고 그 자리에서  걸음을 멈췄다. 이제까지와 같이  너무나 희미해서
어느 곳에 있는지 느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뚜렷하고도 선명하게 비의 기
운이 느껴졌다. 분명 비는 가까운 곳에 있을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나서 훼이는 거의 달리다 시피 하여 비
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으로 향했다.


길고도 넓은 잎을 가진 작은 나무들이 양쪽으로 길게 늘어서 있는 길을 따라
비가 빠르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아직도 등 뒤에서 음산하게 깔린 남자의 음성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어째서 그 남자는 이곳 명계의 땅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

지금까지 비는 인간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용족은 자신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
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착각이었던  모양이다. 훼이도 태어나기 전인 더
오랜 과거에도 훼이처럼 인간과 사랑에 빠져  피가 섞인 아이를 낳았던 모양
이었다.
하지만 그는 왜 그토록이나 심한 광기에 휩싸여 있는가. 비로서는 알 수 없었
다. 버림받은 영혼들이 살아가는 땅이 이곳 명계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과
연 그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리고 세상이 끝날때까지 삶을 반복해야
한다는 그 남자의 말은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다. 그리고  영혼조차 구제 받지
못할정도의 죄라는 것은 무엇인지. 조금 전의 남자가 들려준  말은 비에게 혼
란을 가중시킬 뿐이었다.
훼이조차도 그런 말은 들려주지 않았었다.

영원한 반복.........?
과연 그것은 고통스러운 형벌인 것인가.

비는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더욱 발걸음을 빨리했다.


  " 용족이군......"

비는 갑작스레 들려온 여인의 목소리에 흠칫하고 놀라며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비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좌우에  그림자와도 같은 검은 옷으로 몸을
감싼 두명을 데리고 마치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서 있는 여인의
모습이었다.
그녀의 모습은 무척이나 특이했다. 높게 틀어올린 짙은  푸른빛의 머리카락과
붉은색을 띄고 있는 눈동자. 그리고 금빛 찬란하게 빛나는 화려한 의복.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세명을 보자  비는 어떻게 해야할 지 알  수가 없었다.
비가 머뭇거리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던 여인은 입끝을 살짝 치켜올리며 웃었
다.

  " 그대 역시 교룡이군..."
  " 교룡.......?"

비는 자신을 향해 던져진 여인의 말에 가슴 가득 의문을 느끼며 되물었다.

  " 모르고 있었나? 인간과  용족 사이에서 태어난 자를  교룡이라고 부르지.
용족도 아니며 인간도 아닌 자. 하지만 동시에 두 종족이기도 한 자."

비는 아무말 없이 날카롭게 치켜져 올라간 여인의 눈을 바라보았다.

  " 결국 교룡이 갈 곳은 이곳 뿐이지.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자를 받아
들여주는 유일한 곳이니까."
  " 난 우연히 이곳으로 들어서게 된 것 뿐입니다. 제겐 돌아갈 곳이 있어요."

비는 눈 앞의 여인에게 당당하게 말했다.
그러자 여인은 소름끼치도록 날카롭게 미소지었다. 어떻게 입술을  살짝 움직
인 것 만으로 그런 표정이 나오는지  신기할 정도로 여인의 미소는 섬뜩하면
서도 놀라웠다.

  " 그대는 이곳에 들어선 것을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해. 나는 이곳에
들어선 자를 되돌려 보낸 적이 없으니까."

비는 붉은색을 띄는 여인의 눈이 마치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 같다는
착각에 빠졌다.

  " 당신은......"
 
비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 이제 이곳에 속하게 될 테니 알려주어도 무방하겠지. 나는 명계의 주인인
요희다. 이곳 명계가 생겨났을 때부터 이곳에 존재해 왔지."

그렇게 말하며 요희는 돌려  자신의 양 옆에 선  검은 의복을 걸친 자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잠시 후 인형처럼 아무런 표정도 떠올리지 않은 두 사
람은 비를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 그들의 손에서는 안개와도  같은 검은 빛이  끊임없이 뿜어져 나오며
비의 주위를 감싸기 시작했다.
순간 적으로 위험을 느낀 비는 재빨리 방어주문을 외쳤다.

  [ 패사령진(覇邪靈陣) 개(開) ]

방어주문을 펼치자 비의 주위에 몰려들던 검은 빛은 접근해  오지 못했다. 하
지만 요희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 네가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지 두고 보도록  하지. 보통의 용족이라도 견
디기 힘든 이곳 명계의  공기에 교룡인 네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말이
야......"

요희의 목소리를 들으며 비는 자신의 마음이  점점 무거워 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            *            *            *


자신의 손바닥을 통해 온 몸으로 퍼져나가는 따듯한 생명의  기운. 그것이 온
몸에 퍼져나갈 때의 느낌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이나 기분 좋은 것이었
다. 자신의 몸이 새로운 생명으로 충만해 가고 있는 것과 반대로 손바닥 아래
에 놓인 소녀의 얼굴은 점점 창백하게 탈색되어가고 있었다.
이미 반항할 여력을 상실한 듯 소녀의 얼굴은 평안해 보이기 까지 했다.

천년이라는 세월을 살아가야 할 어린 용족의 소녀는 그렇게 자신의 생명력이
다른이에게 넘어가는 것을 무감동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모든 생
명력이 남자에게로 넘어가자 소녀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마지막으로 두 눈에
세상의 모습을 담기라도 하듯이 천천히. 그리고 남자의 손이 이마에서 떨어지
자 소녀의 몸은 바닥으로 허물어져 내렸다. 그리고 남자의  손은 다시 떨리는
눈동자로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다른 소년에게로 향했다. 무슨 주문에라도 걸
린 듯 소년은 굳어진 그대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남자는 무감각한 표정을 떠올린 채 소년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또 다시 손바
닥을 통해 느껴지는 생명의 기운은 기분좋은 울림처럼 그렇게 퍼져나갔다.


어느새 남자의 얼굴에는 슬픔이 깃들어 있었다.
그는 검은 눈을 들어 바닥에 쓰러져 있는  이제 막 생명이 사라진 두명의 어
린 용족을 응시하다가 천천히 자신의 두손을 들어올렸다.

  < 난 누구지..........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

갑자기 머릿속이 백지가 된 것처럼 텅빈 것 같았다.
하지만 남자는 자신의 이름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도, 자신이 몸이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로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투명할 정도로 흰 피부와 어깨를 타고 흘러내린 검은  머리카락. 갸름한 얼굴
선과 우수에 찬 검은 눈동자. 남자의 모든 것은 누군가와 닮아있었다. 몸에서
풍겨오는 분위기 까지. 모든 것이  한 남자를 쏙 뺀 것처럼  익숙하게 느껴졌
다.
 
  < 훼이......... >

한동안 자신의 두 손을 응시하던 남자는  낮게 울리는 목소리로 이름 하나를
내뱉었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강하게 자신을 이끄는 이름. 남자의  머리 속에 잠
시 지금의 자신과 닮아있는 훼이의 모습이 스치고 지나갔다.




=======================================================================
드뎌 내일부터 편집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내일 것 까지 두편을 올립니다.
펑크 안 내려는 저의 발악입니다. ^^
우... 역시 시간을 뒤섞어 버렸더니 시간대를  맞추기가 힘들군요. 내가 왜 이
랬을까나... 지금까지의 제 스타일은 사건 위주의 전개  였는데 갑자기 이렇게
되어 버렸군요.
서정적 환타지라고 해야 하나요.. 이걸? (저희 언니는 그러던데..^^)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




번 호 : 890 / 3334 등록일 : 1999년 07월 15일 00:13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02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7장 十.



                           흑룡의 숲


  제 7장  역린(逆鱗)


                    
  十.


  " 희생자는?"
  " 한명은 청룡족. 그리고 한명은 홍룡족입니다."

챠렌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창백하게 굳어진 소년과 소녀의 사체를 응시
했다.

벌써 몇번째인지 몰랐다. 오늘로 하계로 수행을 내려온 대부분의 어린 용족들
이 생명을 잃었다. 단서를 찾으려 했지만 사체가 있는 곳에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분명 이런 짓을 벌이는 것이 명계에서 온 교룡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림자 조차 볼 수가 없으니 너무나 답답했다.

대체 무슨 목적으로 어린 용족들의 생명을 빼앗는 것일까.
물론 들은 적은 있었다. 인간의 피를 이은 교룡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용족의
생명력을 얻는 것이 가장 좋다고. 그렇게 한다면 인간의  피가 섞였기에 가지
는 체력의 한계도, 삶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몰라서 불안해  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증명된 것은 아니었다.

이제 더 이상의 소득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챠렌은 잠시 지금 천계로
돌아가야 할 것인지 망설였다.

  " 아직까지 하계에 남아있는 어린 용족들이 있나?"

챠렌의 질문에 지금까지 챠렌을 도와온 청년이 정중하게 입을 열었다.

  " 없습니다. 오늘의 희생자가 마지막으로 하계에 남아있던 어린 용족이었습
니다."
  " 그렇다면 다행이군."

자신이 직접 하계에 내려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번도 용족들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사실은 적이 생각보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결국은 천계로 되돌아가 다른 이의 도움을  구해야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인지도 모른다. 아니, 그것이 최선책일 것이다. 아무리 자신이 강한 힘을 가
진 백룡족 이라고 해도 명계만큼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상대해 보지 못했다.
명계라는 곳은 천상계의 상제라 해도 손댈 수 없는 불가침의 영역이었다.

  " 결국 그의 힘을 빌려야 하나......"

챠렌은 다른이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중얼거렸다.

  " 천계로 돌아간다. 사체는 청룡족과 홍룡족에게 전하도록."
  " 네. 비전하."

챠렌의 앞에 서 있던 두명의 백룡족  청년들은 두 소년소녀의 사체를 수습하
여 흰 천으로 덮어 씌운 후 안아 들었다.

  [ 역궁(逆窮) 개문(開門) ]

낭랑하게 울려퍼진 챠렌의 목소리와 함께 공간이 열렸다.

아무런 소득도 없이 되돌아 가야 하는 챠렌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챠렌은 공간 안으로 들어서기 전 다시 한번 사체를 발견했던 작은 나무 숲으
로 시선을 던졌다.

  " .........?"

순간 챠렌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지금까지 나무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던
그곳에 희미하게 푸른빛에 감싸인 누군가의 그림자가 보인 것이다.
 
  " 비전하?"

챠렌이 공간 안으로 들어서지 않고있자 두명의 백룡족 청년들은 의아함을 담
은 목소리로 챠렌을 불렀다.

  " 그대들은 먼저 돌아가게."
  " 갑자기 무슨...."
  " 둘러봐야 할 것이 생각났어. 그대들은 어서 돌아가서 사체를 부모에게 전
해주고 백룡왕께 연락을 취하도록 하게."

그렇게 말을 전하는 순간에도 챠렌은 숲속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는 푸른 그
림자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 비전하. 저희들도 돕겠습니다."

그제서야 챠렌의 시선이 향하고 있는 곳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알아챈 두
명의 백룡족 청년은 들고 있던 사체를 바닥에 내려 놓으며 말을 꺼냈다. 하지
만 챠렌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 그대들은 돌아가게. 그리고 어서 연락을 취하도록 해. 그게 날 돕는 길이
니. 알겠나?"

강경한 챠렌의 어조에 두 청년은 다시  사체를 안아 들고 공간안으로 들어섰
다.

  " 그러면 비전하. 속히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챠렌은 순식간에 닫혀버린 공간에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푸른 그림자가 자
리하고 있는 숲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            *            *


불안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너무나 불안했다.
화란은 두손을 꽉 쥔채 훼이가  떠나간 그 자리를 응시했다. 벌써  두 시진이
흘러갔건만 사라져버린 비도. 그리고  비를 찾기 위해 떠난  훼이도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불안한 것일까.
둘에게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  것인지. 아까부터 안절부절 하고  있는 자신을
타일러 보려고 했지만 그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마음을  가라 앉히려고
하면 할수록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화란과 함께 자리를 지고 있던 두명의 홍룡족 청년 역시 화란이 느끼고 있는
이유 모를 불안감에 전염 된 듯 침중하게 가라앉은 표정으로 저물어 가는 숲
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을 보냈을까. 하늘을 온통 별빛이 수놓을  정도로 밤이 깊
어졌다. 하지만 화란과 두 홍룡족 청년은 미동도 없이 한 곳만을 바라보고 있
었다.
무슨 이유때문 인지는 몰랐지만  그들의 시선은 자연히  산 정상으로 통하는
길로 향해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나뭇가지들의 움
직임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듯 화란은 그 길을 통해 훼이가 모습을 드러내기
만을 기다렸다.


  " 물을 좀 준비해 주겠습니까...."

거짓말처럼 들려온 훼이의 목소리에 화란은 놀라는 한편 안도했다.
오랜 긴장속에 서 있어서 인지 화란은 훼이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더 작고 낮
게 울려 퍼졌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 비는... 비는 무사한가요?"

한명의 홍룡족 청년이 물을 가지러 샘 쪽으로 향하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화
란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화란의 눈에 비친 훼이의 품에 비가 안겨 있었기에.

검은 밤 공기에 녹아 들 듯이 검은색의  파오를 걸치고 있는 훼이와 비의 모
습은 화란의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이윽고 훼이의 모습이 화란의 눈 앞으로  가까이 다가서고 나서야 화란은 훼
이의 표정이 어딘지 모르게 무겁다는 것을 알았다.

  " 무슨 일이........ 생겼나요?"

공터에 다다른 훼이는 아무말 없이 품에 안겨있던 비를 바닥에 눕혔다.
한눈에 보기에도 비의 모습은 정상이 아니었다. 화란은 깜짝  놀라 비의 얼굴
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비의  숨소리는 무척이나 미약했다. 그리고 얼굴색
또한 창백했다.

  "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
  " 명계에 다녀왔습니다....."
  " 명계요? 명계에 다녀오다니..... 대체 무슨 말이세요?"

하지만 훼이는 아무 말 없이 홍룡족 청년이  떠온 물을 받아 비의 입가에 흘
려 넣었다. 바싹 마른 비의 입술에 물이 닿자 일순 비의  얼굴에 다시 생기가
돌아온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 뿐이었다. 비의 얼굴은 다시 창백해져 있었다.

  " 죄송하지만 저는 먼저 천계로 돌아가야 겠습니다."

화란은 평상시처럼 담담한 표정을 떠올리고 있는 훼이를 바라보면서 그가 지
금 느끼고 있을 슬픔을 읽었다.
얼굴 표정은 담담할지 몰라도 훼이의 목소리에는 엷은 침음성이 배어 있었다.

  " 그렇게 하세요...... 도움이 되어 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가볍게 화란에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건네고 나서 훼이는 소리없이 공간을
열었다.

어둠과 같은 색을 가진 훼이의 파오가 공간 속으로 사라져 가는 것을 화란은
조용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느끼고 있었던 불안은 이것이었나......

훼이는 화란에게 아무말도 해주지  않았지만 화란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화란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훼이에게 소중한  이를 잃는 슬픔이 찾아오지
않도록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라는 것 뿐이었다.
훼이의 친구였던 성휘가 죽음을  맞이했을 때 훼이가  보였던 반응을 화란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제발..........

화란은 또 다시 두손을 꼭 맞잡은 채 훼이가 사라져간 빈 공간을 바라보았다.



=========================================================================
흑흑....감격했어요. 제가 하루에 두편이나 쓰다니.
역시....결심하면 할 수 있구나... 이번  제 7장의 이야기는 아직 몇편  더 남아
있습니다. 명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자세하게 언급하지
않았지만 차차 나온답니다. 자, 뒷 얘기는 낼 모레 올릴께요.
랄랄라...이제 낼 밤새로 가야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더운 여름날씨에 지지 마세요. ^-^



번 호 : 942 / 3334 등록일 : 1999년 07월 17일 01:27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186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7장 十一.



                           흑룡의 숲


  제 7장  역린(逆鱗)


                    
  十一.



온 몸에서 푸른 기운을 내뿜고 있는 자를  대한 순간 챠렌은 일순 자신의 눈
을 의심했다.
분명 그가 여기 있을 리도 없고. 또 온몸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자신이 생각하
는 그와는 다른 것이었지만 챠렌의 눈은 지금 그 사고를 부정하고 있었다.

챠렌이 다가서고 있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엷은  푸른빛에 감싸인 남자는
미동도 없이 어느 한 곳을 보고 있었다. 온몸에서 발산되는 특이한 기운이 아
니었다면 살아있는 존재라고 생각치 못할 정도로 남자는 그렇게 굳어진 듯이
자리에 서 있었다.

  " 그대는 명계에서 온 교룡인가?"

남자의 바로 근처까지 다가선 챠렌은 온 몸에 긴장을 떠올린 채 남자에게 물
었다.
남자는 마치 챠렌의 말을 듣지 못한 것처럼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그리고 또 다시 챠렌이 입을 열려던 찰나.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교룡..........교룡이라......... 한때는 그렇게 불렸던 것 같기도 하군......."
 
그 말에 담긴 것은 명백한 시인. 챠렌은 곧 마력으로 남자에게  공격을 할 준
비를 했다.

  " 어린 용족들의 생명을 빼앗은 것도 당연히 그대겠군."

챠렌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남자는 숨죽인 웃음소리를 터트렸다. 기묘한 울
림을 담은 그 목소리를 듣자 챠렌은 온 몸에 섬뜩한 감정이 퍼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 그대는 백룡족이군....... 나를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자신의 힘
을 과신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렇게 말하고 나서 남자는 천천히 챠렌을 향해 몸을 돌렸다.

멀리서 봤을 때부터 짐작을  하기는 했지만 남자의  모습은 놀랍도록 훼이와
닮아있었다. 온 몸을 감싸고 있는 푸른 기운만 아니라면  그가 훼이라고 해도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 대체......... 훼이와 무슨 관계지..........?"
  " 훼이........ 훼이라........"

남자는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한 표정으로 훼이의 이름을 되뇌었다.

가만히 남자의 행동을 지켜보던  챠렌은 문득 기억속에  묻혀있던 어떤 말을
생각해냈다. 오래전에 들은 적이있는 그 말.

분명 훼이에게도 교룡이었던 아들이 있었다.

하지만 과연 저 교룡이 훼이의 아들일까......?
그렇다고 하기엔 훼이의 태도가 이해가 가질 않는다. 그가 명계를  적대시 하
고 있던 것을 생각하면 그것은 지나친 생각에 불과하다. 하지만 저 얼굴은.....
너무나도 훼이를 닮았다.
직접 남자에게 물을까도 생각했지만 아직은 자신의 짐작일 뿐이다. 섣불리 행
동했다가 나쁜 결과라도 부른다면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큰일이 되어버릴
수도 있었다.

침착해야해. 분명 저자는 명계에서 온 교룡이다.
지금까지 열명에 가까운 어린  용족들의 생명을 흡수했기에  분명 그의 힘은
나로서도 당해내기 벅찰만큼 강해져 있을지도 모른다.
아직 정체는 확신할 수 없지만 저자와 훼이가 어떤 관계가 있다는 것 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자, 침착하게 대처하는 거야.

그렇게 속으로 자신에게 되뇌이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을  때 챠렌의 눈에
남자의 몸을 감싸고 있던 푸른  기운이 조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하게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챠렌은 소리없이 방어주문을 펼쳐 자신의 몸을 보호했다.
다른 이들이 올때까지 우선 자신의 힘으로 그를 붙잡아 두어야  했다. 없애지
는 못하더라도 붙잡아두는 것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을 터였다.
적어도 그녀가 가진 힘은 백룡족에서는 두 번째에 꼽힐만큼 강한 것이었기에.
그녀는 과신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능력을 잘 알고 있었다.

예리하게 상대방을 주시하던  챠렌은 자신에게 짓쳐들어오는  용족의 것과는
확연히 다른 힘을 느끼며 공격 주문을 외칠 준비를 했다.


                       *            *            *



갑작스레 허공에 소용돌이 치는 검은 물결과도 같은 움직임이 피어났다. 그리
고 그 자리에 거짓말처럼 아련한 검은 빛에 휩싸인 거울이 떠올랐다.

혹시..... 저것이 왕들만이 쓸 수 있다는 이공간 연결 주문인가......

유에린은 훼이가 그 거울 앞으로 다가서는 것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보지
는 못했지만 들은 사실에 의하면 맞는 것 같았다.


유에린이 예상했던 대로 그 거울에 비친 것은 왕의 힘을 가진 자. 그중에서도
훼이의 친동생인 현 흑룡왕 라이엔 이었다.

  " 무슨일이지. 라이엔? 천개(遷開)의 주문까지 써 가면서."

부드러운 얼굴을 한 훼이와는 반대로 거울속의 라이엔은 무척이나 곤란한 표
정을 떠올리고 있었다.

  - 형님..... 하계쪽에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 곤란한 일인 모양이지? 그렇게 말하기를 망설이는 것을 보니."

  - 그게.... 그 일이 명계와 연관된 일이라서....

주저함을 담은 목소리로 라이엔은 말을 이어갔다.

  - 명계의 교룡이 성년식을 치루지 않은 어린 용족들을 해치고 생기를 빼앗
아 갔습니다. 이번에 하계로 수행을 떠났던 대부분의 어린 용족들이  그 교룡
에게 생명을 빼앗겼습니다.

교룡이라는 말을 듣자 훼이의 머리속에는 섬뜩할 정도로 빛을 발하던 명계의
주인 요희의 붉은 눈동자가 떠올랐다.

명계에서 살아가는 자들이 다른 곳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 원래는 나가는 일
자체가 허용되지 않지만 - 그녀의 허락이 필요했다. 그리고 교룡이 하계로 나
왔다는 것은 분명 훼이에게 악감정을 품고 있는  요희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
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었다.

우스운 일이었다. 악감정을 품어야 할 것은 본래 그녀가 아니라  훼이여야 하
는 것인데 그녀. 요희는 마치 훼이로 인해 자신의 터전이 위협받기라도 한 것
처럼 훼이를 증오하는 것이다.
물론 과거에 훼이가 명계를 공격한 적은 있었다. 그리고 명계의 반 이상을 초
토화 시켰던 그때의 일은  천계뿐만 아니라 천상계와  환계에 까지도 알려져
지금까지 화제가 되고 있는 사건이기도 했다.
그것은 분명 그녀가 자초한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지금까지 그 일을
잊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 그래서 백룡족의 보좌관인 챠렌이 하계로  내려가 조사를 시작했고 지금
막 그 교룡과 마주쳤다고 합니다. 그녀는 분명 강한 힘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지금 그 교룡은 여러 생명력을 흡수했기 때문에  얼마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
는지는 미지수입니다. 다른 용왕들은 명계의  힘을 알고 있는 것은  형님이니
형님이 대처해 주시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라이엔은  계속해서 훼이에게 미안하다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라이엔의 눈빛을 읽으며 훼이는 자신도 모르게 작게  웃고 있었
다.

그랬다. 자신의 어린 동생. 라이엔은 언제나 훼이가 궁으로 돌아와 자신과 함
께 살길 바랬고 또 누군가가 훼이의 휴식을  방해하는 것을 무척이나 꺼려했
다. 그런 라이엔이 지금 직접 훼이에게 일을 부탁해야 한다는 것은 무척 곤란
한 일임에 틀림없었다.

훼이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다른 용왕들의 힘만으로  그 교룡을 없앨수는 있
겠지만 그들은 자리에서 움직이려 하지 않는 것이다.
명계의 힘을 가장 잘 아는 것은 훼이라는 그럴듯한 핑계까지 붙여 가면서.
그런 그들의 속셈을 알고 있으면서도 훼이는 속아주기로 했다. 가끔은 이런식
으로 움직이는 것도 나쁠 것은 없다.

  " 좋다. 내가 가도록 하지. 현재 교룡이 나타난 장소는 어디지?"

  - 교산(驕山)의 조양지곡(朝陽之谷) 부근입니다.

  " 그러면 지금 곧 그리로 가도록 하지."


라이엔과의 대화를 끝마치고 나서 훼이는 잠시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유에린은 그런 훼이를 조용한 시선으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 함께 가겠느냐. 유에린."

유에린은 잠시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 조금 까다로운 존재를 상대하는 일이니 봐 두면 도움이 될거다."

그렇게 말하고나서 훼이는 유에린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공간을 열
었다.
그리고 공간안에 들어선 채 자신에게 시선을 돌리는 훼이를 바라보며 유에린
은 빠른 걸음으로 공간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약간의 일그러짐과 함께 공간이 닫히는 모습을 바라보며 유에린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
자... 오늘도 이틀치 한꺼번에 갑니다. ^^
토욜은 아시다시피 오프구요. 또 아직 동아리 편집이 안 끝났기 때문에 또 밤
을 새야 하거든요. 우....가능하면 세편을 올리고 싶지만 능력이 되면요...
이번 장은 굉장히 길죠? 어디까지 더 길어질지....써봐야 알겠지만요.
아마 몇편안에 8장으로 넘어갈 것 같습니다.
지금 이야기를 인물에게만 한정시켜 진행시킬 것인지. 아니면  범위를 확대시
켜 초장편으로 만들지 고민하고 있는데요. 아마 8장까지  이야기가 전개된 후
에 결정할 것 같아요.

<잠깐 설정>

자주 등장하는 이공간 연결, 매개 주문인 [천개(遷開)  경(鏡)]은요. 서로 다른
계(界)만을 연결시켜주는 주문이 아니라 같은 계 안에서도 쓸 수 있는 주문입
니다. 일종의 전화와 비슷한 것이죠...^^ 주로 서로 다른 시간대를 연결해 주는
주문이므로 왕 이상의 힘을 가진 자들만이 쓸 수 있는 고난위 주문입니다. 가
장 자주나오는 공간을 여는  주문은 수련만 한다면  보통의 용족들도 가볍게
쓸 수 있는 주문이지만 강한 힘을  가진 자들은 주문없이도 본연의 마력만을
가지고 공간을 열 수 있지요. 흑룡의 숲에서 강한 힘을 가진자는 주문을 외치
지 않는 자라고 보시면 됩니다.

랄랄라 즐거운 오프다...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번 호 : 943 / 3334 등록일 : 1999년 07월 17일 01:28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199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7장 十二.



                           흑룡의 숲


  제 7장  역린(逆鱗)


                    
  十二.



아무말도 나오지 않았다. 아니, 사고 자체가 마비되어 버린 것이다.
머리속이 하얗게 변해 버린 듯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아무것도...

결국 이렇게 되었어야 한단 말인가.
어째서..... 어째서 이렇게 되어버린 것인가.
비가 살아온 시간들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이 시간이  오래도록 계속 되리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지만 이토록 빨리 끝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한 적이 없
었다.
순간 창백하게 굳어진 채 잠든 듯이  누워있던 성휘의 얼굴이 스치고 지나갔
다. 그리고 방금전에 비가 보였던 엷게 떠오른 미소가  훼이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아무말도 하지 않았지만 마지막 순간에 비가  보인 미소에는 훼이를 향한 많
은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자신이 지금 이렇게 떠나가더라도 부디 슬퍼하지 말라는. 그리고 먼저 떠나가
서 죄송하다는 의미가 담긴 그 엷은 미소가 머물러 있던 비의 얼굴을 훼이는
머리속에서 지워버릴 수가 없었다. 훼이는 마치 지금도 눈  앞에서 비가 엷게
미소짓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거짓말이다.... 이건 거짓말이야....

훼이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젓고 있었다.

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어 있었던 것일까.
오래전의 그 만남부터가 모든 것이 뒤틀릴 거라는 것을 말해주는 전조였나?
그건 아니다. 지금 이 순간도 절대로 후회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어째서 비는 지금 눈을 감고 있는 거지.....
왜 다시는 눈을 뜨지 않는거지....... 

마음속으로 절규하듯 외쳤지만 훼이의 그 물음에  답해줄 이는 이 세상 어디
에도 없었다.

현실은 그렇게 다가왔다.



  " ..........전하....... 전하.........."

아무런 움직임 없이 의자에 앉아있던 훼이를 시비는 안타까운 음성으로 볼렀
다. 물조차 입에 대지 않는 훼이를 옆에서 지켜보며 그녀는 지금의 훼이가 어
떤 심정일지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 역시 싸늘하게 식어버린 비의 모습을 보
고 얼마나 많이 울었던가. 하지만  훼이는 눈물 조차 내비치지 않은  채 그저
계속 침상위에 누워있는 비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마치 단 한순간이라도 눈길을 떼면 비의  모습이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기
라도 할 것처럼 훼이는 그렇게 비의 모습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 전하. 조금이라도 음식을 드셔야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시비의 음성을 듣지 못한 듯  훼이는 여전히 비의 모습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또다시 입을 열려던  시비의 손을 누군가가 잡으며 제지했
다. 갑작스레 자신의 손을 잡은자가 있다는 것에 놀라며  고개를 돌린 시비의
눈에는 뭐라고 할 수없을 만한 놀라움이 담겼다.

  " 저......전.."

막 말을 내뱉으려던 시비를 또 다시  만류하며 그는 천천히 훼이쪽을 돌아보
았다.

최강의 흑룡족으로서 그리고 그 흑룡족의  왕으로서 지금까지 살아온 자연스
러운 위엄이 담긴 태도로 그는  몸을 움직여 훼이의 뒤에 섰다.  그리고 그는
가볍게 손을 들어 훼이의 어깨에 올려놓았다.

  " 이제 만족하십니까. 인간의 피가 섞인 자는 당연히 이렇게 되리라고 생각
하셨습니까........"

훼이의 목소리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낮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훼이는 말
했다. 그리고 훼이는 자신의 아버지. 흑룡왕이  방 안에 들어선 것을 알고 있
었던 듯 아무런 동요조차 없이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 단 한번도 할아버지라고 불러보지 못했던 제 아들이 이렇게 삶을 마감한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러 오셨습니까."

별다른 흔들림없이 울리는 목소리였지만 흑룡왕은 그 말에 담긴 의미를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다른이를 원망해 본적 없던  훼이가 이토록이나
괴롭게 자신의 마음을 토로하고 있는 것이었다. 비록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려
고 하지 않은 담담한 어조였음에도 아버지라는 이름을 가진 흑룡왕은 그것을
읽을 수 있었다.
흑룡왕은 깊이 고개를 숙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강인해 보였던 그의 어깨도 그때만큼은 외소하게 느껴졌다. 지금의 그는 이제
까지 다른이에게 명령을 내려오던 강력한 지도자의 모습이 아닌 그저 훼이의
아버지이자 비의 할아버지일 뿐이었다. 비록 그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던
그였지만 그것은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 훼이........"

흑룡왕은 안타까움이 담긴 음성으로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훼이가 스스로 흑
룡왕 후계자의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  거의 200년만에 부자는 서로를 마주대
하는 것이었다.
그 시간은 그리 오랜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  사이에는  마치 그보다 몇배는 
더 긴 세월이 놓여있는 듯이 멀게만 느껴졌다.

  " 훼이..... 네게 무슨말을 해야할지 모르겠구나......."

훼이를 바라보는 흑룡왕의 눈에는  진한 아픔이 배어 있었다.  자신이 조금만
물러섰더라도 지금의 결과는 생겨나지 않았을 거라는 깊은 자책과 함께.
너무나도 다른 듯 하면서 너무나도 닮은 두 부자는 오래전 처음으로 비를 데
려온 훼이가 흑룡궁에 들어섰을 때와 마찬가지로 각자의 입장을 굽히지 않았
다. 어쩌면 흑룡왕은 처음부터 훼이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를  예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 저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돌아가주세요......"

흑룡왕은 여전히 자신에게 등을 돌리고 앉은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어깨
에 올렸던 손을 내려 놓았다.

흑룡왕 역시 알고 있었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입장이 어떤 것인지.
흑룡왕 자신 또한 자식을 잃어본 경험이 있다. 그때의 절망감은 세상의 그 어
떤 말로도 위로할 수 없는 것이다.
흑룡왕은 성년식조차 지켜봐 주지 못했던 자신의 손자가 영원한 안식의 땅으
로 떠나버린 모습을 가만히  응시했다. 단 한번도 자신의  손자라고 인정하지
않았던 훼이의 아들.
인간의 피가 섞여있긴 했지만 아이의 얼굴은 훼이와 흡사했다.  마치 어린 시
절의 훼이를 보는 것 처럼.

자신이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가장 소중한 혈육을 잃은 자신의 아들에게 무슨말을 전해야 옳은가.
분명 훼이의 아들을. 자신의 손자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자신이었다. 그것
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그리고 이미 결과는 이렇게 바뀌어 있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갑작스럽게.

흑룡왕은 아직도 놀란 눈으로  자신과 훼이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는 시비의
곁을 지나쳐 방을 빠져나갔다.

  " 훼이를 부탁한다...."

그리고 시비는 막 자신의 귓가를 스치고  지나간 흑룡왕의 음성이 왠지 슬프
다고 느꼈다.


훼이는 의자에 앉은자세 그대로 멍한 얼굴로 눈감은 비의 모습을 응시했다.
하지만 훼이의 그 눈에는 더 이상 비의 모습이 비치고 있지 않았다.
거의 이백년만에 자신을 찾은 아버지의 모습을 기억속에서  되살리며 그렇게
훼이는 온몸에 엄습해오는 무너질 듯한 절망감과 싸웠다.

용족에게 주어진 수명의 반 이상이나 살아온 자신이었지만  지금까지 이렇게
마음을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듯한 괴로움은 처음으로 느끼는 것이었다.

용족으로서 살아온 그동안의 시간들도. 자신이 해온  경험도 이런 종류의 감
정의 지배하에서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오래전 처음으로 마음을 주었던 여인 화연이 떠났고, 항상 입가에 슬픈 미소
를 떠올린 채 자신과 비를 맞이해주던 성휘도 떠났다. 그리고 이제는 유일한
자신의 핏줄. 화연과 자신이 서로 사랑했다는 증거였던 비도 세상을 떠났다.

  " ............그냥 이렇게...... 끝나는 거냐..... 비......."

자신이 무슨말을 내뱉고 있는지도 모른 채 훼이는 허물어져가는 자신의 마음
을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냥 이대로 부서져 버려도 상관없다.
아니, 오히려 부서져 버리는 편이 나을 것이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을 바엔
차라리..... 산산히 부서지는 편이 나을 것이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제는 두 번다시 눈을
뜨고 자신을 바라봐주지 않을 아들의  모습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며  훼이는
그저 자리에 앉아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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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핫... 전 나쁜 사람이에요.
주인공은 슬픔에 빠져 있는데 전 웃으면서  언니랑 사촌 동생이랑 잡담을 나
누며 이걸 쓰고 있으니...^^ 미안해요. 훼이..
우엥....비가 죽어버렸군요. 흑... (죽인 주제에 말이 많습니다)
오늘 이야기에는 감정에 관한 것만 나왔죠? 그래서 대사도 별로 없구요.
(저는 성격이 음침한 지도 몰라요....)
그리고 잠시 다음편 예고를 드리져. 제 언니의 바램대로 다음편 (그 다음편
일수도)에서는 때려 부수는 장면을 넣기로 했답니다.
이 소설의 주제는 상실과  시간이라는 단어와 관련이 많이  있습니다. 나중에
끝나고 나면 무엇을 표현하려 했었는지 자세히 쓸테니 여러분이 그렇게 느끼
셨는지 판단해 주세요. 그리고 아니라면 가차없이 돌을 던져주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되세용 ^-^

PS> 오프에 오시는 분 계시면 인사해 주세용.


번 호 : 998 / 3334 등록일 : 1999년 07월 20일 01:13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06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7장 十三.



                           흑룡의 숲


  제 7장  역린(逆鱗)


                    
  十三.


언제나와 같이 밤은 노을이 지기전까지의 밝음과 따스함을 자신의 검은 몸으
로 뒤덮어 휴식으로 잠겨들게 만들었다.
모든 사물들이 한낯의 밝은 빛깔을 잃은  채 어슴프레하게 자신의 색을 드러
내고 있는 깊은 밤. 훼이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그저 한없이 가라앉을 것
만 같은 그의 검은 눈동자에는 주위의 사물들이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끈질길 정도로 훼이를 따라다니며 식사를 하라고 권하던 시비들도 모두 잠들
고 별궁을 지키는 병사 역시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밤의 장막아
래에서 깊이 잠들어 있었다.

가끔씩 불어오는 가벼운 바람소리 이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없는 고요한 정원.
노을이 지기 시작할 때부터 그곳에 앉아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던 훼
이는 깊은 밤이 된 지금까지도 계속 한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굳어져 있는 듯한 표정을 제외하면 훼이는 이제까지와 아무것
도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슬픔조차 잊은 듯이.

주위를 감싼 적막 속에서 훼이는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지금 자신의 머릿
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복잡한 생각을 과연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몇날 며칠을
생각해도 도무지 결론이 나오질 않았다.

입가에 맴돌고 있는 명계라는 단어.......
용족인 자신으로서도 섣불리 건드릴 수 없는 불가침의 영역.
천상계에서의 소란은 어느 정도의 처벌을 각오하고 한 것이었지만 명계는 다
르다. 명계에 사는 자들이 어떤 안하무인 격인 행동을 한다고 해도 그것을 막
을 명분은 누구에게도 없었다.
철저하게 서로간에 거리를 두고 있는 곳이니  만큼 명계를 상대할 때 만큼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훼이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는 분노가 용솟음 치려 하고 있었다.
명계가 아무리 손댈 수 없는 불가침의 영역 이라고 하여도. 자신이 명계에 손
을 댐으로 해서 훗날 무슨일이 생긴다고 해도 훼이의 곁에서 비를 데려간 것
은 명계에 사는 자였다.

명계에서 훼이가 비의 기운을 느끼고 그곳으로  달려갔을 때 훼이가 본 것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쓰러져 있던 비와  날카롭고 소름끼치는 느낌을
가진 여인. 그리고 기분나쁜 검은 그림자로 온 몸을 감싸고 있는 성별조차 모
호한 두명의 모습이었다.


  " 누구냐! 누가 내 아들에게 손을 댔지?"

분노에 찬 훼이의 음성을 듣자 여인은  그저 차가운 미소를 떠올리며 모습을
감췄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 뒤를 쫓고 싶었지만 비의  상태는 너무나도 위
험해 보였다.

자신의 품에 안긴 비가 그토록이나 작아 보였던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리고 확실하게 아버지로서의 책임감을 느낀 것도 그때였다.  지금까지의 막연
한 아버지라는 말과는 다른 자신의 피가 흐르는 혈육을 향한 뜨거운 애정.
맹목적이라고 해도 좋았다. 혈육에 대한 정은 누구에게나 가장  진한 것이 분
명했으므로.


  " 비야........ 난 대체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이제는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할 아들에게  훼이는 자신의 귀에도 거의 들리
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마음을 뒤덮고 있는 막막함. 어디서부터 일이 틀어진 것일까.
비가 흑룡왕인 할아버지에게 인정 받지 못해서?
아니면 자신이 후계자의 위를 내던졌기에?
화란의 호의를 받아들인 것이 잘못인가?
그렇지 않으면 하계로 수행을 떠난 자체가, 비를 홀로 내버려둔 것 자체가 잘
못인가.
그 어떤 질문에도 확실한 대답은 없다.
그저 더욱더 깊이 얽혀가는 마음속의 의문들만이 꼬리를 물고 피어오를 뿐.

터질 듯이 답답한 마음을 풀 수 있는 길은 처음부터 단 하나였다.
하지만 그것을 결정하는데 훼이는 많은 시간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러나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뒷 일은 생각하지 않아도 좋다. 그저 지금 이 순간 마음을  얽어매고 있는 깊
은 올가미를 털어낼 수 있다면.

훼이는 눈빛을 굳히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신에게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 그렇다면 마음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자.
그리고 자신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최선이라고 훼이는 주문처럼 그 말을 되뇌
었다.


                       *            *            *


두 번째로 내딛는 명계의 땅은 처음보다 더 생소한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무미건조한 죽음의 향기가 그런 생소함을 자아내는지도 몰랐다.
명계에 사는 자들은 모두 영원한 반복이라는 벌을 받는 자들이었기에.

끝없이 이어질 듯한 숲속을 빠른 걸음으로  지나쳐 가며 훼이는 예전에 느낀
적이 있는 싸늘한 미소를 가진 여인의 기척을 찾으려 애썼다.

잊을 수 없는 그  냉소적인 표정과 온 몸에  떠도는 소름끼칠 정도로 싸늘한
분위기.


저건......

훼이는 숲이 끝나는 자리에 들어서 있는 쇄락한 집들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오직 숲만으로 가득 차 있을 것 같았던 명계에도 사람이 살만한 집들이 들어
서 있다는 것 자체가 무척이나 놀라웠다. 비록 사람이 살지 않는 흉가처럼 낡
고 쇄락하긴 했지만 그곳에서는 분명 누군가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하나의 마을이라고 이야기해도 틀리지 않을 정도인 수십채의 집들. 하계의 집
들과도 천계의 집들과도 어딘지 모르게 다른, 지붕이 기와로  덮힌 그 집들은
길게 늘어선 채 그 안으로 들어서는 훼이를 맞이했다.

  < 살아있는 자다.... 살아있는자....>

  < 용족이로군..... 저 흘러넘치는 강인한 기운은 분명 용족의 것이야.... >

웅얼거리는 것처럼 엷게 퍼지는 목소리들이 훼이의 귓가에 파고들어왔다.
그들의 목소리는 확연하게 살아잇는 자들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생기없는 목소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자들이 쇄락한 집들이 모여서  이룬 마을의 길에서 훼이를 지
켜보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에는 살아있는 생명을 지닌자에 대한 강한 욕망이
담겨 있었다.

  < 생기......... 저자가 가진 생기만 있다면.......... >

누군가의 외침이 시발점이 되었다.
멀찌감치에서 훼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훼이의 곁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회색빛의 암울한 얼굴을 가진 그들은 불을 향해 뛰어드는 나방처럼
그렇게 훼이의 곁으로 몰려왔다.

  [ 경환(鏡幻) - 의식에 작용하는 고급주문 ]

훼이의 입에서 주문 하나가 터져 나오자 훼이에게로 다가서던 사람들은 거짓
말처럼 동작을 멈췄다.

  " 이곳의 주인은 누구인가."

누구에게랄 것 없이 훼이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 요희...... 붉은 눈동자를 가진 요희다..... >

쉬고 갈라진 듯한 목소리가 답했다.

훼이는 놀란 듯이 고개를 돌렸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훼이의 주문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있었다.

  " 그대는?"

메마른 웃음을 터트리며 상대가 훼이의 앞으로 나섰다.

  " 나는 당신의 아들과 같은 교룡이지. 저주스러운 인간과 용족의 혼혈..."
  " 날 아나........?"

상대의 말에 의문을 가지며 훼이가 묻자 눈 앞에 있는 겨울의 앙상한 나뭇가
지 처럼 마른 남자는 또 다시 갈라진 목소리로 웃었다.

  " 모를 리가 없지.....  아무리 다른 계(界)와  다른 이곳 명계라해도 당신이
누구인지.....그리고 다른 곳이 어떻게 변하며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정도는 알
고 있어."

처음듣는 사실이었다.
명계에서 살아가는 자들이 자신들의 움직임을 알고 있다니.........

  " 경고하나 하지... 이곳  명계에서 살아가는 자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
아. 그리고 명계의 지배자인 요희는  강한자에게 흥미를 느끼지. 분명 당신도
그럴거야. 훼이......"

상대방이 자신의 이름을 안다는 사실보다도  지난번에 비에게 죽음을 안겨준
여인이 바로 명계의 주인이라는 사실이 훼이에게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마지막으로 창백한 미소를 떠올린 채 눈을 감은 비의 모습이 또 다시 선연하
게 떠올랐다.

그때였다.
 
  " 천오..... 네가 함부로 나설 자리는 아닐텐데.....?"

기분 나쁘다는 듯한 어조의 귀를 긁는 날카로운 음성이 울려퍼졌다.

훼이는 떨려오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요희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에게로 몸을
돌렸다. 일전에 봤던 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모습으로  그녀는 오만하게
훼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뒤에는 그림자처럼 달라붙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옷의 모습이 있었다. 그 수는 모두 네명. 지난번의 두명과 처음 대
하는 두명. 그들은 모두 위험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 해제(解制) ]

훼이의 음성이 울려퍼지자 정신을  차린 사람들은 요희의  모습을 보고 슬금
슬금 자리를 피했다. 그들이  보인 반응으로 훼이는 요희의  성격이 어떤가를
알 수 있었다.

  " 환영한다고 말하는 게 좋을까요. 훼이......?"

그녀의 입가에 엷게 피어오른 웃음은 소름끼치도록 기분나쁘게 보였다.

  " 말은 필요 없겠지....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그대가 가장 잘 알테니까."

싸늘하게 굳어진 훼이의 목소리를 들으며 요희는 크게 웃었다.

  " 고맙다고 해야하나? 당신의 아들 덕분에  난 지금 너무나도 충만한 기운
을 느끼고 있으니까....."

그 말을 듣는 순간 훼이의 눈에는 일렁거리는 기운이 피어올랐다.

  " 시작해라."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요희는 자신의 뒤에선 네명에게 손짓했다.

  [ 개문(開門) 람(嵐) - 폭풍의 힘을 빌어 공격하는 상위 공격주문 - ]

훼이 역시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주문을 외쳤다.
훼이가 부른 주문에 의해 명계의 하늘 가득 검은 먹구름이 들어차며 거센 비
를 흩뿌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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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의 잡설은 꼭 읽어주세요!!! >

안녕하세요오 ^-^ 이번이 7장의 마지막편입니다.(그러고 보니 40회!!)
13편이라..... 길군요. 아. 그리구요 이번주 동안은 잠시 연재를 쉬게될 것 같아
요. 스토리 전개가 생각대로 잘  안풀리는 것 같기도 하고 과연  길이를 어느
정도로 해야할지도 잘 생각해 봐야 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연재 재개를 하면
하루에 두편 정도씩 올리겠습니다.(쉬면서 비축분 만들어야지 ^^)
음.... 고정독자이신 40여분(이정도 인 것 같은데....) 정말로 감사해요 ^0^
전 제 소설을 이렇게 까지나 읽어주실 줄은 몰랐으니까요.  여러분 덕에 벌써
40편이나 쓰게 된 거에요. 잠시 쉰다고 안 읽어주셔도 할 수 없지만 ^^
혹시 앞으로 보여줬으면 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제가 생각하
는 것과 독자님들이 생각하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7장에서 명계와의 이야기를 (현실에서) 끝내지 않은 것은 이야기의 전
개 방향이 현재는 일직선으로 계속해서 전개되기 때문이지요.  과거역시 처음
의 시간대에서 점점 더 세월이 변해가지만 섞일 수도 있으니까요.
8장에서도 현재의 이야기는 시간 순서대로 전개되니까 사건의 해결은 8장 정
도에서 보실 수 있을겁니다.
또 하나 ^^ 통쾌한 전투장면을 원하셨던 분들....죄송합니다. ^^
막상 쓰려니 안되네요... 8장 쯤에서 해볼까  생각해요.(과연 잘 될까...나도 내
맘을 알 수 없어...--)
(오늘 봉신연의 소설책을 샀어요. 만화랑은 좀 다르지만 그래도 재밌어 ^0^)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자님들 너무 고마워요 ^0^

---  넵! 드뎌 포키가 제 구박에 지쳐버렸나봅니다. 맨날 이상해∼를  연발하
며 포키를 다그친 결과 일주일이라는  공백을 만들고 말았군요. 흑흑흑...저를
주겨주셔요...ㅠ.ㅠ
쉬는 동안 제정비의 시간을 갖게 될 겁니다. 그동안은 구박하지 말아야지..^^
조금만 기다려 주시고, 고정독자 여러분!  글고 그 외 여러분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들 건필하세요. 꾸벅∼   퇴고 담당 화란이었슴당∼     ---


번 호 : 1114 / 3334 등록일 : 1999년 07월 26일 00:02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185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8장 一.



                           흑룡의 숲


  제 8장 부정(不貞)



                   그것이 너의 선택이었음을
                   이제야 깨달았다.
                   이걸로 네가 느낀 슬픔이
                   채워지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이것 뿐이구나.
                   ..........미안하다.


                    

  一.


비록 하계에 있었던 화란이었지만 그녀는  간접적으로나마 비의 죽음을 전해
듣고 눈물을 흘렸다. 그녀가 가진 홍룡왕이라는 이름은 그녀에게 비의 장례에
참석할 시간조차 할애해 주지 않았다.

보좌관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찾아온 흑룡궁  별궁의 입구에서 화란은
들어서야 할 것인지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었다. 더 이상  훼이에게 가까이 다
가 간다면 홍룡왕인 그녀의  이름에  누가 된다는 보좌관의   설명도 화란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사랑하는 아들을 자신의 눈앞에서 잃어버린 훼
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자신의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가 아무리 강인한 자라고 해도  아들의 죽음앞에서 무너지지 않았으리라는
보장은 할 수 없었다.
가슴이 떨려오기까지 했다. 훼이는 과연 어떤 표정으로 자신을 맞이할 지....

  " 어서오십시오. 홍룡왕 전하."

결심을 굳히고 별궁의 입구로 발을 들여놓자 낯익은 병사가 화란에게 인사를
건넸다. 화란과 동년배로 보이는 흑룡족의 청년.
변두리에 위치한 별궁의 병사인 자신의 직분에 무척이나 충실한 예의바른 청
년. 그것이 화란이 그에게서 받은 인상이었다.
화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병사의 인사에  답하며 정원을 지나쳐 궁 안으
로 들어섰다. 익숙한 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궁 내부는 생소한  느낌이 들었
다. 언제나 보아왔던 자신의 화천궁과 다르지 않은  구조였음에도 오늘따라
엷은 갈색의 나무판이 깔린 바닥이 생소했다.
얼마간을 익숙한 걸음으로 더 걸어 들어가자 훼이가 기거하고 있는 방의 문이
보였다. 별다른 장식조차 붙어있지 않은 수수한 문.
화란은 가볍게 심호흡을 하며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나서  천천히 문에 손을
가져갔다.

  " 훼이..........."

방안에 앉아있을 훼이를 보기 전에 자신의 마음에 다짐이라도 하듯이 화란은
훼이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 헉....."

화란은 짧은 신음성을 내뱉었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언제나 처럼 발목까지  길게 내려와 훼
이의 온몸을 감싸고 있는 깔끔한 검은 파오를 걸친 차림새도. 어깨를 타고 흘
러내린 검은 머리카락도. 입가에 떠오른 희미한 미소까지도 예전과 조금도 달
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단 하나. 훼이의  눈빛만은 아무것도 담지 않은 채 그
저 검게 빛나고 있었다.

  " 훼이........?"

화란은 자신도 모르게 떨려오는 음성으로 훼이의 이름을 불렀다.

  " 괜찮아요. 훼이?"

계속 이어지는 화란의 말에 훼이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언제나 깊은 빛을 간직하고 있던 훼이의  눈동자에는 감정이라고 부를 수 있
는 그 어떤 빛깔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저 무감각하게 시간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긴 듯이 그렇게 훼이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            *            *            *


하계로 통하는 공간의 문이  열리자 마자 유에린은  온몸에 느껴지는 예리한
칼날과도 같은 기운에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 이건......."
  " 교룡의 기운이다. 용족의 생기를 빨아들인 교룡의 기운."

유에린의 질문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훼이는 빠르게 대답했다.
훼이의 눈은 이미 푸르고 흰 빛이 난무하는 숲을 향해 있었다.

  " 강하다고 소문이 자자한 백룡족의 비도 고전하는 모양이군."

유에린의 눈에는 난무하는 두가지 힘의 충돌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
만 훼이는 멀리 떨어진 숲속에서 일어난 싸움의 상황이 보이는 듯 했다.
입가에 엷은 미소까지 매단채 훼이는 빠르게 숲을 향해 몸을 움직였다.

  " 봐두면 도움이 될거다. 그리고 네 몸은 네가 지켜라."

비록 유에린을 돌아보며 한  말은 아니었지만 유에린은  등을 돌린 훼이에게
대답을 건네고는 말없이 훼이를 따랐다.


숲으로 가까이 다가서면 설수록 공기를  찢는듯한 날카로운 바람소리와 안개
처럼 끈적하게 몸을 덮어오는 푸른 기운이 기분나쁘도록 강하게 느껴졌다. 머
리보다 먼저 몸이 두가지 기운에 대항하며 기민하게 움직였다.
훼이는 먹이를 노리는 매의 눈처럼 날카로운  시선으로 푸른 기운에 덮힌 교
룡의 사내를 응시했다. 그리고 미세하게 훼이의 몸이 멈칫했다. 비록 그 자신
이외에는 아무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미약한 움직임이었지만 훼이의 가슴 속
은 크게 두방망이질 치고 있었다.

이미 잊었다고 생각했다. 아니, 묻어두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훼이 혼자만의 착각 인지도 모른다.
이미 그 때로부터 두배도 넘는 시간이 흐른 후였지만 그때의 기억은 바로 조
금전에 일어난 일 처럼 선명하게 떠올랐다.

창백하게 미소짓던 비의 얼굴이....... 바로 눈 앞에서 푸른 기운을 흩뿌리고 있
었다. 얼굴가득 굳어진 슬픔과도 같은 표정을 떠올린 채.

훼이는 아예 동작을 멈춰 버렸다.
뒤에서 말없이 훼이를 따라오고 있던 유에린은 석상처럼 굳어진 훼이의 모습
에 깜짝 놀랐다.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모습. 그것은 어떤 상황에 놓여  있어도 유연하게 대
처해가던 훼이의 모습이 아니었다.

  " 훼이...."

유에린은 조심스럽게 훼이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훼이는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흔들며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걸음은 유에린이 느
끼기에도 아까와는 달리 힘이 빠진 것이었다.
유에린은 갑작스럽게 변해버린 훼이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왠지
그래서는 안될 것 같다는 예감이 강하게  고개를 쳐들어 질문을 속으로 삼켰
다.

  [ 광환(光環) - 시각을 마비시키는 주문 - ]

낮게 울린 훼이의 목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태양의 빛보다 더 강한 밝은 빛이
숲 전체를 가득 메웠다.
방금전에 훼이가 외친 주문은 모든 용족들이  사용할 수 있는 기초적인 주문
의 하나로 강한 빛으로  시각을 마비시키는 주문이었다. 하지만  역시 훼이가
가진 마력의 크기 때문인지 보통의 광환 주문도 커다란 효과를 발휘했다.
숲을 가득 메우고 있던 날카로운 기운들이 일시에 사라졌다. 그리고 희미하게
지친 기색을 떠올리고 있는 백룡왕비 챠렌과 훼이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얼굴
이 동시에 훼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 직접 와주셨군요."

지금까지 격렬한 싸움을 하고 있던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차분
하게 챠렌이 인사를 건넸다.
그런 그녀의 태도에 유에린은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소문으로만 들어온 보좌
관이자 비인 백룡족의 챠렌. 처음으로 직접 그녀의 얼굴을 마주대한 유에린은
소문이 틀리지 않았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유에린이 그토록이나 떨쳐버리기를 원하는 나약함과 망설임은 애초부터 그녀
에겐 존재하지 않은 것 같았다. 환하게 빛나고 있다고  느껴질 정도로 챠렌은
당당했다.

  " 아닙니다. 명계와의 일은 제가 나서는 편이 훨씬  더 금방 처리되리란 건
누구나 알고있는 사실입니다."

보통때와 마찬가지로 별다른 감정이 섞이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유에린은 훼
이의 목소리에 섞인 미세한 흔들림을 읽었다.

  " 저를 잊고 계신 것 같습니다. 두분은.........."

엷게 울려퍼지는 목소리를 들은 훼이의 몸이  눈에 띌 정도로 크게 꿈틀거렸
다.

그 목소리는 잊혀지지 않을 만큼 깊게  자리한 그리움을 훼이의 가슴 속에서
끄집어 내려 하고 있었다.

  " 아직 기억하고 계시겠지요. 훼이......"

훼이는 아무말 없이 무너져 내릴 듯이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으며 눈 앞에 선
교룡을 응시했다.




=======================================================================
8장의 제목에는 두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한자의  뜻 그대로의 의미
와 동음이의어인 또 다른 단어. 읽다보면 깨닫게 되실 거에요. ^^
아마도 8장에서 그동안 가장 궁금하게 여기셨던 의문 하나가 풀릴겁니다.
그리고 미리 덧붙여서 숫자 계산은 사양입니다!
그리고 7장의 제목이었던 역린(逆鱗). 어때요? 7장 전체의 내용이나 분위기와
잘 어울렸나요? 최대의 약점.  훼이에게 있어서는 혈육에  대한 사랑이었겠지
요.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느끼고 있을 주변인에  대한 사랑. 흑룡의
숲에서 표현하고 싶은 하나의 주제입니다.

더운 여름 여러분께 홈매트 하나씩 드립니다. ^-^ 오늘도 감사해요.



번 호 : 1115 / 3334 등록일 : 1999년 07월 26일 00:03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183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8장 二.



                           흑룡의 숲


  제 8장 부정(不貞)


  二.



  " 이젠 당신에게 질렸어요. 훼이!!"

그가 자신의 말을 듣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화란이었지만  그녀는
그렇게라도 외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다.

과연 저렇게 멍하니 앉아 있는 그가 자신의  마음을 송두리채 빼앗아간 바로
그 남자와 동일하단 말인가.... 믿을 수 없다. 아니, 인정할 수 없었다.

  " 어서요. 어서 두눈을  움직여 날 봐요. 텅빈  시선이 아닌 당신만의 색이
담긴 시선으로 날 봐요! 훼이라는 남자가 이렇게 약했던가요?  현실에서 도피
할 만큼 그렇게 약했던가요?"

화란의 음성이 고요한 방안에 메아리 치듯 울렸다. 분명  밖에서도 그녀의 목
소리를 들었으리라. 하지만 화란은 개의치 않았다.
분명 입으로는 거칠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지만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
내리고 있었다.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흘러내린 눈물이  그녀의 시야를 뿌옇
게 가로 막았다.

  " 바보..... 당신은 바보에요........"

이제 흐느낌으로 변한 그 목소리로 화란은 계속해서 되뇌었다.

자신이 눈물을 흘리는 까닭은  곁에 있었음에도 소중한  훼이의 아들인 비를
도울 수 없었다는 사실과 훼이에게 자신은 처음부터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사
실이 안겨주는 뼈아픈 절망감이 뒤섞인 때문이었다.
훼이가 조금이라도 털끝만큼이라도 화란을 생각했다면  지금 이처럼 멍한 눈
동자로 자신을 가두어 두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무것도 아니다.......
자신은 훼이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 제발........부탁이에요.... 아무말이라도 좋으니까...  돌아가라는 말이라도
좋으니까 제발 입을 열어봐요......"

속삭이듯 작게 흔들리는 목소리로 화란은 훼이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하지만 훼이는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 그토록이나...... 그토록이나 슬픈가요......? 당신의 아들이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이....... 혈육을 잃은 아픔이  어떤 건지 나는 잘  몰라요. 명을 다한 죽음
이외의 것은 본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하지만 훼이........ 당신의 곁엔 아
직도 소중한 이들이 많이 남아있다는 걸 왜 모르나요....... 당신에게 있어선 비
만이 전부였나요.....? 이제 먼지로 화해 흩어져 버린 인간 여인과의 사랑이 그
토록 소중한가요..... 그런가요?"

화란은 절망했다.
그 어떤 말로도 훼이를 현실로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이.
이제 확실하게 자신은 훼이의 곁에서 떨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뼈아프게 와닿았다.

화란은 한손으로 눈물을 훔쳐내며 몸을 꼿꼿하게 폈다.
가슴이 아픈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에게는 해야할 일이 있다. 사랑하는 남자를
기다리는 여인이기 이전에 그녀는 홍룡족이라는 한 일족의 왕이었다. 왕은 언
제 어디서고 냐약한 모습이어서는 안된다.
슬픔은 이곳에서 모두 떨쳐버리고  다시 홍룡궁으로 들어설  때 그녀는 왕의
모습이어야 했다.

  " 마지막으로 하나만 이야기 할께요.  비록.....지금의 내게는 당신을 되돌릴
수 있는 힘은 없지만..... 맹세할 수 있어요.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화란
의 마음을 가져갈 수 있는건 당신 뿐이라는 것을요. 비록 혼인을 하고 아이를
낳게 된다고 하여도 그  사실에는 변함이 없어요. 홍룡왕  화란이라는 이름을
갖기 이전에 난 당신을 사랑하는 여인이었으니까요."

그토록 절망하고 절망했지만 화란은 강인한 여인이었다. 그렇게  말을 내뱉고
난 후의 화란은 언제 눈물을 흘렸었나는 듯이 말끔한 얼굴로 별궁을 나섰다.
자신에게 인사를 건네는 시비들과 병사에게  고개를 끄덕여 대답을 하면서도
그녀는 표정 하나 흐트리지 않고 당당하게 걸음을 옮겼다.
비록 마음 한구석은 무너져 내렸지만. 지금이라도 당장 눈물이  흐를 것 같았
지만 화란은 결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그냥 기억하겠어요.
고고한 어둠에 녹아들던 당신의 모습을.
냉정한 얼굴 속에 담긴 따스함을.
가끔씩 보여주었던 부드러운 미소를.
검은 눈동자에 담겨 있던 깊은 이해를.
애타게 바라보았던 파오자락에 감싸여 있던 당신의 모습을.
당신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검은 머리카락을.
굳어진 듯 하면서도 배려가 담겨있던 당신의 음성을.......
나는 그냥 기억하겠어요.
어느날엔가 당신이 정신을 차리고 날 찾는다고  해도 난 당신의 얼굴을 마주
대하지 않겠어요.
지금이 마지막입니다.
이렇게 당신을 떠올리며 추억하는 것도.
지금의 시간이 지나면 당신은 영원히 추억속에 묻힐거에요.

안녕....... 훼이........


               *            *            *            *


  " ..........?"

챠렌과 유에린은 훼이가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느끼고 있었
다. 그저 두 눈으로 상대방을  응시하기만 한 채 훼이도 교룡도  마치 굳어진
듯이 움직이지 않았다.

물론 두 여인도 눈 앞에 선 교룡의 모습이 놀랄만큼 훼이와 닮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교룡이 훼이의 핏줄이 아니라는 것 또한  알 수 있었
다. 훼이의 아들이었던 비라는  이름의 교룡은 오래전 영계에서  안식의 잠을
누리고 있음을 그들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누가......네게 그 모습을 허락했지?"

한동안의 침묵 끝에 얼음처럼 날카로운 음성으로 훼이가 입을 열었다.
흔들리는 듯이 보이던 훼이의 얼굴도 어느순간 본래의 냉막하고 차분한 표정
으로 돌아가 있었다.

  " 생기....... 교룡에게 있어서 생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알고 있었을텐데...."

훼이의 말투와 마찬가지로 교룡의 말투역시  어느새 날카로운 반어가 되어있
었다.

  " 과거는 과거다......"

훼이의 말에 교룡은 냉소지었다.

  " 과연 그럴까......"

말을 마침과 동시에 교룡의 몸에서는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못할 정도로
강한 푸른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챠렌과 유에린은 저절로 싸움의 범위 밖에서  물러난 자신들의 몸을 보며 의
아함을 감출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원인은 머지않아 깨달을 수 있었다.
이제는 완전히 푸른 기운에 가리워져 보이지  않는 저 숲속의 훼이가 자신들
을 밀어낸 것이다.


  " 가까이에서 본 건 처음이에요."
  " ...........?"

유에린은 잠시 말의 의미를 되씹었다.
하지만 챠렌의 시선은 분명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훼이와  교룡을 제외하고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자신뿐. 챠렌의 말은 분명 자신에게 향한 것이었다.
조금 의외였다. 챠렌은 자신과는 다른, 힘을 가진 높은 곳에 있는 여인.
한 일족의 비와 보좌관이라는 신분을 가진  그녀가 아무렇지 않게 평범한 자
신에게 말을 건 것은 의외라고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자
신에게 존대를 하는 그녀의 모습은 소문으로만 들어왔던 용감하고 당당한 여
인의 느낌과는 거리가 멀었다.

  " 방금 전의 교룡의 모습은 비라는 이름이 가졌던 모습이겠죠?"

유에린의 대답을 바라고 한 질문은 아니었다. 잠시 유에린을  향하고 있던 그
녀의 시선은 어느새 푸른 기운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숲을 향하고 있
었으니까.

  " 훼이는 약하지 않아요."
  " 그걸 모르는 자도 있을까요?"

그리고 두 여인은 아무말 없이 같은 방향을 응시했다.

두 여인중 어느 누구도 훼이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까지 계속
이겨왔으며 어느 누구도 그를 어떻게 하지 못했다.
천상계도, 명계도, 천계도 그를 속박할 수는 없었다.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으며 자유롭게......
자신의 수명을 넘어서 오랜 시간을 영유해오며....
훼이는 존재했다.



=======================================================================
웃....그러고 보니 나도 모르게 두글자 제목을 또 썼군....--
흑룡 이전에 쓰던 같은 배경의  소설은 각 장의 제목이 전부다  두글자 였죠.
아무래도 그 영향을 받고 있는 듯.... 흐음....제목이야 아무렴 어때....--
8장을 끝낸 이후에는 좀 밝은 에피소드로 진행시켜볼까  해요. 지금까지의 분
위기가 너무 칙칙한 것 같아서.....
난 음침한 아이인걸까.....
헤헷...글구요. 화란의 모델은 제 언니에요(딱 한명한테만 말했었는데 ^^)
아...제 구린 문체를 좀 어떻게 뜯어 고치고 싶군요...
날씨도 더운데 문체는 늘어지고.....미치겠다.
이럴때는 먼가 화끈하고 때려부수는 이야기가 쓰고 싶어 집니다.

  < 잠깐 설정 >

             영계 
       ------------------
      ┕       ┕       ┕
    천상계--- 천계 --- 환계
      ┕       ┕       ┕
       ------------------
               ┕
              하계
               ┕
              명계


위에 있는 이상한 도식이 머냐구요? ^^
각 계간의 연결모식도 입니다.(에잉 구려라~~)
그니까 연결 관계대로 각 계간의 이동이 가능한 거랍니다. 어느 위치가 더
높고 이런건 없어요. (이해 못하시는 분은 없겠죠?)

읽어주셔서 감샤~~

번 호 : 1143 / 3334 등록일 : 1999년 07월 27일 00:15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192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8장 三.



                           흑룡의 숲


  제 8장 부정(不貞)


  三.



훼이는 아직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그것은 아직 그의 마음에 망설임이  남은 까닭이었다. 자신의 눈  앞에 선 채
온 몸에서 푸른 기운. 즉, 마력을 뿜어내고 있는 자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났다해도. 이미 기억 속에서 조차 지우
려고 했어도 사라지지 않은 혈육에 대한 이끌림은 훼이를 망설이게 만들었다.

분명 비는 죽었다.
그리고 눈앞에 선 교룡은 비가 아니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피어오르는  작은 바램은 현실을 거부하려  했다. 비록
비의 모습을 하고 있는 교룡이 비가  아닐지라도 훼이는 다시 시작하고 싶었
다. 다시한번 아들의 이름을 내뱉고 싶었다.

  " 망설이는 건가? 당신답지 않군......"

아직까지 공격할 의사를 가지지 않은 듯  자욱한 안개처럼 주변을 가득 메운
푸른 기운만을 풀어놓은 상태로 교룡은 입을 열었다.

훼이에게 주어진 두갈래의 길.
하나는 마음속의 바램대로 따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눈 앞의 현실에 분노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훼이는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 요희의 짓이군......"

묻지 않아도 당연히 그녀가 일을 벌였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명계에서 살아
가는 자들이 다른 곳에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그녀의 힘이 필요하다. 살
아있는 자들이 죽음의 땅인 명계에  들어서기를 꺼리듯 죽은자들은 살아있는
자들의 땅에 들어서길 꺼려한다.
명계의 모든 것들을 지배하는 요희라는 이름의 여인은 명계가 생겨났을 때부
터 그곳을 관리해온 자였다. 그녀가 얼마나 오랜 세월을 그곳에서 지내왔는지
는 어느 누구도 모른다. 명계가 언제 생겨났는지 확실하게 아는 자가 없기 때
문이었다. 물론 모든 것들의 수명을 관리하는 천상계의 천제라면 알지도 모른
다. 하지만 천제로서도 명계는 관리 밖의  영역. 각 계의 일은 계에서 해결해
야 하는 것이다.

  " 요희라..... 확실히 명계의 모든 것은 그녀의 지배하에 있지...."

교룡의 목소리는 낮게 잦아들고 있었다.

  " 하계로 나온 건 날 불러내기 위함이겠지?"

마찬가지로 답을 바라고 한 질문은 아니었다.
훼이의 물음에 교룡은 어딘지 모르게 멍한  기색을 담은 눈동자로 가만히 훼
이를 응시했을 뿐이었다.

  " 너는......"

훼이가 막 말을 꺼내려 하자 교룡은 손을 들어 그것을 제지했다.

  " 알고 있으면서 쓸데없이 시간 낭비할 필요는 없겠지. 진실이든 아니든 현
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그말을 내뱉은 후 교룡의 눈에 날카로움이 돌아왔다.

  " 죽음을 방치한 것은  당신이야. 떠나간 후에 헛되이  모든 걸 파괴해봤자
현실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아. 알고 있잖아? 그래서  그토록이나 자신의 마
음을 묻어둔 거잖아. 나를 보면서 착각에 빠져있겠지?  다른 용족들에겐 외경
(畏敬)의 대상일지 몰라도 내게 당신은 현실에서 도피한 낙오자일 뿐이야."

훼이는 약간 굳어진 안색으로 교룡을 바라볼 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 자, 어디 한번 해보시지? 다시  한번  그 손으로 날 죽여봐.  언제까지고 
이 모습으로 되살아나줄테니....."

그리고 그 말을 듣는 순간 훼이는 마음을 정하고 있었다. 마음을 정하자 자신
도 모르게 입가에 엷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훼이의 손을 중심으로 검은 기운이 뭉쳐지고 있었다.  아무런 주문도 없이 눈
을 몇번 깜빡일 정도로 짧은 순간에  훼이의 손에서는 날카로운 기운을 품은
예기가 형태를 갖추어갔다.
싸늘한 칼날이 전해주는 섬뜩함과도 같은 기운을 품은채 의지를 가지고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처럼 검은 기운은 주위를 가득  메운 푸른 안개를 헤치고 교
룡을 향해 날아갔다.


숲에서 어느정도 떨어진 곳에서 줄곧 싸움의 경과를  기다리고 있던 두 여인.
챠렌과 유에린은 일순간 푸른 안개를 헤치고 뻗어나간 검은 기운을 자신들의
두 눈으로 확인하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멀리서도 피부에 와 닿을 정도로 강력한 힘. 저것이 바로 훼이가 가진 마력이
었던가.

유에린은 훼이가 직접적으로 그의 힘을 사용하는 것을 처음으로 보았다. 언제
나 훼이가 유에린에게 가르쳐 주던 것들은 청룡족이 사용하는 힘이었지 흑룡
족 본연의 힘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행 상생의  위치에 놓인 힘이기 때문에
훼이가 그토록이나 물의 힘을 잘 다루는지는  몰랐지만 늘 그런 훼이의 모습
만을 봐왔던 유에린에게는 강한 충격이었다.

흑룡의 힘....... 아니, 훼이의 힘......

문득 유에린은 자신이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현무족과 겨루기 위해 힘을 기
르고 있다는 사실이 무의미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 역시 대단하군요. 난 지금까지 저런 형태의 공격주문은 본 적이 없어요."

강한 자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을 담은 눈빛으로 챠렌이 말을 꺼냈다.

  " 그는 훼이니까요......."

유에린은 낮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조금전에 방출한 마력의 기운이 채 교룡에게  닿기도 전에 훼이는 또 하나의
주문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더 이상 훼이에겐 주문이라는 형태로 마력을 방출
할 필요가 없었기에 그는  그저 힘을 내보내기 쉽도록  손 끝에 자신의 힘을
집중시켰을 뿐이었다.

반대편에 있는 교룡도 물론 훼이의 공격에 가만히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훼이의 공격주문이 자신을 향한 그 순간 교룡  역시 훼이에게 공격을 가했다.
주위를 감싸고 있던 푸른 안개가 소용돌이 처럼 하나의 거대한 줄기가 되어
훼이를 향해 내쏘아진 것이다.

훼이가 두 번째 공격을 시작하려 할 때  푸른 소용돌이는 눈 앞에 와닿아 있
었다. 하지만 훼이는 그것을 두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
고 완전한 어둠의 빛깔을 띤  한 마리의 묵룡(墨龍)을 교룡에게로  쏘아 보냈
다. 그와 동시에 훼이를 향해 짓쳐들어온 푸른  소용돌이가 훼이의 온몸을 감
쌌다. 그리고 잠시후.
훼이는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변함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교룡의 공격에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은 듯 옷자락 하나도 찢겨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반대편에 선 교룡은 연달아  퍼부어진 훼이의 공격을  다 막아내지 못했는지
몸을 비틀거리고 있었다. 얼굴색이 조금 창백해지기는 했지만 여러 용족의 생
기를 흡수한 것 때문인지 금새 다시 몸을 추스렸다.

  " 내 몸속에는 어린 용족들의 생기이외에도 오래전에 받아들인 당신의 소중
한 아들의 생기도 있지..."

무슨 생각인지 교룡은 훼이를 향해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훼이의 대답은 말이 아니었다. 언제 힘을 집중시켰는지 느끼지도 못할
만큼 짧은 시간에 훼이는 힘을 모았고  교룡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것을
쏘아보냈다.
아까의 묵룡보다 두배는 더 큰 백년된  아름드리 나무의 키만한 다섯 마리의
묵룡들이 날카롭게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내며 교룡에게 짓쳐들어갔다.

그리고 다른 이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훼이는 교룡의 몸이 바닥에 무
너져 내리는 것을 보았다.


                *            *            *            *


시비들의 눈에도 훼이가 달라졌다는 것은 확연하게 보였다.
꼬집어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훼이의  전신에서 풍겨나오는 분위기는 예전의
그와는 확연히 다른 것이었다.
그리고 훼이의 얼굴에는 더 이상 예전처럼 부드럽고 편안한 미소가 떠오르지
않았다. 말수 또한 눈에 띄게 줄었다.
더 이상 그의 모습에서 과감하게 자신의  지위를 내던진 흑룡왕의 후계자 였